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여덟 살 구역] 서로가 자랐고, 관계가 변했다

마음 읽어주는 언니의 비밀찻집 영업 중간 후기

쩡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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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떠는 재미를 나눠보자!

어렸을 적 물건들을 모아놓은 상자를 열어보면 초등학교 때 주고받았던 편지 같은 것들이 모여 있다. 대체로 학교에서 즐거운 생활 시간에 만들었던 것들이다. 색지를 오려 반을 접은 다음, 또박또박 큰 글씨로 “니가 좋아.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같은 게 서너 줄 쯤 적혀있는 그런 편지들. 그 와중에 편지라고 하긴 애매한 것들이 몇 개 껴 있었다. 바로 다과회 초대장! (학교에서 왜 저걸 굳이 가르쳤는지 이해는 잘 안가지만) 수업도 기억이 난다. 언제, 어디서, 몇 시에 하는지를 적어야 했고, 난 그 때 다과회라는 말을 난생 처음 들어봤을 거다. 그럼에도 다과회는 나의 로망이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들떴는지 모른다. 예쁜 테이블에 마실 거랑 먹을 걸 두고 소꿉놀이처럼 차를 따라 마시며 어른처럼 입을 가리고 호호 웃는 그런 이미지를 상상했다. 그래서 열심히 만들긴 했는데, 언제 어디서를 적을 수가 없었다. 초대장을 만들기 전까지 다과회를 할 예정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하고 싶으니 대충 적어서 친한 친구에게 선물했다. 결국 다과회는 하지 못 했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저 이름에 무언가는 안 해본 것 같다.

그래서 4학년의 책언니를 준비하면서는 다 같이 다과회를 해보고 싶었다. 뭘 할진 모르겠지만, 그냥 같이 모여 앉아 저렇게 ‘다과회’ 같은 걸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신나겠어! 마냥 놀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맘 편히 니 얘기 내 얘기 넘나드는 그런 수다 판을 깔아보고 싶었다. 나야 워낙 앉아서 조잘거리는 걸 재밌어하지만, 분명 11살도 그 재미를 모를 리가 없다. 몸이 튀어나가는 에너지가 많을 뿐이지 조잘거리는 재미도 분명 알고 있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면 알려주고 싶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꽤나 중요하니까. 내가 원했던 그림은 수다회였다. 진짜 친구들이랑 하는 티타임처럼 잠깐 와서 편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그런 수다회.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 주제

우리가 다른 청소년 강좌를 준비할 때도 가장 중요하게 얘기하는 건, 대답할 말이 있는 질문을 하는 것. 그리고 할 이야기가 있는 주제를 잡는 것이었다. 같이 이야기하자고 만나는 건데 나 혼자 떠들고 오지 않으려면 당연히 중요한 지점이다. 그래서 수다회를 하되 같이 떠들기 좋은 간단한 주제쯤은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책언니를 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아무거나 하게 되더라도 먼저 제안할 거리는 하나 가져가는 게 좋다는 거였으니까(안 그러면 심심하다며 우리에게 재미없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정해진 게 ‘감정’이었다. 그 전에도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해 왔지만, 이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적혀있는 ‘감정카드’를 가지고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그런 컨셉이었다. 여러 번 글에도 적었지만, 나는 이 사람들이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사랑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예쁜 구석을 키워가는 게 아니라, 따뜻한 태도를 가지고 사람을 만나가는 그런 사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잘 읽을 필요가 있다. 저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뭘 싫어할까, 어떤 기분일까 하는 그런 것들을. 그러려면 자기감정을 설명하고 잘 파악할 수 있는 게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게 결국 감정의 이해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기도 하고, 자기를 살펴보기도 하며 감정에 대한 이해의 폭을 같이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준비를 하다가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뒤늦게 찾아봤다. 꽤나 어른들도 좋아했던 영화로 기억하지만 나는 엄청 좋은지는 모르겠더라. 그치만 수업에 써먹기는 딱 좋은 꺼리였다. 우선 ‘애니메이션’이고, 그 나이 또래 여자아이의 감정을 다루는 내용인데 그 맘속의 화학작용을 꽤나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게다가 눈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굳이 내가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각자 자기감정을 스스로의 말로 설명하기 힘들 수도 있다 싶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감정카드를 다운받았다. 생각보다 말이 어렵기도 하고, 꽤 복잡한 감정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이걸 해야겠다 싶었다. 영화와 연결지어보면, 사람의 감정은 경험이 쌓이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점점 복잡해진다. 어렸을 때는, 슬퍼! 좋아! 정도의 마음이 어느 순간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그런 복잡한 감정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다들 지금쯤이면 머릿속도 마음도 슬슬 복잡해지고 있을 시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같이 이야기 하면서 새로운 감정의 명명들을 알게 되는 것도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르니까.

