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눈으로 본 학교 성교육] 지금 여기서 이대로 행복하기 위한 성교육으로

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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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올해 4월,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성소수자에 대한 내용을 배제한 것이나 보수적인 성별 관념을 담고 있는 것이 지적되며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교육부가 올해 내놓은 성교육 표준안이 ‘특별히’ 후퇴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져 온 성교육은 애초부터 수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연재를 통해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자신이 경험한 학교 성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청소년들의 삶의 현실을 바탕으로, 현재 학교 성교육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나의 실패한 연애,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16살 때였던 재작년 경험한 내 첫 연애는 한마디로 ‘폭망’이었다. 매력도 없고 ‘평타’에도 못 미치는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에 감지덕지하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데이트도, 섹스도, 앞으로의 계획도, 내 생각과 느낌보다는 그의 행동이나 ‘일반적이라고 정해진 것’에 따랐다. 재미도 없고 희망도 없던 첫 연애를 끝낸 후, 홀가분함은 찰나였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 또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두려움에 짓눌렸다. 처마 밑에서 다른 처마 밑으로 건너뛰듯이 내가 좋다는, 하지만 내가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과 금방 또 연애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갈망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상과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날 때부터 가진 몸과 성격이지만, 더 어릴 때의 생각은 달랐다. 분명 내가 가장 통통했던 7살 때 TV에서 외모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보고 엄마 화장대 거울을 들여다보며 ‘설마 나도 통통한 거나 외모 때문에 걱정하고 슬퍼하게 될까? 아냐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설마가 정확히 맞아버린, 어긋남의 본격 시작은 중학교 입학할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착하고 섹시한 아이가 되어야 해?

입학하자마자 어린 여성으로서의 ‘처신’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무릎을 덮는 긴 치마 안에 속바지를 입고 다리를 오므리고 앉으라는 등 뻔한 이야기였다. 그때는 그냥 받아들였지만, 지금 생각했을 때 흥미로운 게 몇 개 있다. ‘속옷’과 ‘남학생’에 대한 이야기다.
흰색 속옷을 입고, 브래지어를 꼭 차라고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학생답게 요란하지 않고 단정한 옷차림을 할 것’과, ‘속이 비치는 흰색 교복 블라우스 안에 색깔 있는 속옷을 입으면 보기 안 좋으며, 브래지어를 꾸준히 해야 처지지 않은 예쁜 가슴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아직 어리니 외적 매력을 가꾸지 말라면서, 동시에 그게 아름다운 여성이 될 수 있는 조건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학생들은 전자는 가볍게 무시하면서도 후자에는 사뭇 집착했다. 브래지어를 꼬박 차는 것은 물론, 교실에서 예쁜 가슴을 만든다는 운동 동작을 서로 알려주며 열심히 했다. 서로의 가슴을 ‘절벽’(납작한 가슴)이니 ‘뽕빨’(보형속옷 덕)이니 평가하고 질투하기도 했다.
남학생에 대해서는 또래 남성이 성폭행을 가한 사례를 이야기하고 ‘남자는 다 그렇다’며 은연중에 남성 청소년은 성욕을 주체할 수 없고 폭력적이라는 편견과 공포심을 심었다. 뜬금없이 모두가 모인 교실에서 교사가 한 학생을 호명하며 ‘남자친구 있지?’라며 장난스레 떠보는 일도 잦았다. 의도를 뻔히 아는 학생들은 있어도 정색하고 없는 척을 했다. 직접 ‘또래 이성을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는 못하지만, 북괴 간첩에 대해 가르치는 것 마냥 실체 없는 ‘무서운 남학생’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우리 눈앞에 내걸었다.

위 사진:"영화 <나에게서 온 편지>의 한 장면입니다. 9살 여성 아동이 주인공인데 국내에서는 12세 관람가로 개봉했어요. (씁쓸) 영화 전반적으로 성이 밝고 즐겁게, 그러면서도 비현실적이지 않게, 정말 삶의 일부로 표현되는 것이 좋아서 기억에 남아요. 이 글을 읽는 분들과도 나누고 싶네요."

