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어장] 사회권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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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밥 먹었니?
B: 응. 대충
A: 왜 대충 먹어? 잘 먹어야지.
B: 요즘 세상에 잘 먹기가 쉽니? 사 먹어도 해 먹어도 잘 먹기가 얼마나 힘든데.
A: 하긴 숱한 끼니를 때우고 살지만, 시간‧돈‧같이 먹는 사람, 하나하나 따져보면 잘 먹었다고 할 때가 찾기 힘드네.
B: 허접하게 먹더라도 안전한 음식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불안 중에 식품에 대한 불안은 얼마나 큰데. ‘모르고 먹어야지, 알고선 못 먹는다’는 말 좀 그만 들었으면 좋겠어.

A: 밥 한 끼에 온갖 시름이 담겨있구나.
B: 내 밥만이 아니라 밥 때문에 기운 빠질 때가 많아. 먼지 풀풀 날리는 거리에서 급식 받는 노인들을 볼 때 울컥해. 보편적인 학교급식을 둘러싸고 야박한 소리 오갈 때, 계단참이나 심지어 화장실에서 끼니를 때워야 한다는 노동자 기사를 볼 때, 식사시간도 없이 일한다며 쫓기는 친구들을 볼 때…….

A: 밥보다 시름을 더 자주 먹는 것 같다. 이런 문제와 관련된 인권은 없는 거야?
B: 왜 없어? 사회권이란 버젓한 인권이 있지.
A: 사회권? 그거 마이크 잡은 사람이 자기한테 집중하라고 소리 지를 때 하는 소리 아냐? 사회자를 존중해서 주목해 달라고.

결연한 사람들의 권리

B: 후후. 그런 것 아냐. “모든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런 말은 들어봤지? 세계인권선언 제22조에 나오는 말이야.
A: 사회보장‧사회복지, 그거야 흔한 말이지. 근데 사회권은 뭐 별다른 거야?

B: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란 말에 주목해 봐. 사회권은 ‘사회적 권리’ 또는 ‘경제적‧사회적 권리’의 줄임말이야. 여기서 ‘사회적’이란 말의 어원을 따져보면 ‘결연했다’는 뜻이래.
A: 결연? 인연을 맺었다?

B: 그래. 사회권을 풀이하면, 사회 속에서 결연한 모든 사람은 그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뜻이야.
A: 그럼, 누구도 제외되거나 배제돼선 안 된다는 말이네.
B: 그렇지. ‘무엇’을 누리느냐의 문제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누리느냐가 중요해. 어떤 밥을 먹을 것이냐 만이 아니라 누구랑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말이야.

A: 무엇을 누구랑 어떻게? 이 셋을 다 고려하는 게 사회권이란 말이구나.
B: 이를테면, 콩 한쪽을 나눠먹어도 누구나 같이 밥상에 앉아 같이 먹을 자격이 있다는 것, 그건 시혜가 아니라 누구나의 권리라는 거야.
A: 그런 권리라면 그냥 앉아서 누가 떠먹여주는 것을 받아먹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밥상의 참여자가 되는 거잖아. 그럼 사회권은 밥에 대한 권리만이 아니라 밥상에서 목소리를 낼 권리라고도 할 수 있겠네.
B: 그렇지. 그러니까 사회권은 물질적 분배만이 아니라 누구를 구성원으로 대접하고 어떻게 밥을 지을 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권리와 떼놓을 수 없어.

제공한다고 사회권인 건 아니다

A: 권리라면 당당하고 떳떳해야 하는 거 아냐?
B: 맞아. 권리란 그 상대방에게 존중할 의무가 발생하는 정당한 요구야. 우리에게 사회권이 있다는 건 국가가 그 권리를 존중하려는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는 거야.

A: 하지만 번듯한 사회보장제도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나 누리는 거지. 실직자나 가난한 사람들은 별도의 프로그램으로 다루잖아. 난, 솔직히 복지라는 이름 붙은 게 권리로 안 다가올 때가 더 많던데.
B: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해준다고 해서 모두 사회권인 건 아니지.