위 사진:초현실주의적 예술혼을 불태운 ㄷ의 중앙장치의 역사. 저래보여도 인사이드 아웃의 캐릭터들이 왼쪽에 다 들어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첫날, 함께 영화를 보고 집에 가기 전에 종이를 하나씩 나눠줬다. 앞장에는 라고 적어두고, 뒷장에는 미션을 적어놓은 종이였다. “당신을 이루고 있는 핵심기억은 무엇인가요?” 다음 주에 꼭 입장료를 준비해오겠다는 다짐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주 목요일. 시작 전에 잡다한 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쭈뼛쭈뼛 다가온 ㅇ은 “야! 나, 근데…. 종이를 안가지고 온 것 같아. 어떡하지?” 못 들어올까 걱정하며 묻기에 괜찮다고 말하고, 그 이야기가 입장료니까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말해줬다. 그러자 혼자 가만히 있다가 나에게 뜬금없이 이야기를 한다. 자기의 핵심 기억은 이건 것 같다며, 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들 일주일 동안 준비해온 사람은 없지만, 내 옆에서 꽤나 열심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핵심기억도 잔뜩 나누고, 나를 구성하고 있는 성격섬 만들기를 꺼냈다(핵심기억, 성격섬, 중앙장치 등 영화에 나온 것들로 4차례 정도의 수업을 진행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다들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 역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걸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 같이 모여 각자가 그린 그림들을 보며 어떤 섬인지 맞추다보니 저절로 남의 이야기도 같이 나눌 수 있게 됐다. 자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성격으로 네모난 입체 사각형을 그린 사람이 있었다. 무슨 뜻인지는 나에게만 몰래 말해준 ㅅ은 또래에 비해 몸집도 커서 남자들 사이에서도 힘으로 밀리지 않지만, 의외로 감정적인 세심함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다 같이 맞추며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는 혼자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난 더 놀랐던 것 같다. 아, 내가 이제 조금 서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짐작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저렇게 불쑥 꺼낼 줄도 몰랐다. 그 다음 주 나이대별로 자기를 지배했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또 새로웠다. 예전에는 자기의 소심, 슬픈 등 부정적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잘 꺼내려 하지 않았다. 화났다는 쎄 보이기라도 하지만 나머지는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들 너무 선뜻 자기가 약했던 이야기를 잘 꺼내 논다.

위 사진:다같이 열심히 참여 하는 놀라운 모습!

사람은 자라고, 관계는 변한다

왜 다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주는 걸까? 우리랑 신뢰가 쌓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조금 자랐기 때문에 더 이야기를 잘 해 낼 수 있게 된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섞여 있겠지만, 뭐 덕분에 순조롭게 정말 많은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최근 비밀찻집을 영업하며 생긴 이런 수많은 변화와 재미들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신기한 건 요즘 그렇게 어리광들을 부린다. 하나같이 “내가 그랬는데, 그래쪄. 그래서 속상해쪄.” 쪄쪄투를 사용하고, 내 옆에 앉으려고 싸우는 것도 봤다(!). 아니 안아들 수도 없이 커져서 안하던 짓을 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물론 기분은 꽤 좋다 호호).

꽤 오랫동안 이들이 날이 서있기도 했고, 만만한 어른인 우리에게 힘 싸움을 했다. 들어가자마자 때리고 쫓아내고 욕하고, 역시 서툴었던 책언니들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좍좍 긁어줬던 시절이었다. 동시에 아직 몸집도 작았으니 안아 달라 안기고, 글씨를 빨리 못 읽으니 책 읽어달라고 책을 뽑아오는 등 우리를 가지고 놀았다(하하). 뭐 핸드폰 쟁탈전도 꽤나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내 우리와 힘 싸움을 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어리광을 부린다. 이제 우릴 싸움대상이 아닌 사람들로 파악하고, 우리를 예뻐해 주고 있다. 우리도 자랐고, 너희도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자라서 처음보단 조금 더 너희랑 잘 지내는 법을 익혔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재밌을 지도 조금 더 알게 됐다. 그리고 너희가 자라서 우리도 가끔 신경 써 주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조금 더 하고 싶어해준다. 그래서 우리 관계가 많이 변했다. 이렇게 사람은 자라고, 관계는 변한다. 그저 고맙고, 좋다.

가끔은 꽤나 어리광의 수위가 높아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그랬냐, 오구오구”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들끼리 싸운다. “아! 토할 거 같아!” 문제는 그렇게 말한 사람도 결국 내 옆에 딱 붙어서 기대앉더라는 거. 거 참, 사랑이 넘치는 책언니다.

덧붙이는 글
쩡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86 호 [기사입력] 2016년 05월 25일 21: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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