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어장] 안전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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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왜 이리 늦었어?
B: 응. 나오려는데 문 잠금장치가 말을 안 들어서. 매뉴얼 찾고 어쩌고 쩔쩔매다가 간신히 잠그고 왔어.
A: 불안하겠다. 작년에도 그런 적 있잖아?
B: 그랬지. 아주 추운 날엔 기계가 오작동 하더라구. 또 그러고 나면 괜찮아져서 새로 교체하기도 그렇고. 비싸잖아.
A: 문만 잘 잠근다고 안전한 건 아니지. 사실 난 내 통장이 젤 불안하다. 올해도 마이너스인데 내년엔 어찌 버틸지 모르겠어.
B: 죄다 불확실해서 불안하다 하는데, 더 힘들어질 건 확실한 것 같아.
A: 야! 우리 연말에 만났는데, 좀 기운 나는 얘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니니?
B: 억지로 기운 내잔 말은 하기 싫어.
A: 하긴 너나 나나 지금도 충분히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낼 기운이 있을까?

어떤 안전?

B: 큰 거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고만고만하게 살더라도 맘편히 살고 싶은 건데.
A: 안전에 대한 욕구는 인간에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B: 문제는 다들 고만고만하게 자기 신체와 지갑의 안전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거야.
A: 그게 뭐 잘못인가?
B: 안전에는 개인적인 안전과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안전이 있대. 개인적인 신체와 물질의 안전을 더 포괄적인 ‘안전’(security)으로부터 따로 집어낸 ‘안전’(safety)이 있는 거지. 우리가 흔히 몰두하는 건 개인적인 안전이야.
A: 사실 둘 다 필요하고 중요한 거 아냐? 어차피 연관되는 거고.
B: 그런데 개인적 안전에 집착할수록 소위 각자도생하는 것을 답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아. 가령 비싼 금고, 비싼 자물쇠, 빗장 채운 주거시설, 따로 만든 교육과 의료시설…… 이런 식으로 ‘따로’에 집착할수록 사회적‧집단적인 안전은 뒷전이 되고 개인적 안전은 돈 주고 능력껏 구매해야 하는 것이 돼버려.
A: 네 말대로, 각자가 집착하고 주력하는 자기만의 안전이랑 함께 공동으로 책임질 안전이 따로 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B: 가령, 내가 아무리 명랑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어도 모르는 사람 혹은 아는 사람에게 무례한 말을 듣거나 무례한 행동을 겪게 되면 그날 기분 끝장이지. 내 정신건강이 무너져.
A: 화장실도 못 가고 수면부족으로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는 건 어때?
B: 위험한 작업인데도 안전장치 설치나 중지요청을 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공사장 옆을 지나는 건?
A: 지나친 근무로 인한 피로로 흐느적거리는 의료진에게 내 몸을 맡기는 건?
B: 자연재해건 인재건 참사가 발생해도 국가조차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는 건?

각자도생의 안전?

A: 야! 여름도 아닌데 공포영화 찍는 것 같다. 일터도 무섭고, 그곳을 오가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계단도 무섭고, 오가며 부딪치는 모르는 사람들, 알고 만나는 사람들 죄다 무섭네.
B: 다 돈 아끼자고 그런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몰아붙이는 게 다반사인데, 각자는 또 돈을 들여 이런저런 안전을 구매하지.
A: 개별적으론 기껏 안전을 추구했다고 하는 노력이 집단적으로 추구할 안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겠구나.
B: 그게 부메랑이 돼서 되돌아오면 개인적 안전은 더 위험해지고 사회적 도움은커녕 혼자 다 책임져야 하는 거지.
A: 그러니까 안전에 대한 추구가 주파수를 잘못 맞추면 실제론 위험을 향해가는 것일 수 있다는 거구나. 다들 고만고만하게 자기만의 안전에 집착하고 주력할수록 같이 책임질 안전은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거네.

안전에 의한 안전의 억압

A: 하지만 집단적 안전의 추구가 무조건 좋은 걸까? 국가안보와 사회적 안전의 추구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인권을 압박하는 일이 많잖아.
B: 맞아. 국가안보란 말이 모든 안전을 집어삼켜서 개인적 안전이 질식하는 일이 많지. 엄청난 인권침해의 역사가 차고 넘치도록 사례를 보여주잖아. 또 사회적 안전의 명목으로 주류가 아니거나 소수자인 사람들을 배제하고 쫓아내려는 일이 엄청 많지.
A: 그렇게 따지면 안전이란 말 자체가 엄청 불안하네.
B: 그래서 안전이란 말은 혼자 돌아다니면 안돼. 자유나 인권 등과 같이 엮어서 그 맥락 안에서 쓰여야 돼.
A: 그러니까 자유를 억압한 대가로 거래되는 안전, 권리로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능력껏 시장에서 구매하는 안전 같은 건 오히려 위험한 안전이네.
B: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봐봐. 집단적으로 안전을 추구했다고 해서 ‘안전’의 논리로 엄청 핍박받잖아.
A: 아, 집회시위 하는 거? 거기 담긴 요구사항들은 같이 살 방도를 찾아보자는 것인데, 사실 들어보지도 않고 ‘피곤하다’ ‘불편하다’ 심지어 ‘불손하다’고 때려잡으려고만 들지.
B: 그런 게 안전을 빙자한 안전의 억압 아닐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시위 했다고 신체의 구속을 당연시하는 거.
A: 또 있지. 정부 정책이나 고위급 인사들을 비판했다고 툭하면 명예훼손이니 손해배상이니 소송으로 얽어매는 거.
B: 또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다간 혐오발언과 폭력으로 들볶일 위험에 빠지는 거.
A: 일터에서 함부로 쉽게 해고하는 거. 안 나가면 온갖 방법으로 괴롭히는 거.
B: 사회안전망 없이 경기후퇴와 불안을 감내하라는 거.
A: 예를 들자면 끝도 없겠네. 근데 이거 죄다 인권의 목록들과 비슷하다.

