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어장] 국가폭력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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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 내리고 벌써 춥다. 그 날도 비가 왔는데.
B: 그 날? 무슨 날?
A: 작년 11월, 농민 백남기 씨가 물대포에 쓰러지시던 날, 그 날도 비가 왔어.
B: 그랬나? 그나저나 의식불명으로 누워 계신지 벌써 9개월이 넘어가네.
A: 의학적으론 더 이상 해볼 게 없다는데……. 정치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손을 놓고 있으니…….
B: 이제서야 겨우 ‘백남기 국가폭력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열기로 여야 합의했잖아. 한참 늦었지만, 청문회라도 제대로 돼야 할 텐데.
A: 비 내리고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권력도 속 시원하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B: 누구에겐 굼벵이고 누구에겐 속사포 같은 그 속성이 쉽게 바뀌겠어?

시민을 표적 삼는 국가폭력

A: 공권력을 일컬어 야누스의 얼굴이라 하더라.
B: 야누스? 앞뒤로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성이나 집의 문을 지킨다는 신? 근데 국가폭력이 왜 두 얼굴이야?
A: 국가가 가진 권력 자체가 엄청난 거잖아. 멋대로 날뛰는 폭력을 지배하고 통제하라고 ‘공적’으로 모아준 폭력이 공권력이니까.
B: 법의 얼굴을 한 폭력이 공권력이란 말도 있지.
A: 내가 아는 인권에 따르면, 국가는 개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수단일 뿐이야. 그러니까 우리의 인권이 ‘목적’이고 국가권력은 그 이행을 위한 ‘수단’일 뿐이야. 근데, 그 힘을 정권 또는 기득권 세력을 위해서만 쓰려할 때 권력의 오남용이 발생하는 거고, 그게 국가 폭력이지.
B: 그러니까,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국가가 만인의 인권을 평등하게 보호하는 장치라고 미화하지만, 현실적으론 차별하고 현실 정권이 맘에 들지 않은 시민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제압하려 드는 거, 그게 공권력의 ‘두 얼굴’이란 거네.
A: 그래. 국가권력이 시민 쪽으로 방향을 바꿔 달려드는 거, 시민을 표적삼고 고의적으로 공격하는 것, 그게 국가폭력이지.

B: 누가 그러더라. 정치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고, 권력은 그 무언가를 ‘이행할 힘’이라고.
A: 국가폭력은 바로 그 정치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게 문제야. 정치의 진짜 목적은 시민의 인권보장이란 걸 왜곡해서 ‘통치자에 대한 보호’로 목적을 변질시켜.
B: 강자가 약자를 해치는 폭력을 국가권력이 방관하고 엄호하겠다는 신호를 노골적으로 보내는 것이기도 하지.
A: 국가폭력은 시민을 고의적으로 공격하는 거잖아. 백남기 씨가 쓰러졌던 그 집회의 요구안이 뭐였는지 알아?
B: 알지. 우리가 당면한 삶의 과제들인데. 쉬운 해고를 비롯한 노동개악 중단, 재벌 책임 강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 폐기, 차별금지법 제정, 대북적대정책폐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같은 거였지.
A: 농민으로서 백남기 씨가 요구한 내용은 밥쌀 수입 저지, 쌀 및 농산물 적정 가격 보장이었어.
B: 그런 걸 요구하는 시민은 공권력이 겨냥하는 ‘폭도’가 되는 거야?
A: 본래 정치의 의미를 저버리고 정권안보라는 정치적 의도 하에 공권력을 동원하고 조직적으로 불법적이고 위압적인 행위를 하는 국가권력은 그런 요구엔 관심조차 없어.
B: 평화적으로 저항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는 거, 그거야 말로 최악의 폭력 아닐까?

A: 국가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를 보면 더 기가 막히지. 경찰처럼 공식적인 국가기구나 국가소속 공무원들이 자행하잖아.
B: 또는 국가의 후원을 받는 집단도 있지. 정부의 지시아래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 끈끈한 관계이지만 언제라도 관계를 부인할 수 있는 그런 세력을 통해 폭력을 저지르잖아.
A: 맞아. 백남기 씨의 경우나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처럼 경찰이 직접 사람이나 재산을 공격해서 시민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있고, 사기업이나 민간용역업체, 관변단체 등도 국가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어.
B: 노동자 블랙리스트의 이용, 폭력적인 노점단속, 관제데모 같은데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말이지.
A: 국가폭력이 표적 삼은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공권력이 내세운 명분인 국가안보, 범죄와의 전쟁, 공공의 안녕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멀어. 현실 정권의 권력 유지를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 행동 원리나 사고방식을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잖아.

