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위안부 문제가 짊어지고 있는 역사의 무게

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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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3월 27일 ‘위안부’ 피해 생존자 29명을 포함한 유족, 생존자 가족 등 41명은 ‘2015년 12.28 한일 외교장관 합의’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15 한일합의’는 일본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법적 책임’은 명시하지 않은 채 일본 정부의 공식 배상이 아닌 재단기금을 통한 보상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정부합의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길을 봉쇄하고 한국 정부가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권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피해자들의 존엄과 재산권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뉴스라고 전해지지만 전혀 새롭지 않다. ‘2015 한일합의’ 전에 ‘1965 한일협정’이 있었고, 바로 이 협정에 대한 헌법소원이 2006년에 제기되었다. 2011년 헌재는 한국 정부를 향해 피해자들의 청구권 문제해결에 나설 것을 주문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한일협상에 나선 정부가 내놓은 결과가 ‘2015 한일합의’이다. 2006년에 109명이던 청구인은 2011년 판결 당시 64명으로 줄었고, 다시 5년여가 지나 29명의 피해 생존자가 또 다른 한일합의에 대한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일본 정부가 아니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지난한 싸움을 더 많이 벌여온 답답한 현실이다.

한국 정부의 결연한 입장 표명, 사법부 판결, 국회 결의안,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는 한국정부가 피해자와 국민을 기만하고 일본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행태는 반복되어왔다. 아니,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징용, 재일조선인 피폭 피해자 문제와 같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의 무능함, 일본의 뻔뻔함만으로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위 사진:한일협상 규탄하고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촉구하며 열린 1월 6일 수요집회 <사진 출처: 프레시안>

1945년, 식민지배에 맞선 아시아 민중들의 해방투쟁

일본과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한 1945년은 연합국의 주축이었던 미국-소련-영국에게는 파시즘에 맞선 승리였지만, 이들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배를 수백, 수십 년 이상 당해온 민중들에게는 제국주의-식민주의에 맞선 투쟁의 승리이기도 했다. 패배한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과 독일의 식민지는 물론이고 최대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이 식민지 독립으로 방향을 틀면서 아시아, 아프리카에는 수많은 독립국들이 생겨났다. 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비화됐던 제국주의 국제질서와는 다른 국제질서를 구상한 미국의 의도가 관철된 것이었고, 반제국주의를 기치로 내건 소련의 지지로 가능했다. 물론 모든 제국주의 국가가 쉽게 식민지를 내놓은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1964년까지 알제리에서 전쟁을 벌였고, 베트남에서는 일본에 밀려났다가 45년 이후 다시 점령했지만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패배한 1954년에야 물러났다. 인도네시아를 수백 년 동안 지배했던 네덜란드도 2차 대전시기 일본에 밀려났다가 다시 점령을 했고 4년에 걸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 패배한 후 물러났다. 전후 아시아 각지의 민족해방과 독립은 일본을 비롯한 구미의 식민제국들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진 결과가 아니다. 식민지 시기부터 줄기차게 이어져온 민족해방투쟁과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이라는 전환기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그 어느 나라도 아시아 식민지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책임을 여전히 지지 않고 있다. 이를 가능케 했던 또 다른 조건이 바로 냉전이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각지의 민족해방투쟁은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인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 최대 정당이었던 공산당과 연합하면서 55년 ‘반둥회의’를 개최하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제적 흐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수하르토의 쿠데타 이후 2년 여 동안 이루어진 공산당 학살로 100만 명이 넘게 희생되고 냉전질서 속에서 학살은 용인되었다. 한반도에서는 3년여에 걸친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되면서 반제-반식민의 열기는 냉전질서로 대체된다. 사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은 중국, 베트남, 북한과 구(舊)식민제국들은 식민지배 청산은커녕 이제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선에서 대치하게 된다.