인간의 안전으로

B: 응. 안전의 개념이 그런 식으로 전개돼왔거든. 국가안보에서 인간의 안전으로. 인간의 안전은 국가안보의 배타적 강조가 왜곡하거나 빠뜨린 안전 요소를 보완하는 개념이야. 국경과 무력을 통한 안전이 아니라 정치적 안전, 경제적 안전, 건강과 생태적 안전 등을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거지.
A: 자기 정부를 비판한다고 해서 애국심 운운하는 게 진짜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는 걸까? 획일성으로 내부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공동체를 강화할까?
B: 내가 어떤 책에서 본 건데, 국가안보를 빌미로 강압적인 정책을 펴는 정부들이 취하는 공통적인 행태가 있대. 가령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애국심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반대자들을 관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결사에 대한 죄를 부과함으로써 정치적 행동을 무력화시키는 것, 정부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비밀주의를 강화하는 것, 언론과 시민 심지어 국회조차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걸 방해받는 것, 단지 반정부적이란 이유로 시민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는 것……
A: 그만 그만! 나 자꾸 더 무서워져. 이거 요즘 우리가 매일 보고 듣는 일이잖아.
B: 우리 삶의 취약성이 커질수록 거기에 걸맞은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말 엉뚱한 데서 삽질하는 것 같지.

민주주의가 안전이다

A: 안전과 관련된 요소들은 워낙 다양하고 죄다 중요해 보여. 그래서 포괄적으로 다뤄야 하는게 맞는 것 같아. 그런데 내가 보기엔 시민들이 보복과 처벌의 공포 없이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게 젤 중요할 것 같은데? 그래야 각종 영역에서 안전의 주파수를 어떻게 맞출지를 결정할 수 있잖아.
B: 맞아. 그래서 난 정치인들의 망언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아. 시민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가로막는 정치가 젤 큰 불안요소야. ‘정치가 밥 먹여주냐’고 하는데 진짜 그렇거든. 우리의 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결정하는 게 정치잖아.
A: 그래서 밥을 포함한 진짜 안전을 책임지지 못 하는 정치가들일수록 책임을 회피하려고 엉뚱한 쪽으로 불안의 책임을 돌려.
B: ‘쟤네 때문에 불안하다’, ‘쟤네를 때려잡을 테니, 시민 각자는 ’먹고사니즘‘에 몰두해라’…… 이런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우리가 안전해지진 않잖아?

불신과 기만, 속아 넘어가기

A: 지구온난화, 핵의 위험, 사람 죽이는 바이러스…… 사실 죄다 무섭긴 하지만 난 솔직히 이런 것들엔 감이 안 와. 당장 눈앞의 불안이 워낙 커서 그런지 그런 것까지 살필 여유가 없네.
B: 내 지갑이나 통장에 들고 나는 것을 계산할 가능성은 있는데 이 사회의 안전한 지속가능성에 대해선 솔직히 ‘난 모르겠다’가 되는 것 같아.
A: 우린 위기와 불안에 푹 젖어있어.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냥 이러고 사는 것 같아.
B: 그치. 충격적 사건은 또 다른 충격적 사건으로 덮이고 정치적 불만은 또 다른 불만으로 덮이고……
A: 우리가 정말 안전을 원하기는 하는 걸까? 하는 행동들은 죄다 불안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B: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하면 ‘비현실적이다’, ‘경제를 모른다’는 타박만 잔뜩이지. 다른 방식을 구상하고 애쓰는 사람들만 박해받고.
A: 안전을 위한 진짜 조치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그 가능성에 대한 불신이라더라.
B: 너와 내가 뭔가 행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 믿는 거?
A: 또 기만이 있지. 속고 속아 넘어가는 거.
B: 나는 속아 넘어가는 쪽이 더 우울하고 나쁜 것 같은데.
A: 아닌 처방인 줄 알면서 삼키는 약은 약이 아니라 독이겠지?
B: 우리의 불안에 무슨 확실한 처방전이 있겠어? 약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식사 조절하고 운동해야 하듯이 사려 깊은 행동을 취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A: 난 적어도 속아 넘어가는 쪽이 되고 싶진 않아.
B: ‘내가 처한 생존의 위기를 나 혼자 감당할 게 아니라 사회가 같이 나눌 수 있지 않느냐’, ‘정치는 그런 걸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더 이상 믿지 않는 건, 진짜 속은 것일까? 속아 넘어간 척하는 것일까?
A: 가능성에 대한 불신과 기만에 속아주기, 환상의 복식조네.
B: 그럼 우린 어떤 복식조를 짜야 할까? 정말 안전하고 싶다면 말이야.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67 호 [기사입력] 2015년 12월 18일 17: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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