단순하고 명백한 폭력

A: 국가폭력은 국가권력이 중대한 인권유린 행위를 하는 걸 설명하는 용어이기도 해.
B: 인권침해 중에서도 너무 단순하고 분명해서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게 국가폭력 아닌가?
A: 맞아. 인권에는 구조적인 맥락과 조건을 성찰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이 많아. 하지만 국가폭력 같은, 특히 백남기 씨 같은 사건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백한 폭력이야. 고차방정식이 아니라 그냥 단답형 문제라고. 신체적 안전 보장을 유린한 부당한 폭력이고 법을 무시한 공권력의 횡포잖아.
B: 생명‧자유‧안전의 보장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침해이지.
A: 범죄가 발생했으면 범인을 쫓고, 어긴 법에 따라 수사하고 재판하고 처벌하는 건 당연하잖아.
B: 그러게. 단순하고 명백한 폭력인 만큼 단답형 문제지.
A: 이런 단답형 문제에도 답하지 않는 권력이 복잡하고 난해한 구조적 인권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손댈 수 있을까?
B: 악법이나 부족한 법을 바로잡진 못할 지라도 적어도 확실한 법은 지켜야 할 것 아냐?
A: 범법자, 그것도 법을 어긴 경찰이 버젓이 돌아다니는데 시민들이 어떻게 법을 존중할 수 있지?
B: 폭력에 대한 면책을 권력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걸 뻔히 보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모욕 받는다고 느끼는데, 어떻게 법을 존중할 수 있고, 법 집행자들을 신뢰할 수 있겠어?
A: 부패와 폭력 혐의가 있는 고위층 범죄자는 예외 없이 처벌을 면하고, 승진 등 승승장구하고, 살인용의자가 활보하고 다니면서 고위직을 노리고 다닌다면?

B: 갑자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착각했다는 생각이 든다.
A: 왜?
B: 킹 목사가 이런 말을 남겼거든. “법이 마음을 바꿀 수는 없어도 악당을 저지할 수는 있습니다. 법은 상대방이 나를 억지로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그가 나를 죽이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A: 시민을 중태에 빠뜨린 경찰의 살인적인 과잉진압이란 단순하고 명백한 폭력에 대해서조차 법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킹 목사의 어록을 수정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위 사진:청문회를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사에서 농성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백남기 대책위 활동가 모습(사진 출처- 백남기대책위 페이스북)

갈라치기의 폭력

A: 국가폭력은 물대포처럼 가시적이고 확실한 폭력에만 있는 게 아냐. 더 깊이 뿌리박힌 근원적 폭력의 문제도 있어.
B: 근원적 폭력? 예를 들면?
A: 시민을 갈라치기 하는 것이야말로 본질적인 국가폭력, 국가폭력의 핵심이야.
B: 갈라치기라, 누구를 어떻게 가른다는 거야?
A: 아까, 세월호 진상규명 등을 요구한 집회 참가자를 공권력이 ‘폭도’로 대했다고 했잖아. 그럼, 그 집회에 안 나오거나 그런 요구안에 찬성 안하는 이들은 ‘선민’인가? 어떤 경계선을 그어놓고 그 안으로 특정한 사람들을 몰아넣고 그 이외의 사람을 외부로 배제하는 일, 권력이 이분법적으로 만든 틀에 따라 경계선을 긋고 사람들을 가두는 것 자체가 중대한 폭력이야.
B: 정권에 저항하는 목소리만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니지. 평소에도 젠더, 민족, 인종 등등의 축에 따라 경계선을 긋고 사람들을 달리 대하잖아. 똑같이 범죄를 저질러도 누가 하면 ‘앞길이 창창한 사람의 실수’ 정도로 넘어가려 하고, 누가 하면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식으로 난리가 나지. 또 같은 범죄피해자라도 그게 누구냐에 따라 ‘의심’하거나 ‘공감’하고. 가령 여성이 피해자인 범죄에 대해서는 미적거리거나 되려 피해자를 모욕하는 일이 많잖아.

