[박석진의 인권이야기] 밝혀지지 않은 진실, 박준기 중사의 외로운 투쟁

박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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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겨울, 당시 강원도 춘천 2군단 사령부 정보부대 선임하사로 근무하던 박준기 씨는 교통사고를 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을 한잔 한 것이 화근이었다. 운전이 서툰데도 술기운에 친구 차의 운전대를 잡았고 얼마 가지 못해 인근 도로의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조수석에 앉았던 친구는 꽤 큰 부상을 입었고 박준기 씨는 지나가던 화물트럭을 붙잡아 교통사고 현장에서 15분 거리에 있던 춘천성심병원으로 갔다. 친구와 본인의 응급처치를 받고 신고를 받고 온 춘천경찰서의 경찰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신분이 군인이었던 관계로 헌병에게 인계되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2군단 헌병대 소속 수사관 두 명이 왔고 박준기 씨는 그들을 따라나섰다. 동행하는 중에 말다툼이 있었고 고참 수사관인 김 모 중사의 발길질에 박준기 씨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11일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정신을 차린 박준기 씨는 자신의 두 다리가 심한 부상을 당한 것을 알게 된다. 병상에 있는 박준기 씨에게 헌병대는 교통사고를 낸 것에 대한 부담으로 춘천성심병원 10층에서 병원 옥상으로 투신자살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로 상해를 입었다는 내용의 진술조서를 내밀었다. 충격의 여파 때문이었는지 단기적인 기억상실 상태에 빠져있던 박준기 씨는 그 조서에 지장을 찍었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 몸으로는 더 이상 군 복무를 할 수 없었으므로 전역을 했고, 상처는 악화돼 3년 뒤인 1997년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꽤 오래 치료를 받던 오른쪽 다리마저 2011년 절단하고 말았다. 처음 다리를 자르던 날, 박준기 씨는 안개처럼 뿌옇던 자신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구타하던 헌병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의심치 않았던 본인에 대한 군 수사기록을 다시 찾아보게 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자살을 시도한 것일까?”

작년 가을, 서울의 한 카페에서 박준기 씨를 처음 만났다. 군대를 떠난 지 꽤 되었는데도 여전히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넓은 어깨는 비록 두 다리는 잃었지만 젊은 시절 건장한 남자였음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가 주섬주섬 내놓은 자료들을 살펴보며 필자 역시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는 그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춘천성심병원의 창문이었다. 문제의 창문은 위에서 아래로 여닫는 반개방형으로 폭이 78cm에 높이가 48cm 크기인데 열리는 폭은 21cm밖에 되지 않았다. 성인 남자가 빠져나가기에는 너무 좁은 창이었다.

위 사진:사진 설명: 박준기 씨가 투신 자살을 시도했다고 하는 춘천성심병원의 창문. 위·아래로 여닫는 구조로 되어있으며 최대개방폭은 21cm이다.

2007년 말, 박준기 씨의 민원으로 시작된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조사결과도 이 창문으로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에 국방부는 2008년 재조사를 했지만, 당시 병원 당직자의 말을 빌려 창문 개방폭이 최대 30cm까지 된다며 처음 2군단 헌병대의 조사가 문제없다는 결론은 내렸다. 하지만 올 초 한겨레 기자와 필자가 춘천성심병원을 찾아가 박준기 씨가 투신했다는 창문을 실제 살펴본 결과, 문제의 창문은 개방폭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있었으나 최대 개방폭은 21cm였다. 국방부의 조사결과도 오락가락이다. 올 상반기 정기국회 때 진성준 의원(국회 국방위원회)이 관련 질의를 하며 재조사를 요구하자 국방부 검찰단은 ‘박준기 중사 사건 검토보고서’를 제출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처음 사고 발생 당시인 1994년 2군단 헌병대의 조사보고서에는 창문 개방폭이 21cm라고 되어있으나, 2006년 육군 중앙수사대의 보고서에는 24cm라 되어 있으며 언급한대로 200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재조사 권고에 따른 군 보고서에는 30cm로 되어 있다. 군 수사기록은 아니지만, 2009년 춘천경찰서가 보내온 기록에는 또 21cm로 되어있었으며 현재 국방부 검찰단의 최종 판단은 ‘확인 불가’이다.