몸과 외모에 대해서는 철저히 건강의 잣대로 가르쳤다. 비만이거나 마른 몸은 건강하지 못한 몸이므로 생활습관을 바꿔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가르쳤다. 마르면서도 젊고 건강한 ‘좋은’ 몸에 대한 전광판과 스크린 등 온갖 표현물로부터의 주입, 그 틀에 맞춰야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일상적인 세뇌에 고상한 이유와 건전한 해결책을 덧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외모를 비관하고, 외모를 못나게 만드는 자신의 생활습관과 성격까지 비관하며 자괴감에 빠진 우리를 위로하려고 아마 애쓰던 한 남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다들 세수만 해도 예뻐.’ 우리의 피부를 자신이 만난 한 나이 든 여성의 피부와 비교하며 한 말이었다. 영 곧이들리지 않고 불쾌했다. 지금의 탱탱한 피부가 자랑스럽기보다는, 그마저 잃어버리고 똑같이 주름진 남성에게 ‘생얼 괴물’이라고 뒷담 까일 나중이 두려워졌다.

성교육과 포르노 사이를 방황하다

2차 성징에 대해 알려주다 갑자기 자궁 속을 해부하는, 듣다보면 마치 섹스의 목적은 오직 임신인 듯한 ‘공식’ 성교육이 어긋남의 정점을 찍었다. 분명 섹스에는 임신 말고 다른 목적이 있는데, 어른이 아니지만 나도 밤마다 자꾸 생각이 나는데. 궁금증과 욕구를 채우기 위해 책을 찾아 읽고, 엄마의 개인정보와 아이디로 열심히 포털 검색을 하고, ‘19금’ 컨텐츠를 찾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새로운 것도 잠시, 아무것도 모르고 바라지도 않는다는 순수한 표정의 여주인공이 강간에 가까운 섹스를 하고 남성의 사정과 동시에 오르가즘을 느끼는 괴상하고 한결같은 레퍼토리에 질려버렸다. 남성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처녀 감별법이니 젖꼭지 색깔 감별법이니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면서 한심한 루머를 퍼트리고 여성을 ‘상타취 평타취 하타취’, ‘아다 후다’로 나누어 값을 매기는 광경에 충격 받았다.
그리고 학교는 음란물 중독 예방교육이랍시고 음란물 보는 학생을 감별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체크리스트는 눈이 충혈되어 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한다 등등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항목으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남들에게 들키기가 죽어도 싫었기 때문에 들킬까봐 무지 걱정을 했다. 친구들끼리 야한 얘기를 할 때도 애써 아무것도 모르는 척, 관심이 없는 척을 했다.

동성애,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물어보면 오히려 답을 회피했다. 종교단체에서 나눠주는 찌라시와 인터넷에서 떠도는 루머, TV 드라마 속 모호하면서도 획일적인 캐릭터가 ‘게이’, ‘레즈’, ‘여장남자’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생소한 것에 대한 반응이 으레 그렇듯, 호기심과 함께 은근한 공포와 혐오가 떠돌았다. 여자 연예인을 덕질하거나 머리를 숏컷으로 짧게 자르면 ‘쟤 레즈 아니냐’는 뒷담을 피할 수 없었다. 3학년 때 친구가 내게만 커밍아웃을 했다. 다행히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웹툰을 봤던 후라 친구에게 상처주지 않고 잘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아찔하다. 최소한 그에게 나는 ‘남자들끼리 그러는(사귀는) 건 좀 징그럽지 않냐’는 발언을 하는 교사를 같이 욕하고, 짝사랑 이야기를 털어놓는 상대가 되지 못했을 거다.