A: 시민들의 집회시위를 과잉 통제하는 것 자체가 이미 폭력이야. 어떤 시위는 권력이 직접 부추기고 심지어 돈으로까지 지원하면서, 어떤 시위는 위험시하고 참가자를 ‘적’으로 대하는 것은 시민을 철저히 갈라치기 하는 거지.
B: 누구에 대한 기소는 신속하고 가혹하게 처리하고 누구에 대한 고발은 수사조차 안하거나 기소할 생각 없이 굼뜬 것, 선택적 수사와 기소, 이런 게 시민을 갈라치기 하는 거야.
A: 이 나라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하면, 복수의 가치와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살아가는 서로의 존재를 관용으로 대하면서 ‘적’이 아니라 서로 논쟁하고 경합하는 상대로 대해야 하는 거잖아.
B: 그치. 그런데 국가권력이 정권의 권위와 이해관계에 도전하는 시민을 ‘적’ 또는 ‘비인간’으로 갈라서 분류하고 처우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폭력이야.
A: 평화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하고 집권세력에 대한 저항을 일단 제압하고 본다는 데 골몰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야. 비판적 세력 또는 이질적 집단을 적으로 상정한 공권력은 언제든지 인권침해를 일삼을 수 있어.

식민주의의 유산

B: 우리 어렸을 때, 떼쓰고 우는 아이에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하던 얘기 기억나?
A: 기억나. “계속 울면, 순사더러 잡아가라고 한다”던 말?
B: 그래, 정작 우리는 ‘순사’라는 말조차 모르는데 말이야.
A: 그러게. 순사라니?
B: 일제시대 경찰을 말하는 거야. 공권력, 특히 경찰의 폭력은 식민지 유산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 식민지 종주국들은 본국과는 다른 경찰상과 제도를 식민지에서 써먹었지. 대표적으로, 식민 경찰제도의 목적은 폭력에서 시민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시민으로부터 식민 통치자들을 보호하는 거였어.

A: 그럼, 독립 후에는?
B: 엘리트들은 철통같이 보호하되, 시민, 특히 가난한 시민은 보호하지 않는 거였지. 권력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지배자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 반체제 인사 처리, 사회악에 저항하는 시민을 제압하는 게 공권력의 필수 활동이고, 식민 경찰과 식민지 유산을 간직한 경찰의 모습이야.
A: 에고. 옛 일만은 아니다. 자신의 임무가 시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을 가진 정치 세력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자가 공권력의 수장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B: 나 울고 싶어졌어. “순사가 잡으러 온다!”고 누가 귀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아.

누가 통제할 것인가?

A: 아까, 공권력의 속성이 쉽게 바뀌겠냐고 했지?
B: 그 버릇, 속성이 하도 오래된 거라…….
A: 그럴수록 우린 국가폭력에 대해 더 많이 더 세게 말해야만 돼.
B: 어떤 사람들은 말하지. 시민에게 봉사하는 선의의 경찰관도 많지 않냐고.
A: 맞아. 바로 그런 경찰들을 위해서 더욱더 폭력 경찰을 잘라내야 해. 정권 해바라기인 공권력의 수장들은 내부의 사람들을 혹사시키고 자기 업적을 위해 몰아붙이기 마련이라구.
B: 맞아. 공익을 위해 시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승진하고 조직문화에 영향력을 갖는지를 지켜보는 것과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한 간부가 승진하고 포상 받는 것을 지켜보는 건 아주 다를 거야. 냉혹하고 부패한 자들이 보상체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조직 문화를 쥐락펴락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괜찮은’ 내부인들이 어떤 태도를 지향하게 될까? 백남기 씨 같은 일조차 예사로 넘기면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주는 거잖아.

A: “우리가 사실을 처리하지 않으면, 사실이 우리를 처리한다.”는 말이 있어.
B: “우리가 사실을 처리하지 않으면, 사실이 우리를 처리한다?”
A: 공권력의 폭력에 의한 시민 생명의 위기, 이 사실을 우리가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사실이 우리를 어떻게 처리할까? 정권의 잘못과 공권력의 오남용에 저항하는 시민은 저렇게 되더라. 우리는 보호받지 못할 거고 납작 엎드리는 게 살길이란 자괴감‧무력감만 남겠지.
B: 그건 안 되지. 반대로 우리가 사실을 처리해야만 해.
A: 맞아. 우리가 사실을 처리해야 해. 백남기 씨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그 결과에 따른 국가의 책임 인정과 배상, 책임자 처벌, 피해자의 명예 회복, 재발방지를 위한 법제도 정비 등이 이뤄져야 해.
B: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국가가 시민을 죽이게끔 내버려두는 건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도달할 수 있고 실현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뭐가 있을까?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99 호 [기사입력] 2016년 09월 01일 0: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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