2001년, 더반(Durban) 인종차별철폐회의를 가능케 한 힘

소련 해체와 함께 시작된 90년대 탈냉전은 반공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억압되거나 봉합된 식민지배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재일조선인 피폭 문제 모두 한국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했던 90년대에 운동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1991년부터 북일 간의 수교교섭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교섭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식민지배 사과와 배상 문제였다. 90년대 초 한국과 일본 운동단체의 힘으로 북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의 피해자들과 도쿄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 역시 탈냉전의 흐름 속에서 각국의 반식민주의의 기운과 여성 운동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동아시아에만 한정되지 않는데, 200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Durban)에서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가 열리게 된다. 한국, 중국, 일본,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35개국과 150개 비정부기구는 더반 본회의 전에 아시아 지역회의를 테헤란에서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식민지배의 피해배상에 관한 선언문을 채택한다. 이 선언문에서는 식민, 또는 다른 형태의 외국지배와 점령, 노예제도, 노예무역, 인종청소 등 인종 차별적 행위 국가에 대한 책임 규명과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구체적인 배상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일본의 선언문 수용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국제적 흐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과를 모아 남아공에서 열린 더반 회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못지않게 서구 국가들의 아프리카 노예무역과 같은 식민지배정책에 대한 사과와 배상이 첨예한 쟁점이 되었다. 결국 배상에는 이르지 못하고 식민지배에 대한 유감과 사과표명에 머물렀지만 말이다.

2016년, 북한을 대하는 일본의 황당한 태도

‘2015 한일합의’ 이후 일본 언론들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한일이 북조선 도발에 맞선 협력관계 강화해야’(아사히),
‘위안부 문제 합의로 개선의 실마리, 3국 연계 재확인’(마이니치),
‘위안부 합의로 관계 개선할 것을 확인, 對 북조선 결속으로 그 성과를 확인해야’(산케이)


북한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위안부 문제 해결이 피해당사자들의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한 행동, 일본의 한반도(한국, 북한) 침략-식민지배를 반성하는 게 아니라 북한에 맞서 한국,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수단이라는 일본 언론의 인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 언론이라고 다를까? 한일합의 이후 대중의 분노를 돌리기 위함인지, KBS는 전체 뉴스의 25%를 북한 관련 뉴스에 할애하고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사상 최대규모로 진행되었고, 언론은 북한, 일본, 미국 등의 군사적 움직임을 생중계하기 바쁘다. 2월 7일 북한의 위성 발사 이후 한민구 국방장관은 이명박 정부 때 좌절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14년에 체결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을 통해 사실상 군사정보를 교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해방 이후 드높았던 반식민 민족해방운동의 기운이 한반도에서는 열전과 냉전을 거치며 사그라들었다. 피해사실을 드러내는 것조차 오랫동안 억압당해왔던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조선인 피폭의 문제가 탈냉전의 기운 속에서 식민지배 피해 당사자들의 활동으로 사회화되고 일본과 국제사회를 향한 운동으로 고양되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북미공동 코뮤니케, 북일교섭과 함께 뒤늦게 탈냉전의 흐름에 동참하는 듯 했던 동북아 정세가 다시금 요동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한국이 보조하는 대북 선제공격 계획에서, 북한의 폭정을 종식시키겠다는 박근혜의 서슬퍼런 언사에서, 과거 조선을 대하듯 북조선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에서 북한에 대한 식민지배의 야욕을 보는 건 과도한 것일까?

‘1965 한일협정’, ‘2015 한일합의’는 식민지배와 그에 따른 피해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책임을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이는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들도 다를 바 하나 없다. 피억압 민족의 민족해방운동, 독립전쟁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철저한 반성과 법적 책임을 끌어내지는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보편적 국제질서의 반영이며 反식민-민족해방이라는 기치의 현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두 합의는 북한에 맞서 일본과의 동맹을 공고히 해야 한다는 한국정부의 식민주의적 입장이 적극 호응한 결과다. 이는 냉전 질서가 여전히 공고한 한반도의 특수성이다. 동북아의 냉전적 대결구도는 일본에게 한일 위안부 합의가 대북 공세의 무기가 되는 황당무계한 일을 가능케 한다. 제국주의-식민주의 문제와 냉전 질서가 중첩된 한반도에서 반(反)식민의 과제는 결국 냉전 질서와 맞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79 호 [기사입력] 2016년 03월 31일 8: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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