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의 인권이야기] 우리 살아있다면

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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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느리게 흐르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볕 아래 1인 시위를 하고 서있을 때는 1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5월도 보름이 훌쩍 지나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벌써 한 달 전이다. 하루 전날인 4월 15일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시청 한광호 열사 분향소 앞에서 전장연과 유성범대위가 공동주최한 추모제가 열렸다. ‘송국현, 한광호 우리 살아있다면!’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쭈그리고 앉아 중간 중간 메모를 끄적였다. 왠지 이 순간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이 글을 쓰려다 그 때 메모가 문득 생각났다. 한 켠에 ‘오자마자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왜였을까?’라고 써있었다.

비슷한 느낌은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도 경험했다. 4월 14일, 팽목항 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미수습자 수습을 위한 법회를 하던 중이었다. 우린 미리 약속한 것처럼 깍지 낀 손을 모아 무릎 위에 올려두고 눈을 감았다. 법문을 외는 스님들의 목소리가 떨렸고, 관세음보살 뒤에 눈물이 흘렀다. 분향소와 죽음, 결코 따뜻할 수 없는 곳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왜였을까?

시청 앞에 모인 사람들은 다양했다. 송국현과 한광호, 연결고리가 전혀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졌다. 내가 느낀 따뜻함의 이유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송국현은 집에 불이 났지만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할 수 없었다. 장애등급제라는 잘못된 제도는 이렇게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것이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4년 동안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고 외치는 이유다. 송국현의 죽음은 세월호와도 이어진다. 그의 집에 화재가 났던 4월 13일, 3일 뒤 침몰한 세월호에 있던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구했다. 살아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구조된 게 아니라 탈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라던 선실 안내방송은 단편적인 잣대로 장애의 등급을 판정하고 송국현을 죽음으로 내몬 잔인한 국가와 닮았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야간 2교대 근무를 3교대로 바꿔 달라 외쳤던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회사 측의 지독한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회사와 노동자, 그 사이에 국가는 없었다.

빈 곳을 채우는 것은 본능적으로 이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린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세월호와 송국현, 송국현과 한광호. 이런 만남을 통해 서로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인의 과정은 존엄을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잊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가 때로는 ‘부재’를 딛고 선 것임을. 이것이 내가 온기를 느꼈던 이유였던 것일까?

위 사진:필자는 재충전을 위해 잠시 머물고 있는 제주에서 완성했다. 끄적인 메모를 제주 특유의 돌담 사이에 두고 찍은 사진

인권활동가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또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늘 머릿속에 맴돈다. 지난 번 팽목항에 다녀오면서는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에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닐 때 생겨나는 ‘나의’ 이야기는 이들에게 기대어 자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또 한편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야만 생겨날 수 있는 이야기들은 힘이 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장면을 곳곳에서 목격할 때마다 내가 이곳에서 활동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생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최대 23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또, 1528명이 심각한 폐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나무위키, <가습기 살균제> 검색) 최대 피해자를 낸 옥시제품 불매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대표 분은 이런 말을 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한 기업을 처벌하고, 정부가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마련했다면, 세월호 침몰과 같은 사고는 있을 수 없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싸울 것이다.”

인권오름에 인권이야기 필진이 되면서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표정, 숨소리, 어떨 때 웃고 또 우는지.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하는지. 이렇게 눈 여겨 보고 적은 메모들을 앞으로 남은 세 번의 글에 담아보려고 한다. 아마도 많이 걱정되고,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첫 번째 인권이야기를 마친다.
덧붙이는 글
이은정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85 호 [기사입력] 2016년 05월 18일 20: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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