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삼성이 보내온 추석 선물?

초코파이
print

[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추석이 다가오니 홍삼을 비롯해 건강을 내세운 상품들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추석 선물로 친지들의 건강을 위한 상품만 한 게 없다고 업체들은 홍보한다. 건강 관련 기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신문지면과 TV화면을 채운다. 건강이 돈이 되는 세상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몸뚱이가 재산”이라는 말들도 나온다. 노동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정말 몸뚱이는 재산(?)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모두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산재로 고통받는 노동자들 소식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그중에서도 이미 해결된 것으로 알려졌던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 사건은 최근 이상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눈속임이 되어버린 삼성의 사과

2007년 3월 6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여직원이었던 고 황유미 씨(당시 22세)가 급성백혈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발암물질 성분이 있는 유독 화학물에 노출된 환경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을 비롯한 희귀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삼성은 당시 질병의 업무 관련성을 부인하였고, 그뿐만 아니라 산재 인정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낸 소송에서 근로복지공단 쪽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수십 명의 변호사를 동원하여 산재 인정을 막아왔다. 그러나 노동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많은 단체들의 노력으로 올해 초 삼성은 기존 입장을 바꿔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였다. 이후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을 대표한 반올림 및 가족대책위와 삼성전자 사이의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조정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지난 7월 23일 조정위원회는 삼성전자에 1천억 원 기부와 공익법인 설립, 작업장 환경 조사 후 재발방지대책 마련, 백혈병 이외에 희귀질환 보상, 대표이사 공식 사과 등의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번 조정안은 직업병 문제 해결에 필수적인 세 가지 핵심 의제인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담은 것이었다. 하지만 ‘선 보상, 후 대책’을 고집하던 삼성은 일방적으로 보상위원회를 구성하고 9월 18일부터 보상절차에 들어갔다. 이런 삼성의 태도는 이 문제를 단순히 몇 명의 문제로 제한하고 그들에 대한 보상으로 문제의 본질을 덮으려는 것이다.

위 사진:9월 15일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노동자 건강권에 삼성이 제대로 답해야 할 때

많은 기업들이 영업 비밀 등을 이유로 노동자, 지역주민, 사회단체들이 작업장 안전과 관련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다. 삼성전자는 조정위 권고안 중 공익재단 설립에 반대하기에 별도의 보상위를 꾸렸다고 밝혔다. 즉 공익 법인이 작업장 내 안전 문제를 점검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안전은 바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환경에 대해 알 권리를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신이 일하는 환경에 어떤 위험물질이 있는지, 작업방식은 안전한지 등을 알아야만 자신을 지킬 수 있다. 그러한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위험하고 부족한 설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권리,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권리, 아플 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쉴 권리, 건강권과 관련해 회사 내·외부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도 함께 지켜질 수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고,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으로 연결되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삼성은 작업환경에 대한 외부감사를 통해 노동안전을 지킬 수 있는 분명한 대책 마련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두루뭉술한 사과가 아니라 잘못된 일터가 이 문제의 근원임을 분명히 밝히는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명확히 사과해야 한다. 더불어 현재 드러난 피해자뿐만 아니라 작업환경의 영향을 받은 모든 직업병에 대해 인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진정으로 사과, 보상, 재발방지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우선한 산재 적용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산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언제부턴가 사라진 존재가 있다. 안전한 작업장이 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하고, 산재가 발생했을 경우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조치를 받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이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반올림에서 9월까지 받은 제보 중 삼성 내 전자산업 분야에서 위험한 작업 환경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제보만 100여 건이 넘었다. 그런데 실제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로 승인한 건수는 단 4건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도 근로복지공단의 승인 거부를 법원에서 뒤엎은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공단과 법원에서는 재해 및 질병과 작업환경의 인과관계를 노동자들이 밝힐 것을 요구한다. 기업 경영 비밀이라는 이유로 작업환경에 대한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이를 증명해내기는 어렵다. 특히 백혈병과 뇌종양 등의 중증질환의 경우 그 원인조차 명확하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법원을 통해 산재 인정 판결을 받으면 공단 측은 곧바로 항소를 한다. 서울행정법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근로복지공단의 항소 비율은 82%로 전체 항소 비율 58.5%보다도 압도적으로 높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치료비 문제로 적절한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항소 비용까지 마련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산재보험은 일하는 과정에서 다친 노동자들이 온전히 치료받고 다시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보험이다. 그렇기에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은 노동자의 건강권이다. 경영 기밀이라며 기업의 책임 회피는 외면하고 객관성과 전문성을 내세워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막는 지금의 산재 인정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근로감독제도를 운영하여 적절한 안전보건 기준을 집행함으로써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추석이 다가오니 회사에서 준 추석 선물을 들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삼성전자 반도체에서 일하다 피해를 입은 수백 명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은 이번 추석도 분노와 답답함을 선물로 껴안게 되었다. 삼성이 ‘어려운 이웃’을 위한 추석 선물을 뿌린다는 홍보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서 말이다. 지금 당장 삼성이 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지금이라도 드러난 피해자들에 대한 개별 보상만으로 문제를 덮으려 하지 말고 조정위 권고안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할 때야말로 지난 5월에 있었던 사과를 우리는 진정한 사과로, 삼성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첫 걸음으로 믿을 수 있다. 또한 그동안 노동자에게는 불리한 산재 인정 방식으로 기업들의 편을 들었던 정부는 하루빨리 산재보험이 본래의 취지에 맞게 공공적 성격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미 상처를 입은 노동자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일이 더 이상 이어져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초코파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56 호 [기사입력] 2015년 09월 24일 20:01:15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