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 대한 질문] 생계비 임금론은 싸움의 언어가 되고 있나

우리에겐 임금에 대한 권리가 있다②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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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직장인들은 다들 못 그만둬서 회사 다닌다고 합니다. 일이 힘들고 즐겁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대가라고 주어지는 임금조차 생계를 꾸리기에 벅차지만 별 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남의 돈 받는 게 원래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직장인, 아니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기 위해 권리와 존엄을 거래하거나 포기하면서 일하는 현실, 임금은 원래 사장이 주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임금관계에 물음을 던져보았습니다. 임금에 대한 우리의 권리, 임금을 인권으로 재구성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합니다. 4회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민주노총은 2015년 임금요구안으로 정액급여 기준 월 230,000원을 인상 하한선으로 제시했다. 이 금액은 민주노총 조합원 임금 대비 표준생계비(5,554,046원) 충족률을 현행 71.1%에서 76.9% 수준까지 확보하여 5.8%p 개선시키며, 올해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소득분배개선치를 반영한 합리적 기준인상률인 8.2%를 고려한 요구액이다. 2015년 민주노총 임금인상 요구안은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소득분배개선치를 고려한 ‘생계비로서의 임금(생활임금)’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요구안으로 노동생산성만을 기준으로 한 자본의 입장과는 그 시작을 달리한다.
-민주노총 보도자료(2015.3.3.)


노동운동의 임금투쟁 슬로건은 ‘생계비 보장’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본격화되기 이전, 군부독재 산업화 시기 자본은 농촌의 과잉 노동력을 흡수하면서 겨우 연명할 정도의 생계비 수준에서 인건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병영적 노동통제와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임금수준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인간답게 살고 싶다’, ‘생계비를 보장하라’와 같은 요구를 내걸고 투쟁을 시작했다. 80년대 중후반 폭발적으로 성장한 노동운동은 때마침 호황을 맞은 자본으로부터 기록적인 임금인상률을 쟁취해낸다. 더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은 임금인상뿐만 아니라, ‘하후상박’과 ‘개인별 차등인상 반대’ 원칙을 견지하면서 호봉-연공제 임금체계를 만들어낸다. 호봉-연공제는 근속과 연령에 따라 임금이 늘어나는 임금체계로서 남성 1인 생계부양자 모델의 생애주기에 따른 생계비 증가를 자연스레 반영했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이 만들어낸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비’라는 임금담론은 임금인상투쟁, 노동자 조직화의 관점에서 평가될 필요가 있다.

자본에 맞선 투쟁의 언어로서 생계비 임금론

생계비 임금론은 노동자의 숙련, 생산성, 노동형태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는 게 아니라 이 사회에 필요한 노동을 하는 노동자라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생계비 임금론의 이런 지향은 실제로 숙련/미숙련, 사무직/생산직, 성별, 학력 등에 따라 차등화되고 분할된 임금구조를 바꾸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자본은 임금을 통해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개별화하려고 한다. 자본의 지휘 아래 노동을 조직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 집단적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직무성과급제와 같은 임금체계를 통한 노동자 개별화로 현장을 통제장악하려 한다. 87년 이후 집단적 투쟁으로 임금인상을 쟁취해낸 노동자들은 이러한 시도에 저항하면서 가장 객관적인 기준(**)이기도 했던 근속과 연령에 따른 호봉-연공제를 세워낸다. 이는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내세웠던 임금체계인 호봉-연공제가 기초한 생계비 임금론이, 자본이 노동자들을 통제장악하는 유력한 수단인 인사노무관리와 연동된 임금체계를 무력화시켰다는 뜻이다. 각각 생계비, 노동생산성이라는 임금단체협상의 논리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공고히 하려는 노조와 임금을 통해 노동자들을 개별화하여 통제장악하려는 자본의 싸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싸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데, 문제는 이제 의미 있는 호봉-연공제를 실시하는 일자리가 대기업-공공부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이 싸움이 생계비 임금론이 역할 했던 노동자 단결과 연대가 아닌 분할과 임금격차를 대표하게 된 현실이다.

미조직 노동자에겐 복지와 시혜의 언어인 생계비 임금


이러한 구체적인 투쟁의 언어로서의 성격이 사라진 생계비 임금론은 모든 노동자는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굉장히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주장이 된다. 사실 생계비 임금론은 특정한 기업-산업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구체적으로 협상 가능한 임금수준의 기준을 가지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주장한 임금정책이다. 그런데 미조직 노동자들의 언어로 생계비 임금론을 사용하게 되면 매일매일 노동자들로부터 잉여가치를 수취하는 구체적인 자본이 있음에도 이를 겨냥하지 못하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모든 노동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인간다운 생활’이라는 정말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말’이 된다. 여기에 적합한 임금체계는 모든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목표로 하는 법정최저임금이다. 구체적인 자본-노동관계가 가려진 채, 마치 국가의 복지정책처럼 결정되는 최저임금의 대폭인상을 주장하는 생계비 임금론은 ‘인간다운 생활’을 주장하는 복지의 언어가 된다.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생계비 임금론은 어떻게 들릴까? 하루에 10시간, 12시간 일해서 손에 쥐는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빠듯하다는 주장은 그가 이미 알고 매일매일 겪고 있는 현실이다. 뭔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일 것 같은 수치로 포장되어 주장되지만 말이다. 한 끼 밥값, 햄버거 가격과 비교되는 최저임금 현실화 주장 역시 이미 그런 임금을 받고 살고 있는 노동자들에겐 다양한, 하지만 비참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자신의 삶이다. 노동환경이나 작업장 분위기, 관리자의 태도 등과 달리 임금은 노동자가 취업 전에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정보다. 한 달에 몇 시간 일해서 얼마나 벌지 계획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생계비 임금론은 이미 알고 있는 현실을 충실히, 하지만 타자화하면서 전달할 수 있을진 몰라도 행동을 촉발하는 언어가 되긴 어렵다.

정말로 생계를 꾸리기에도 벅찬 임금을 받고 있다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든지 생계비를 벌 때까지 잔업과 특근을 반복할 것이다. 노동자들이 어떤 때 투쟁에 나서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언제나 투쟁의 정당성을 이야기한다. 만약 저임금과 관련해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게 된다면, 그들은 이 돈으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말하기보다 그렇게 일했는데도 이 정도 돈밖에 안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노동자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잔업, 특근, 이직과 같은 개인적 해결을 도모하기보다 옳지 않은 것,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행동에 나선 것은 아닐까? 임금투쟁을 다른 무엇보다 노동자 조직화 과정이자 매개로 고민한다면, 저임금을 처지의 비참함보다 부당한 대우, 잘못된 처사, 권리의 훼손으로 자각하는 감각을 충분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 황덕순(1995)에 따르면 87년 이후 하후상박과 개인별 차등인상 반대라는 노조의 임금정책은 학력, 직종 간 격차를 상당히 해소하였다. 반면 성별, 기업규모별 격차는 변화가 없거나 더 커졌다.
(**) 임금체계로서 직무성과급제의 난점은 특히 제조업 생산직에서는 객관적인 평가지표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권오름 제 458 호 [기사입력] 2015년 10월 13일 21: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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