위 사진:사진 설명: 지난 5월, 국방부 검찰단의 박준기 중사 사건 검토보고서 중 사고 관련 쟁점 부분

의문은 또 있었다. 처음 2군단 헌병대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박준기 씨가 투신했다는 춘천성심병원 10층 창문으로부터 병원 옥상까지의 높이는 15m로 되어있다. 하지만 올 초 한겨레 기자와 필자가 직접 가서 건물 벽돌의 개수와 하나하나 벽돌의 높이를 더하는 방식으로 재 본 결과 실제 추락 높이는 22m였다. 이는 2007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조사결과와도 일치하며 현재 국방부 검찰단은 추락 높이가 22m가 맞으며 초기 수사결과가 틀렸음을 인정한 상태다. 추락 높이가 중요한 이유는 박준기 씨가 입은 상해의 정도를 판단하는 주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조사 당시 외래병원에 의뢰해 받은 의학적 감정 결과에 따르면 22m의 높이에서 떨어졌을 경우 거의 사망하거나 현재보다 더 심한 상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다시 말해 박준기 씨가 그 창문에서 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박준기 씨가 자신을 폭행했다고 지목하는 헌병대 수사관 김 모 중사에 대해서 군 당국은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준기 씨의 기억에 따르면, 병원에서 대기하던 중 두 명의 헌병이 왔고, 그중 선임이었던 김 모 중사가 계단에서 자신을 폭행해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다. 박준기 씨의 주장대로라면 폭행에 의해 정신을 잃은 이후 어느 시점에서 두 다리를 절단할 만큼의 큰 상해의 과정이 존재한다. 당시 박준기 씨 본인이 의식을 잃은 상태이고 아무런 목격자가 없는 점 등을 감안하면 박준기 씨가 입은 상해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병 인수의 책임자였던 김 모 중사가 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김 모 중사는 박준기 씨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며 2007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재조사 결정에 따라 군 검찰단은 재조사를 실시했지만 김 모 중사에 대한 대면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은 채 조사를 종결짓고 자살시도에 의한 상해라는 종전의 결론을 유지했다. 이외에도 2군단 헌병대의 초동수사자료에서는 박준기 씨가 투신했다는 창문틀의 지문감식은 물론 사고지점의 혈흔에 대한 감정조차 실시하지 않았으며 추락지점과 발견지점을 다르게 증언하는 당시 춘천성심병원 당직의사 정 모 씨의 견해도 고려하지 않는 등 부실한 수사로 일관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지난 4월, 한겨레신문의 기획보도를 통해 박준기 씨 사건은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진성준 의원(국회 국방위원회)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이에 국방장관은 사건을 다시 재검토하고 재조사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답변했으나 아직까지 국방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위 사진:사진 설명: 국방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박준기 씨
1만 3000여 명,
건군 이래 군 당국이 자살로 인한 사망이라고 결 론낸 군인들의 숫자다. 지난 2009년, 4년간의 활동을 마친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군 당국이 자살·사고사라고 수사 결론을 낸 579건 가운데 48건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하고, 부대 간부 주도로 조직적 은폐·조작이 있었던 사건으로 11건을 보고했으나 국방부는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수사결과를 번복하지 않고 있다. 군 의문사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알려졌던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도 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군 간부에 의한 타살이라고 결론 내렸으나 국방부는 특별조사단까지 꾸려 이를 부정했고 최근 대법원은 군 당국의 초기 수사가 부실해 판단할 수 없다고 결정함에 따라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아직도 군 병원 냉동고에는 허 일병과 같은 의문의 죽음으로 인해 최장 15년 이상 장례를 치르지 못한 채 보관되어 있는 20여 구의 군인 시신과 140여 기에 달하는 유족 인수거부 군인 유골이 있다. 자식이 죽은 이유조차 모른 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부모들의 고통을 국방부는 알고나 있을까.

기다리다 못한 박준기 씨는 의족으로 몸을 지탱하며 1인시위를 시작했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사건의 진실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가 다행히(?)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박준기 중사의 외로운 투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박석진 님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Civilian Military Watch)는, 2014년 설립된 단체로 군에 대한 감시역할, 국방정책에 대한 비판적 제언과 실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www.militarywatch.or.kr)
인권오름 제 456 호 [기사입력] 2015년 09월 23일 16: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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