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사회와 구조를 비껴가는 교과서

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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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에는 그 사회의 시대상이 녹아있다. 어떤 ○○이즘 같은 거창한 흐름도 있겠지만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 다양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의 풍경도 시대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응답하라’ 시리즈에 열광하며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그동안 공룡트림은 어린이, 청소년은 주요 독자층으로 하는 작품들을 살피면서 현재의 어린이, 청소년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을 짚어보고 이를 인권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보고자 했다. 어른들은 어린이, 청소년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할까. 어린이, 청소년의 삶을 어떻게 읽어내고 있으며 어떤 삶을 지향하기를 바라는 걸까 행간에 숨겨진 어른들의 은밀한 욕망을 낚는다고나 할까. 불행히도 공룡트림의 멤버들 모두 소위 ‘어른’인지라 때로는 또 다른 어른의 입장일 뿐일지라도 부단히 어린이, 청소년의 입장이 되어 해석해보는 것이다.

“어린이 추천도서”라는 타이틀을 두르면 이는 곧잘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아이들의 손에,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런데 ‘어린이 추천도서’의 선정 기준은 무엇이며 이를 선정하는 이는 누구일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 아이들이 보고 따랐으면 싶은 메시지를 담은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접하게 되는 교과서 속에 실리는 작품들은 누가, 어떻게 선정하는 것일까? 조금은 불순(?)한 호기심으로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 두 편을 살펴보았다. 공진하 님의 <가족사진>과 유순희 님의 <우주 호텔>에는 장애를 가진 재현이와 폐지를 주우며 홀로 살아가는 빈곤 노인의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 모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인권의 화두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장애인 가족, 장애인은 없다.


<가족사진>은 학교에서 가족신문을 만들기 위해 가족사진을 현상하러 사진관을 찾은 다현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현이 부모님은 결혼 후 매년 결혼기념일에 가족사진을 찍었다. 쌍둥이 재현이와 다현이가 태어나고도 연중행사처럼 진행되던 일은 두 아이가 다섯 살이 된 이후로 중단되었다. 그 해 두 아이가 아프더니 재현이가 장애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재현이가 다 나으면 찍자며 미뤄두었고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기 중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재현이는 ‘아픈 것’이라고 하며 빨리 ‘예전처럼 건강해져서 말도 잘 하고 두 발로 씩씩하게 걸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엄마는 오늘도 아프기 전 건강했던 모습이 담긴 사진 속 재현이를 어루만지며 사진이 훼손될까 조심 또 조심한다. 다현이는 그런 부모님이 답답하다.

“그 사진만 보고 있으면 오빠가 다시 예전처럼 된대? 엄마는 왜 항상 옛날 사진만 보고 있어? 이제 옛날 생각 그만 좀 해”
엄마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그럼 넌 오빠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았으면 좋겠니? 오빠도 전에는 너처럼…”

장애인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일까? 이런 이야기를 당사자가 듣는다면 그이는 어떤 마음일까? 엄마는 내가 ‘너희한테 얼마나 잘하려고 하’는지 항변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진으로도 기록되거나 남기고 싶지 않은 재현이를,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다. 장애는 ‘아픈 것’이고 어서 치료해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야 할 병이라는 인식.

가족의 이런 분위기는 다현이에게 “만약에 내가 계속 아팠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엄마나 아빠가 조금 덜 슬퍼했을까?”라는 죄책감을 심어주고, 어느새 가족 불화의 중심에 서 버린 재현이 또한 자책하게 만든다. 장애는 병이면서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만다.

물론 교과서 속 이야기는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에 의해 극적인 화해(?)에 도달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다) 엄마는 자꾸 옛날이야기만 해 온 것을 반성하며 ‘지금 여기 있는 재현이’를 인정한다. 사실 이야기 속에서 장애에 대한 엄마의 인식을 끊임없이 지적하는 것은 다현이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 오빠 아픈 데 하나도 없이 건강하기만 하네.”
“엄마는 오빠가 무슨 유리그릇이라도 되는 줄 알아? 항상 벌벌 떨게.”
“이게 뭐야? 사진 한 장 없이, 지금 이 집에 살고 있는 오빠하고 나는 뭐 귀신이야?”