A: 나, 어렸을 때 생활보호대상자였는데. 매달 동사무소에서 밀가루 한 포대를 받았어. 매일 수제비만 끓여먹었지. 수제비에도 질렸지만, 그걸 받을 때마다 창피했어. 그래도 받아야만 했으니까. 뭔가 눈총 받는 느낌이었는데 그렇게 받는 게 권리일 수 있을까?
B: 우리 사회의 복지도 많이 달라지고 좋아졌다는 데 네가 말한 눈총 받는 느낌은 여전한 것 같아. 며칠 전 슈퍼에 갔더니 아저씨들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더라. 장애인 차량 혜택이 문제라고 말이야. 장애인들이 어려우니 도와주기는 해야 하지만 자기들 같은 영세자영업자한테도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자기들은 세금만 내고 억울하다고 하더라.

A: 나도 비슷한 말 들었어. 의료보호제도 이용하는 사람 중에 가난한 환자가 아니라 꾀병이 많다고, 거의 공짜라고 뻔질나게 병원을 드나들어서 문제라는 얘기도 하던데. 자기들처럼 꼬박꼬박 건강보험료 내는 사람들만 손해라고.
B: 다들 살기 어려운데 누구만 특별대우 받는다는 눈총, 경제도 어려운데 저 사람들은 과분한 혜택을 받고 있다는 비난 같은 거 진짜 많아.
A: 무시하고 낙인찍는 거 그런 것 없이 나누면 안 되는 걸까? 네 말대로 재화나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해서 다는 아닌 것 같아.

B: 사회권의 짝퉁은 많아. 가난한 사람들을 방치하면 사회불안 요소가 된다고 최소의 복지를 관리와 감시통제의 수단으로 삼는 것, 또는 경제발전을 위한 투자라는 식으로 수단시하는 것 등 말야. 사람의 삶이 목적이어야 하는데 말이야.
A: 기브앤드테이크(give and take)라고 기여한 만큼, 노력한 만큼, 낸 만큼 가져가라는 것도 그렇지 않나? 일을 가질 수 없어서 힘들고 그래서 소위 기여를 할 수 없는 건데, 기여 안했으니 자격 없다는 말은 들을 때마다 억울해.
B: 흔히 각 사람이 기여한대로 배분하고 나서 부족하거나 배제된 사람에게 재분배해준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사회권은 그런 대가와 보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존재 그 자체를 존중하는 거야. 인간의 동등한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걸 경제사회적 분배와 재분배로 표현하는 거야.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기에, 사람이란 존재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게 사회권이야.

A: 내가 찜찜해하던 성격의 시혜나 혜택과는 구분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이 사회의 일원이란 이유만으로 자격이 있다는 거잖아.
B: 그래. 사회권은 모든 사람이 동료로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배치를 바꾸는 거야. 분배 구조를 바로잡고 무시나 경멸 같은 몰인정을 존중으로 바꾸는 것, 둘 다를 말하는 거야.
A: 어디선가 ‘사회적 시민권’이란 말을 들어본 것 같아. 네 말대로 하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갖는 공통된 지위란 뜻이구나.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

A: 근데, 아무리 공통된 지위에서 권리로 보장받는 것이라 하더라도, 내가 받았던 밀가루 한 포대처럼 수준이 형편없으면 좀 그렇지 않나? 나, 그때 학교에 도시락을 싸갈 수 없었거든. 집에서 수제비를 끓여먹을 순 있지만, 그걸 도시락으로 싸갈 수는 없었으니까.
B: 사회권에는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이란 게 있어.
A: 최저선? 그거 인터넷에서 본 씁쓸한 농담 같은 데. 임금 중에 젤 초라한 임금은 최저임금이란 말처럼.
B: ‘최저’를 고만큼만 줘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최소한 이것만은 마지노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달라. 당장의 긴급한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장과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를 합한 게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의 개념이야. 우린 단지 목숨을 연명하는 게 아니라 존엄성을 갖춘 생존을 추구하는 거잖아.

