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의 인권이야기] 청소년운동? 청소년‘인권’운동?

인권, 함께해서 좋지만 또 조금 부담스러운 그것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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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운동이라고 안 하고 노동운동이라고 하고, 여성인권운동보다는 여성운동이라고 더 많이 쓴다. 성소수자운동도 그렇고. 그런데 왜 우리는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더 많이 쓰지?”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을 소개할 때면 이런 소박한 의문을 느끼곤 한다. 그냥 단체의 이름에 인권이 들어간다거나 그런 차원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의 중요한 과제는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진영을 만드는 일이었다. 2006년 만들어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그 목표로 “△청소년인권운동 내부의 일상적 소통 강화, △청소년인권운동의 전략 마련과 현안 대응, △청소년인권활동가 역량 강화를 위한 배움터 개설과 연구 작업, △민간 청소년인권운동 진영의 형성”을 꼽고 있었는데, 그 목표는 사실상 막연한 이미지와 말만 있던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것을 내외적 실체를 가진 것으로 쌓아올리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소수자운동이나 정체성을 표방한 운동들은 인권 이야기를 주로 하더라도 굳이 ‘인권’을 넣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의, 여성의,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운동이라는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우리는 ‘인권’을 운동의 정체성으로 표방해야 했던 것일까? 우리는 왜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들려고 했던 것일까?

청소년단체, 청소년운동의 ‘전통적’인 뜻

“청소년운동”이란 단어로 책이나 논문 검색을 해보면, 청소년 운동(Sports) 선수에 대한 내용들 외에도 은근히 많은 내용들이 검색 결과에 나온다. 그것들 대부분은 대학 청소년학과나 청소년지도사에 관련한 것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운동이 청소년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2004년에 나온 <새 시대 청소년운동의 방향>이라는 책 소개를 보자. “청소년관련 정책과 청소년문제, 청소년 육성 등에 대한 청소년운동의 지침서.” ‘청소년운동’이란,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을 육성하고 선도하며, 청소년들의 건전한 사회 참여를 조직하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종교적으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선교와 종교적 훈련 활동을 가리키기도 했다. 다양한 청소년수련활동들이나 국제교류, 자원봉사활동 등이 대표적이다.

‘청소년단체’란 말도 마찬가지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라는 조직이 있는데, 이는 현재 청소년기본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 특수법인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청소년운동의 대표격인 연합 조직인데, 그 회원단체 목록 중 눈에 띄는 몇 개만 나열해보자면 이러하다. 어린이재단, 서울가톨릭청소년회, 대한적십자사청소년적십자, 대한불교청년회, 한국기독학생회총연합, 한국스카우트연맹,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 한국해양소년단연맹, 한국화랑청소년육성회, 흥사단 등. 이런 이름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청소년단체라는 개념 역시 청소년 당사자들의 조직 또는 청소년들의 권익과 해방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YMCA나 적십자, 보이스카웃 등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육성하고 수련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청소년단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청소년운동>(이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기존에 사용되어 온 의미의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으로, 내가 하는 청소년의 권익과 해방을 위한 운동은 청소년운동으로 표기하겠다.)의 이러한 의미와 용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20년대 ‘소년운동’ 속에서 소년보호/소년수양(계몽)/소년해방의 담론이 혼재했지만, 결국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계몽하고 교육하는 운동이 주류가 되면서 소년운동의 맥을 이어받은 광복 이후의 <청소년운동> 역시 이러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근대 국가가 청소년들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사회화시키려는 기획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마치 장애인의 인권을 주장하고 행동하는 운동이 대두되기 이전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복지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애계’, ‘장애단체’라고 불리던 상황과 비슷한 셈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흐름이 1990년대 후반에 나타난 이후로, 이러한 오래된 <청소년운동>과 선을 긋고 새로운 개념으로 운동을 정립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념들이 대두되었다. 일부에서는 1980년대 고등학생운동을 이어받은 ‘학생 운동’으로 이야기했고, 일부에서는 ‘진보적 청소년운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개념이 살아남았고 계속 쓰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청소년인권’이라는 단어 역시 <청소년운동>이나 국가기구에 의해서 전용되기도 하지만, 청소년운동이 주로 인권/기본권의 언어를 사용해왔고 청소년인권 문제를 다룬다는 점, 인권 자체가 가지는 해방적인 의미, 그리고 인권운동의 연대에 힘입어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위 사진:청소년운동은 '인권', '우리도 인간이다' 등을 주된 운동의 언어로 사용해왔다

인권, 계속 붙이고 갈 것인가?

