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인권이야기] FTA가 건설하는 장벽에 맞서

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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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노동영화제에서 아주 특별한 영화 한 편이 상영되었습니다. 5월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의류노동자들의 투쟁, 그 싸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16분짜리 다큐멘터리였지요. 방글라데시의 독립미디어그룹 ‘브레이크 쓰루(Break through)’가 만든 <21세기>라는 제목의 이 짧은 필름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세계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몸을 부풀려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루에 19시간씩 일해도 생계를 잇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적은 임금, 그마저 체불당하기 일쑤인 나날, 밤 새 일한 후 새벽녘의 추위에 공장에서 만든 옷을 입고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가 맞아 죽은 노동자,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공장에 불이 나서 떼죽음을 당한 소녀들. 맑스가 『자본론』에서 처절하게 보여주었던 19세기의 유럽과, 수많은 노동자들과 전태일이 싸우다 죽어간 1970년대의 한국이, 지금 21세기의 방글라데시에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더 선명하고 더 참혹하게 말예요.

위 사진:영화 <21세기>의 한 장면<출처; 서울국제노동영화제>


2.
<21세기>를 들고 한국에 온 자히드 무나 감독은 그의 온 20대를 한국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들에게 돈을 부쳐주기 위해 떠나온 먼 나라에서 그는 정말로 ‘노동자’가 되었고, 이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으며, 추방당했습니다. 아펙(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높은 사람들이 ‘가열차게’ 세계화를 홍보하던 2004년. 그는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노라 울먹였지만, 정말로 그가 돌아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을 아무리 떠들어대도, 사실 세계는 견고하게 구획되어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요.

눈에 보이거나 안 보이는 무수한 구획들이 우리가 살 곳을 명령하고, 우리의 이동을 금지합니다. 이러한 장벽을 가장 선연하게 보여주는 건 아마도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이겠지요. 무수한 사람들이 그 국경을 넘어가다 죽었다고 합니다. 물을 건너다 빠져죽고, 사막을 건너다 타들어가고. 길고긴 국경을 따라 세워진 벽에는, 죽어간 사람의 수만큼 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벽을 따라 흘러가는 카메라의 시선에 춤을 추듯 이어지는 관들의 띠. 그래도 사람들은 벽을 넘기 위해 다시 밤을 기다립니다. 죽음을 건너지 않고서는 이미 거기에 어떤 삶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름, KBS에서 상영한 <나프타(NA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에서 가장 무섭고 가슴 아리는 풍경이었지요.

끊임없이 국경을 넘어 숨어드는 불법 이주자들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는 기를 쓰고 있습니다. 지난 5월 국경 600km에 장벽을 설치한데 이어, 10월 미 상원은 멕시코와의 국경에 1,120km의 이중 담장을 설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해요. 60억 달러, 약 6조 원의 돈이 드는 사업입니다. 별도로 12억 달러의 예산이 ‘프레데터 B’라는 스펙터클한 이름의 군사 장비인 무인정찰기와 지상감시기, 위성, 레이더, 카메라를 포함한 감시 장비 확보를 위해 배정되었습니다. 세계화는 결코 이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

위 사진: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있는 국경 모습<출처; 미키의 라틴스케치>


세계화는 자본을 위해, 투자자들을 위해서만 진행됩니다. 이주자들을 막기 위해 스타워즈급의 첨단 장비들이 총동원되고 있는 한편에서 FTA가 투자자들을 위해 모든 장애물들을 없애고 있지요. FTA를 체결하면 상대국의 투자에 대해선 어떤 의무도 강제할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FTA는 환경, 노동자들의 안정적 고용, 사회복지 등을 위한 모든 의무들을 거부합니다. 최고 경영진의 입출국 제한은 제거되고, 투자자에겐 외교관에 맞먹는 면책 특권이 부여된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로든 가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고, 비싼 값에 물건을 팔아먹을 수 있는, 환경폐기물을 아무렇게나 버리고도 당당할 수 있는 자본의 매끄러운 공간을 그들은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그런 특권들을 일일이 조항으로 만들어 계약하지 않아도, 자본가들은 언제나 발빠르게 움직여왔습니다. 지금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의류 공장들은 한국 사람이 경영하고 있다더군요. 한국의 1970년대를 재현하기 위해 방글라데시까지 건너간 한국의 자본가들. 언젠가는 그들이,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자본가와 정치인들이 한국과 방글라데시 사이의 FTA를 요구할 것입니다. 세계는 국경 없는 하나가 되고 있다고, 우리만 우물 안의 개구리로 남을 거냐고, 이 세계화의 흐름에 동참하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말이지요.

3.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자히드 무나는 정말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자신이 만든 영화를 가지고서요. 어처구니없을 만큼 엄혹한 (혹은 우스꽝스러운) 방글라데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들은 카메라도, 편집할 컴퓨터도 없이 여기저기서 잠깐씩 빌린 카메라로 영화를 찍고,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다니며 영화를 상영했다고 합니다. 브레이크 쓰루의 고군분투와 함께 그들의 영화는 닫힌 세계를 돌파하기 위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국경을 넘어 여기 도착한 그들의 영화는 아무리 긴 역사적 고찰과 학술적 연구를 동원해도 다 말하지 못할 거대한 맥락의 의미를 간결하게 응축하고, 닫힌 세계를 연결하는 매듭으로 반짝거렸습니다.

자본이 우리의 장소를 점점 더 강하게 구획하는 이 순간에, 우리는 오히려 가장 고립된 장소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가장 큰 장벽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배웁니다.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으며 언제나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일할 권리,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 우리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며 우리의 삶을 스스로 구성할 권리라는 것을요. 그것은 결코 국가나 자본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창출해야만 할 권리라는 것도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디디 님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는 '에프키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35 호 [기사입력] 2007년 01월 02일 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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