A: 하지만 ‘적절한 생활수준’을 무슨 무슨 선진국 수준으로 소비를 끌어올리는 그런 거로 생각하면 답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려면 지구가 수십 개라도 모자랄 거야.
B: 맞아. ‘적절한’을 양의 문제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 무엇보다도 모든 구성원을 우리 사회 안에 자리를 가진 존재로 대접하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A: 예를 들자면?
B: 가령 사회권 중에서 노동권을 생각해보자구.
A: 노동권이면 일단 수입을 가질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는 거 아냐?
B: 그렇지. 근데 너부터 임금노동만 일로 생각하고 있잖아. 가사 노동이나 돌봄 노동 같은 노동을 돈을 받는 소위 ‘생산적’ 노동과 구분하는 원리부터 문제 삼을 수 있어.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는 임금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것이 일차적이고 그 나머지에 대해선 별도의 혜택의 문제가 돼버리잖아. 이런 것부터 다시 생각하는 게 사회권에서 말하는 ‘적절한’이 아닐까?

A: 맞아. 그러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를 인력이 아니라 인간으로, 노동관계를 다른 물건처럼 사고파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B: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뿌리는 그대로 놔둔 채, 표면적으로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만 늘린다고 ‘적절’한 사회권 보장이 되는 건 아니야. ‘최저선’을 양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근본 틀의 문제로도 봐야할 것 같아.

사회권 침해를 인권 문제로

A: 근데 내 주변에 보면, 나처럼 사회권이란 말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야. 이런 상황에서 사회권의 침해를 인권침해 혹은 인권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B: 사회권이 억울한 것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인권문제로 잘 여기지 않는다는 거지.
A: 그저 경제 사정이 나빠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난은 사회현상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자연현상 같은 거다, 뭐 이런 체념과 수용, 묵인이 많은 것 같아.

B: 그보다 더 나쁜 건, 개인적 결함과 무능력으로 몰아 비난하는 거야. ‘그러게, 좀 더 노력하지 그랬어’란 말이 그렇지.
A: 나도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그랬다고, 좀 더 열심히 살지 못해서 그렇다고 나를 늘 채근하는데.
B: 자기 성찰과 자기 학대는 다른 것 같아. 그런데 생활이 어려울수록 우린 비난의 화살을 자기에게 쏘거나 나보다 불우한 사람들에게 쏘는 것 같아.

A: 나는 사회권이란 말을 듣기 전에는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가해만 인권침해로 생각했어. 또 국가권력이 폭력적으로 행하는 일만 인권침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가만 보니 손 놓고 방임하는 것, 경제사회적 강자에게 유리하게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게 근본적 인권침해 같아.
B: 사회권의 침해는 문제를 회피하고 부인하고 방임하는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게 맞아. 우린 그 시스템 속에서 시스템의 작동을 돕고 있다고도 할 수 있어.

A: 사회권을 침해받으면서 내가 그 작동을 돕는다? 참 무섭다.
B: 나도 그래. 내가 누리는 소비의 몫을 늘리려는 데만 몰두하며 사는 게 싫으면서도 무력하고. 삶의 조건을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까?
A: 네가 나에게 사회권이란 말을 알려줬잖아. 우린 당장 유토피아를 열려는 게 아니라 새로운 말을 하고 새로운 말에 맞춰 생각을 바꾸면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야. 그게 모든 인권이 걸어온 길이잖아. 노동, 교육, 건강, 주거 등을 다 내 돈 주고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같이 차리고 같이 먹는 밥상처럼 생각해야겠어.
B: 사회권을 권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사회권 침해를 인권에 대한 구조적 침해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말이구나. 문제를 받아들였으니 풀려고 애써야겠네.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83 호 [기사입력] 2016년 05월 04일 14: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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