장애를 병으로 보지 말라고, 장애인을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위험에 처하기만 하는 무능력하고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로 대하지 말라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하지 말고 지금의 우리를 보라는 다현이의 말에서는 좀처럼 아무 의미도 발견하지 못했던 엄마. 여전히 어른들은 아이들의 말에는 힘을 부여하지 않는다. 여전히 여성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남성을 통해서만 변화를 겪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여전히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로 머물기에 다현이는 이렇게 훌륭한 문제의식을 가지고도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남성 어른의 몫으로 양보해야 한다. 게다가 <가족사진>은 장애인이 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장애인인 재현이의 삶이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장애인 재현이로 인해 갈등하고 어려움을 겪는 비장애인 가족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장애인을 일상 속으로 초대하려는 좋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같이 살고 있는 혹은 곁에 있는 이들이 마음만 달리 먹으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재현이의 삶을 가족 안으로만 구획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마치 통합교육을 지향하면서 장애인을 학교로 초대해놓고 그이들을 고려한 학교구조나 교육과정은 전혀 정비하지 않는 교육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반 아이들이 장애학생에게 친절하게 대하거나 도움이 학생을 지정해 교실을 이동하거나 급식을 받을 때 도와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걸까? 이제 끊임없는 도움과 배려가 아니라 장애인이 스스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인식 변화와 함께 어떤 구조적인 변화가 동반되어야 하는지 나눠야 하지 않을까.

타자화 된 삶은 빈곤할지라도 낭만적이다?

한국의 노인빈곤률은 OECD국가 중 1위이다. 경제적 빈곤은 ‘돈이 없으면 사람도 못 만난다’는 말에서도 보이듯 관계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우주 호텔>은 그런 노인빈곤을 상징하는 폐지를 줍는 종이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종이할머니의 맞은 편 집에 이삿짐이 들어온 날 젊은 여자는 할머니에게 책을 한 아름 전한다. 딸 메이가 왜 할머니에게 책을 주는지 궁금해 하니 “할머니가 종이를 모으시거든. 너도 다 쓴 종이 있으면 할머니한테 갖다 드려”라고 답한다. 이후로 메이는 다 쓴 공책이나 스케치북을 하나씩 놓고 가고, 종이할머니는 스케치북 속에서 우주 그림을 만난다. 우주 그림을 통해 지금까지 ‘다 늙어서는 무슨…’싶던 체념을 뒤로 하고 우주 호텔로 비둘기처럼 날아가고픈 희망을 키운다. 그래서 종이를 찾으려 ‘점점 더 등을 납작하게 구부리고 땅을 뚫어져라 살피’느라 하늘을 보지 않던 종이할머니는 쉽게 허리를 구부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아마도 작가는 메이와의 관계나 우주라는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 혹은 잊었던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그저 근근이 별다른 의미 없이 살아가는 노인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급작스런 전개가 내내 불편하다. 나이듦은 왜 곧 체념으로 이어지는가. 좋은 이웃을 만나 도움을 얻는 것으로 종이할머니의 빈곤이,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 어쩜 이 글에서 종이할머니의 빈곤은 중요한 주제가 아닌가 싶을 만큼 그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의 힘’을 강조하며 교화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노숙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라고 개인 탓을 하며 열심히 살라는 훈계로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마음을 바꾼 종이할머니는 요전 날 자신이 상자를 수거하기로 정해진 채소가게에서 상자를 수거해가서 다투었던 할머니와도 친구가 되어 같이 밥도 먹고 생각차도 나누어 마신다. 이제 할머니는 혼자가 아니다. 이웃도 친구도 생겼다. 그래서 바로 누군가와 삶을 나누게 된 이곳이 할머니에게는 ‘우주호텔’이다.

<우주 호텔>은 가난해서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폐지라도 주울 수 있어서 다행이고, 좁고 어둑한 단칸방이라도 내 몸 하나 뉘일 곳이 있음에 감사하는 긍정적 마인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내 마음만 고쳐먹으면 되는 걸까? 그렇다한들 나의 빈곤은 해결되지 않을 테고 그래서 몸이 아파도 치료받기 힘들지도 모른다. 새로 온 이웃은 어쩜 그다지 친절하지 않아서 폐지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척하는 이 갈등해결 구도는 어린이‧청소년에게 아름다운 세상만을 보여주고 싶은 어른들의 마음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삶을 피상적으로 대하거나 혹은 잘 안다는 착각에서 오는 낭만화일까?

두 이야기 모두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개인화하는 우리사회를 그대로 옮겨놓고 아이들에게 그러니까 열심히 살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심어주고 있는 듯해 화가 치밀기도 했다. 원래 교과서라는 게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라고 양보해보려 해도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묘랑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82 호 [기사입력] 2016년 04월 27일 11: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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