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파장? 파장!] 기업과 인권을 하고 있다는 홍보만

인권침해 예방이나 피해자 구제를 위한 노력은 소극적

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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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전 세계적으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유엔에서도 2008년 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한 효과적 구제라는 ‘보호, 존중, 구제’ 프레임워크를 발표한 데 이어 2011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원칙(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이 채택되었다. 이와 함께 유엔 이행원칙의 실행과 확산을 위해 보편적인 국가의 인권 보호 및 증진 계획을 담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이하 NAP)에 덧붙여 기업과 인권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개발하여 실행하는 국가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미 유럽 국가들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이 기업과 인권 NAP를 수립하여 이행 중이거나 수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도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업과 인권 NAP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기업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 구작업과 각종 행사를 개최해왔다. 최근 몇 년의 사례만 보더라도 2013년부터 매년 인권경영 포럼을 개최해왔고, 지난해부터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을 조직해 모임을 가져왔으며, 공공기관 인권경영 실천 확산을 위한 인권경영 가이드라인 및 체크리스트를 개발, 배포했다. 또한 지난해부터는 기업과 인권 NAP 권고안 마련을 위한 연구 작업의 일환으로 유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원칙과 기업과 인권 NAP 안내서 등을 한글로 번역해 소개했으며 현재 기업과 인권 NAP 권고안 수립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여주기식 기업과 인권

물론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기관, 공공기관 등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뿐만 아니라 사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인권 옹호에 나서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인권기구들이 기업과 인권에 대한 정부, 기업, 국민의 인식 제고를 위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기업의 인권 존중 촉구를 통해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 증진한다는 기본 취지가 아니라 ‘보여주기 식의 활동’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인권위원 선출 과정에서의 독립성, 투명성, 참여성 결여 등을 이유로 국가인권기구 간 국제조정위원회(ICC, 현재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으로 명칭 변경) 등급심사소위원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2년 이상 등급보류가 되고 있는 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최소한 아시아에서(이미 유럽에서는 기업과 인권 NAP가 수립되어 이행되는 등 한 발 앞서가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과 인권 문제 관련, 국가인권위원회가 얼마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홍보하는 데에 열을 쏟았다. 몇 년 전부터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서 개최하는 기업과 인권 포럼에 참가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의장 방한 시에도 기업과 인권에 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리려고 따로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 정부에서 비정규직 확대를 포함한 노동권 후퇴 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음에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어떠한 의견표명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5년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한 인권위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확대 대책이 안건으로 올라오자 “왜 인권위가 노동 이슈를 다루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위 사진:유엔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시민사회가 한국 상황에 대한 보고대회를 5월 10일 열었다.

해외한국기업의 인권문제에 대한 정책 권고도 하지 않아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업과 인권 관련, 정부에 한 의미 있는 정책 권고는 2011년 10월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이행을 위해 설치된 한국 국내연락사무소(NCP)의 운용을 개선하라는 권고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2013년 해외진출 한국기업의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연구조사를 실시하고도 해외한국기업의 인권문제에 대한 정책 권고를 포함한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공기업의 인권경영을 촉진하기 위해 인권경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자발적 준수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것이 국가인권위원회가 국제사회에 홍보하는 최대 성과 중 하나이지만, 정작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인권경영에 동참하고 있는 한국 공기업들 중에는 심각한 인권침해에 연루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전력이다. 밀양송전탑 공사 과정에서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공사를 밀어붙이고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탄압한 한국전력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침묵을 지켰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조사대상에 대한 규정의 한계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과 성희롱 문제를 제외한 다른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서는 기업의 인권문제를 조사할 권한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11년 한국 원양어선에서 발생한 인도네시아 선원들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포함되는 성폭력과 차별 건에 대한 진정이 제기되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충분한 조사 없이 진정을 기각했다. 또한 기업의 인권문제 자체에 대한 진정을 접수받거나 조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긴급구제를 제공할 수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기업 활동으로 발생한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긴급구제 요청에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인권위원회가 기업과 인권이라는 현재 국제적으로 ‘뜨고’ 있는 주제에 대해 말로만 홍보할 뿐, 실제로 인권침해 예방이나 피해자 구제를 위한 노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사안에 대해 긍정적 권고나 의견을 표명하더라도 이것이 실제로 정부와 기업에 수용, 반영될지는 미지수이다.

국가의 이미지 및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맞춰지면 안 돼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최종안을 마련 중인 기업과 인권 NAP 권고안 역시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칙과 모범사례 소개, 큰 틀에서의 정책은 담고 있지만 구체적인 이행정책이나 미준수시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효과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국내외적으로 권위가 많이 손상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감안할 때, 정부에서 얼마나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을 수용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기업과 인권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국가의 이미지 및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맞춰져서는 안 될 것이다.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가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에 주목하게 된 것은 결코 이 때문에 기업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결과적으로 국가의 이미지에 손상을 주기 때문이 아니다. 기업의 활동으로 인해 노동자, 지역주민, 모든 사람의 인권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일을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효과적인 구제를 제공하는 것이 유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원칙의 기본이다. 한 국가의 ‘인권 보호와 증진’ 전반을 책임지는 독립기구로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기본 방향 역시 허울 좋은 포장을 통한 국가와 기업 이미지 제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강은지 님은 국제민주연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91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29일 13: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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