엉터리로 성을 가르치는, 학교가 잘못했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며 그립다며 쓰고 그리고 노래 부르는 사랑이 궁금했다. 또 사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해 배우기 위해 내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에서는 결코 사랑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다. 스스로 찾아보려 했을 때 본 것은 오히려 진실을 가리기에 급급하고 왜곡하는,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학교 성교육의 폐해였다. 성다수자들이 성소수자들에 대해, 또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가진 왜곡된 지식과 환상, 사회의 부조리를 여성의 잘못으로 돌리는 주장이 제동 없이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었다. 짝사랑을 할 뿐인 웃긴 조연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로서는 안 된다며, 외모와 성격, 능력 모든 면에서 갖춰야 하는 여성상을 들이밀었다. 청소년이니 순결, 순수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그렇게 깎이고 깎여 남은 나는 흰색와이어브래지어만큼이나 재미없고 괴로운 사람이었다. 연애를 하며 그 특성들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나를 좋아할 사람이 없다고 믿었기에,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오히려 황송해하며 고민 없이 연애를 시작했다. 그가 원할 때 언제나 그의 성욕을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진 돈에 비해 비싼 선물을 사면서도 그가 사준 선물에 비해 훨씬 싸고 적기 때문에 그가 나를 ‘김치녀’로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내가 느낀 것은 찢어질 듯한 아픔과 임신에 대한 두려움뿐이었을지라도, 그가 사정을 함과 동시에 끝나는 지루한 섹스를 하고도 ‘좋았다’고 말했다. 삽입섹스 말고 다른 섹스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으며, 삽입섹스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결함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는 본적이 없었고, 아무에게도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 숨기고 앓았다.

그렇게 어긋난 3년을 지나, 지금이라도 온전한 나를 들여다보고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은 거의 순전히 운빨이다. 마침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우연히 보게 된 책 중에 페미니즘적인 책들이 있었던 거다. 학교 진로캠프에 갔다가 관심도 없던 청소년인권운동을 접하게 되어 인권활동가들을 만나고 이야기 나누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렇지 않은 다른 청소년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2주 전쯤 고등학생 대상 인권교육을 갈 기회가 생겼다. 6차시 연속이었기 때문에 차시별로 주제를 다르게 정할 수 있었고, 나는 내가 맡은 차시의 주제를 ‘성’으로 정했다. 내가 느꼈던 갈증과 답답함을 다른 학생들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 되면 알게 될 거라고 쉬쉬하며 숨기는 게 아니라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를 원해서, 그리고 강단에 선 사람만 가르치고 상담하는 입장이기보다는 서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평적인 관계이기를 원해서 제목을 ‘NO 19금, NO 모자이크 모두의 상담소’라고 지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1. ‘모두가 아름다워진 세상’보다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이 더 살기 좋다는 거. 그러니까 우리는 자신과 남에게 아름다워지라고 채근하기보다, 서로의 겉모습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2. 성은 어떤 숭고한 것도 아니고, 추악한 것도 아닌, 그냥 우리의 삶의 큰 일부일 뿐이란 거. 그래서 우리는 성을 숨기거나, 참거나, 남과 똑같이 가지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학교와 사회가 우리에게 성과 사랑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무작정 참으라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모둠 참여형으로 진행했던 첫 번째 교육에서는 시간이 적어 앞에서 말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기 힘들었다. 두 번째 교육은 강의식으로 하되 후반 거의 절반을 자유롭게 질의응답을 했다. 두 번째 교육은 대상 학생들이 남성이었기에 더 긴장했다. 그들이 나를 대상화하거나 폭력적으로 대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제 개인에 대한 질문은 대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미리 이야기하자, 학생들도 질문을 하며 그 선을 지켜줬다. 한 학생이 내 성경험에 관한 흥미성 질문을 하자 다른 학생이 그를 제지하고 나에게 답변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부터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가 아는 한 올바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의 중간에 역시 긴장해버렸다. “어떻게 그런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셨는지?” 한 분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던 것 같다. “역시 저도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얼굴도 빨개지고 그러네요.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던) 연애 상대들이 제 이야기를 잘 받아들이지 않고, 바뀌지 않았던, 혹은 제가 이야기하지 못했던 이유가 성을 숨기기만 하고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여러분에게 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고, 또 그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혹시라도 불편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긴장을 했어서 이렇게 잘 이야기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자 몇 분이 “‘좋아요.”, “괜찮아요.”라고 답해주셨다.

성이 우리의 삶에 당연하고 중요한 만큼, 일상에서도 교육에서도 당연하고 중요하게 드러나면 좋겠다. 모두의 입에 쉽게 오르내림과 동시에, 아동과 청소년까지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토론하게 되기를 바란다. 성과 우리의 삶이 왜곡 없이 존재하는 그대로 드러나기를 바란다.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위한 성교육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밀루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465 호 [기사입력] 2015년 12월 03일 14: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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