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어릴때의 인권이야기] 연대, 오랜 투쟁을 떠받치는 힘

나어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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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단체에서 일하지만 많은 공장을 가보지는 못했다. 몇 번 안 되는 경험의 기억도 공장 앞이거나 돌아가지 않는 텅 빈 공장의 풍경이다. 그 중 하나는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가스충전소가 되어버린 공장이다. 사라져버린 탓에 오히려 선연하게 마음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많이들 알고 있을 콜트‧콜텍 이야기다. 노동자들은 지금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농성장에서 투쟁하며 살아가고 있다.

2016년 1월 20일로 거리에서 3,276일째, 그러나 싸우는 이유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인천의 콜트공장과 대전의 콜텍공장에서 기타를 만들던 이들이다. 창문도 권리도 쉴 틈도 없는 공장에서 비인간적인 대우에 최저임금을 받으며 콜트기타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냈다고 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박영호 자본은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물량을 빼돌렸다. 시간이 지나며 해외 물량이전은 국내 공장 경영난의 근거로 둔갑했다. 2007년 콜텍공장에 이어 2008년 콜트공장까지 문을 닫았고, 모든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었다. 그러나 콜트기타는 2000년대 초반 이미 세계 기타시장의 30%를 점유할 만큼 성장했고, 지금도 50개 국가의 독점 배급망을 유지하는 인기 브랜드로 탄탄한 입지를 자랑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시작했다. 인천과 대전 공장에서 농성을 벌이며, 수도 없이 서울의 콜텍 본사 앞을 찾아가 공장 가동과 교섭을 요구했다. 2007년 11월에는 복직투쟁을 이어가던 콜트공장의 한 노동자가 분신을 시도하고, 2008년 10월에는 콜텍의 이인근 지회장이 양화대교 주변 고압송전탑에서 20일이나 단식하며 한 달간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본사 점거농성을 시도했다가 모두 연행되기도 했다. 처절한 투쟁에 대한 박영호 자본의 대응은 콜텍문화재단을 설립해 이미지 제고를 위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콜텍문화재단은 고인이 된 가수 김현식과 김광석을 기념하는 자리를 만들고 이름을 올리며, 영혼을 위무하는 노래조차 자신들이 파탄 낸 노동자의 삶을 지우는 배경음악으로 삼고 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알려지면서 문화운동단체와 예술인들이 연대하기 시작했다. 2008년 12월, 음악인들은 홍대 앞 클럽 빵에서 일주일 간 헌정콘서트를 열었고, 지금도 매월 마지막 주에는 클럽 빵에서 ‘콜트‧콜텍 수요문화제’가 열린다. 생산량의 절대다수를 수출에 의존하는 콜트‧콜텍의 노동탄압을 알리기 위해, 세계적인 악기박람회가 열리는 독일, 미국, 일본으로 여섯 차례의 원정투쟁을 다녀오기도 했다.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와 잭 데라 로차를 비롯한 유수한 뮤지션들이 적극적으로 투쟁 지지의사를 표명하면서 큰 이슈가 되고, 투쟁에 연대하는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될수록 낯모르는 이들의 연대가 줄을 잇고, 물량 해외이전을 통한 위장폐업과 흑자 정리해고에 대한 비난이 높아졌다. 하지만 박영호 자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미 4년을 싸웠지만 변한 것은 없었고, 물러설 수 없는 노동자들은 2011년 봄부터 인천의 콜트공장에 모여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 버려졌던 공장을 ‘기타노동자의 집’으로 만들고, 공연장으로 극장으로 전시회장으로 또 성당으로 식당으로 변신하는 그곳에 수많은 문화예술인과 연대자들이 함께했다. 하지만 수차례의 침탈 위협 끝에 2013년 2월 기타노동자들은 결국 공장에서 내몰렸고, 격렬한 저항과 싸움이 있었지만 공장은 사라졌다.

투쟁을 알리고 이어가기 위해 노동자들은 난생 처음일 수많은 도전을 받아들였다. 평생 만들기만 하던 기타를 배우고 오랜 투쟁을 자신들만의 노래에 담아 ‘콜밴’으로 공연을 하고, 어설픈 연기로 연극 무대에도 섰다. 그저 노동자로 살아갈 때는 생각지도 못했을 일들을 새롭게 감당하며 사라진 공장 앞 천막을 집 삼아 투쟁해왔던 이들은 지난해 10월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 또다시 농성장을 차렸다.

위 사진:2013년 2월 1일 인천 콜트공장 침탈과 대치 (출처: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싸우는 것이 이기는 것”

기타노동자들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여의도에서 투쟁하는 이유는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내뱉은 "콜트악기·콜텍, 발레오공조코리아 등은 이익을 많이 내던 회사인데 강경 노조 때문에 문을 닫았다."는 등의 거짓말에 대한 항의다. 그러나 김무성 따위의 사과 한 마디 듣자고, 열 번째 겨울을 거리에서 보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열심히 일만 하다가 쫓겨난 닫힌 공장의 문 앞에서, 돌아갈 공장이 없으니 미래에 경영위기가 올 수도 있으니 정리해고도 마땅하다는 준엄한 법 앞에서, 수도 없이 무너졌을 마음과 삶을 제 자리로 돌리기 위해 노동자들은 싸움을 멈출 수 없는 게 아닐까.

예순이 다 된 콜트의 방종운 지회장과 긴 투쟁에 몸이 망가진 콜텍의 이인근 지회장이 곡기를 끊으며 사과를 요구하고 차례로 쓰러졌지만, 해를 넘긴 지금까지도 새누리당과 김무성은 묵묵부답이다. 하루하루 단식이 날짜를 더해갈 때 모여들던 관심과 연대도 조금씩 시들해졌다.

물론 수많은 누군가들이 함께 눈물 흘리고 분을 삭이며 곁을 지켜준 덕분에 이어올 수 있었던 긴 싸움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농성장, 도무지 나아가지 못하는 듯 막막하기만 한 시간을 견디는 것은 오롯이 노동자들의 몫이다. 가늠할 수도 없는 투쟁의 시간들로 삶을 채워온 노동자들은 그래서, 상처투성이 심신이나마 조금씩 강해지며 질기게 버티는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너진 마음과 조각 난 삶을 제 자리로 돌리기 위한 필사적인 싸움이 자아내는 것이 고통과 안타까움만은 아니다. 미안한 마음에, 뭐라도 돕고 싶어 농성장을 찾은 이들이 오히려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고백을 하기도 한다. 자신만을 돌보며 위를 향해서만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세상에서는 꺼낼 수 없었던 바람이, 투쟁의 현장과 만나 고개를 드는 것이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 외면했던 마음을 발견하고 그런 삶을 꿈꾸는 것이 나만이 아님을 확인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작은 기적의 순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여의도 농성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두물머리에서 보내온 응원 현수막에는 “싸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주저앉지 않기 위해 힘을 내며 싸우지만 10년 차에 접어든 투쟁은 사실 버겁고 지난하다. 하지만 무겁게 내려앉은 투쟁의 시간을 떠받치는 반짝이는 마음들, 잠시 곁을 지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무수한 걸음들이 쌓아올린 힘으로 투쟁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무수히 좌절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싸워온 투쟁의 10년은 뭉텅뭉텅 흐른 덩어리의 시간이 아니라 구체적인 어제와 오늘이 모인 날들이다. 그리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싸움은 하루하루, 이 겨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위 사진:여의도 콜트콜텍 농성장 (출처: 콜트콜텍공대위)

덧붙이는 글
나어릴때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1 호 [기사입력] 2016년 01월 21일 14: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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