청소년운동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에는 그 개념에 대해 많은 혼란이 있었다. <청소년운동>과의 구분점으로 청소년 당사자성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당사자성만을 강조하는 운동으로는 청소년 정체성의 특성상 운동이 연속성을 가지지 못했다. 우리가 스스로 청소년인권운동이라는 개념을 가지면서 어떤 운동인지 누구와 함께하는 운동인지 등이 더 분명해졌고 운동이 계속 이어져올 수 있었다. 인권운동의 이해와 연대와 지원 속에서 청소년운동이 성장해올 수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인권’이 담고 있는 자유와 평등, 해방을 향하는 지향성은 청소년운동의 소수자운동이자 사회 보편적 문제를 다루는 운동으로서의 주장을 벼리고 체계화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인권’이 붙어 있었기에 청소년운동은 여기까지 왔으며 청소년운동에게 인권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청소년운동이 청소년인권운동으로 스스로를 부르고 인권을 주된 언어로 사용하며 운동을 하는 것이 과연 괜찮을지, 머뭇거리게 되고 부담스럽게 느끼게 되는 점들도 있다. 첫 번째, 인권이라는 단어로 운동을 규정하면 우리 사회가 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이미지와 편견들도 함께 따라오게 된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은 왠지 훌륭하고 착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나오고, 청소년 대중들에게는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운동인 것 같다는 거리감도 가지게 만든다. 인권이 주로 헌신적인 구호활동이나 법에 관련된 활동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도덕적이고 엘리트적인 운동인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더 많은 청소년 대중들을 조직하고 함께하는 운동이 되기에는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그런 걸림돌이라고나 할까.

두 번째, ‘인권’의 언어로는 청소년운동이 다루는 문제들을 모두 다 포괄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청소년들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대부분 인권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권익에 관련되거나 의견을 내야 할 문제는 그밖에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학교운영이나 교육정책에 대해 의견을 낸다고 할 때 학교의 학사일정이나 교과목 구성에 대해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인권의 언어만 가지고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러 학생들이 민주적으로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습 부담이 가해져선 안 된다는 등의 원칙 정도만 말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구체적 의견들은 여러 여건을 고려하며 학생들의 토론을 통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청소년운동이 더 조직화하고 발전하여 청소년들의 집단적인 요구와 의견을 표출하는 운동이 된다고 하면 ‘인권’ 외의 문제들도 다루게 될 것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부르기는 다소 어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주류적인 인권 담론이 청소년운동의 청소년인권 주장과 불일치하는 면들이 있다는 점이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인권법 등의 내용이 현재 한국의 현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 그만큼이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국제인권법에는, 아직 크게 쟁점이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들도 있다. 예를 들면 가족을 사회의 기초 단위로 보고 보호하려는 관점이나, 청소년의 노동 금지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나, 청소년보호를 위해서 문화를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 등 말이다. 국제인권법의 규범과 해석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져왔고 그 안에도 다양하며 때로는 모순되는 입장들이 병존하고 있다. 청소년(아동)에 대해서도 근대적인 청소년(아동)관과 인권적 원칙에 따른 입장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인권 담론이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권위를 얻을 수 있고 여러 유용한 지원도 받을 수 있지만, 인권을 밀고 나갔을 때 우리 운동이 미래에는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되고 가능성을 제한받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든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나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운동을 가리키는 이름에 대해서는 ‘청소년인권운동’보다는 ‘청소년운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다. 이는 <청소년운동>으로부터 ‘청소년운동’이란 말의 주도권을 가져오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어느 활동가는 수십 년, 거의 100년 가까이 된 용례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을 거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청소년운동은 인권과 계속 함께 가겠지만, 이름도 그렇고 인권이 청소년운동의 어느 위치에 어떤 모양새로 있어야 적절한 건지는 운동의 발전과 시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다른 소수자운동들이나 사회운동들은 어떤 고민과 역사들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다. 여하간, 청소년인권운동에서 ‘인권’자를 빼고 청소년운동으로 부른다고 해서 다른 인권활동가들이 서운해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4 호 [기사입력] 2016년 02월 17일 15: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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