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영화를 만나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일 뿐인데"

영화를 통해 만나보는 병역거부자의 삶, <방문자>, 신동일 감독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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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 사진:영화 <방문자> 포스터
영화 와 관련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한 번밖에 안보고 감상평을 쓰려니 조금 걱정스러웠다. 나쁜 머리로, 본지 한 달 가까이 된 영화를 되새김질하며 뭘 어찌 써야할까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영화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으니 먼저 머리 속을 스치는 기억들.

송인욱이 떨리는 목소리로 법정에서 한 최후진술이, 임재성이 쓴 “부모님의 오열을 뒤로하고”로 시작되는 기고문이, 조정의민이 얘기했던 “감옥에서의 시간들이 너무 아팠어서…”라는 인터뷰 내용이, 그리고 ‘전쟁없는세상’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편견의 벽이 느껴지는 무수한 댓글들이 머리 속을 스친다.

세상에 난무하는 편견들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그 길이 자신을 얼마나 슬프게 할지, 얼마나 아프게 할지, 얼마나 두려움에 떨게 할지를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한 그들. ‘여호와의 증인’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신념에 따라 군대를 거부했던 나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2.
영화 는 세상에 불만이 많은 ‘투덜이’ 시간강사 호준이 여호와의 증인 계상을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면서 겪는 변화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여호와의 증인으로 나오는 계상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편견에 시달린다. 전도를 하려 문을 두드리면 사람들은 면전에서 문을 ‘쾅’ 닫기 일쑤고, 계상의 종교가 여호와의 증인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과외 학생의 학부모는 자신을 속였다고 화내며 과외를 그만 둔다.

그런 영화를 보며 가물가물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또렷이 떠올랐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대문 틈으로 책자를 끼워 넣던 한 여호와의 증인이 있었다. 난 그 사람이 집어넣던 책자를 ‘휙’ 잡아 빼 담 너머로 신경질적으로 던져버리곤 했다. 길을 지나다보면 종종 만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좋은 말씀을 알려 주겠다”며 건네는 책자도 여러 번 냉정하게 거절한 적 있다. 귀찮기도 했지만 일단 거부감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이상한’ 종교집단, 종교적 ‘이단’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에게 선입견과 거부감을 심어주었던 걸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무례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나, 후회된다. 그냥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일상에서 편견의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 영화 속 계상의 “우리도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인데…”라는 말이 생각난다.

3.
군대문제에 있어서는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은 훨씬 더 적대적이다.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해 신념에 의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병역거부’는 국가안보 논리에 빠져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죄목이다.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거부라고 하더라도, 그런 요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부정적이고 또 그런 부정적 인식을 조장하고 유포하는 계층에 의해 그들의 요구는 가볍게 무시된다. 그렇게 70년이 흘러왔고 지금도 아까운 청춘들의 감옥행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현역 군인의 1.5배에 달하는 기간 동안 대체복무를 하겠다고 말하는데도, 아니 그 이상의 기간이라도 군대와 감옥만 아니라면 좋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얼마든지 힘든 일이어도 총을 들지만 않는다면 좋다고, 다른 방식으로 이 사회에 보탬이 되겠다고 하는데도 우리 사회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지도 않는다. “대체복무가 도입되면 군대는 누가 가려 하겠냐”, “나라는 누가 지키냐”, “비양심적 병역기피자들”이라며 마냥 비난하기에 급급하다.

방위산업체 근무, 공중보건의, 공익요원, 소방서 근무 등 이미 대체복무는 존재한다. 그러나 대체복무라고 하더라도 필수적으로 한 달간의 군사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연습을 하는 게 군사 훈련이다. 딱 한 달만 총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 한 달 때문에 계상은 국가유공자 자녀로서 방위산업체에서 근무를 할 수도 있었지만 기어이 감옥으로 보내졌다.

우리 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는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비난한다. 마치 예전에 내가 신문에 끼여서 대량으로 함께 오는 광고지들은 가끔 훑어보면서도 여호와의 증인이 대문으로 넣어주던 책자는 보지도 않고 담 밖으로 던져버렸던 것처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원하는 것은 많은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권고안을 냈다. 그 권고안에는 대체복무 도입을 권고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그러나 아직까진 사회적 동의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법과 제도의 변화와 함께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되어야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난은 오늘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 현실에 난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진다.

위 사진:영화 속에서 호준은 계상의 삶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된다. 계상과 호준이 만나는 영화 속 한 장면.

4.
영화 속 계상은 현실의 나의 친구들처럼, 힘든 길임을 이미 알고 있지만 갈 수 밖에 없는 그 신념의 길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듯이 사회에 봉사하는 방법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곧 현실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계상은 호준의 마음속에 조금씩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계상의 말처럼 평화를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호준의 현실이 되었다. 호준은 드디어 주변과 소통하기 시작하고 계상의 미소를 닮아가기 시작한다. 계상의 마음과 미소가 그렇게 호준에게 전달된 것이다.

5.
총을 드는 대신, 계상이 말했던 그런 현실이 우리에게도 빨리 오길 간절히 바란다. 지금 재판을 끝내고 구속 날짜만 기다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친구가 또 한 명 있다. 계상이 말한 것처럼 나도 묻고 싶다. 이 고통과 비극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저 공고한 편견의 벽을 허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라는 영화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편견의 벽에 유머와 위트로 다가가 설득하기. 감독의 내공이 느껴진다. 나는 아직 나 스스로를 연출부 스탭 내지는 몇 편의 단편영화를 만든 독립영화인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나도 영화로서 세상을 설득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국회 무료상영회가 2월 2일 저녁 7시에 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마음속에 울림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정은 님은 영화학도이자 '전쟁없는세상' 자원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9 호 [기사입력] 2007년 01월 31일 10: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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