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저들은 우리를 모욕한다

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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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심상치 않다. 너무 견고해서 퇴임을 해도 이어질 것만 같던 대통령 지지율이 일주일 만에 한 자리 수로 곤두박질치고 대통령은 무력화됐다.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거국내각이니 책임총리제니하는 평소엔 들을 리 없는 말도 나온다. 언론도 성향과 상관없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일 특종을 더하며 매일 아침 새로운 게이트를 열고 있다. 검찰은 여론의 눈치만 살피며 청와대를 수색하겠다고 시위를 하며 빈 박스를 들고 나왔고 경찰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시위대를 항해서 물대포가 아닌 감사인사를 전했다.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 역시 이전과는 다르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검찰에 오물을 투척하고, 굴삭기로 돌진한다. 모두 화가 나있다. 우리는 무엇이 그렇게 화가 난 것일까?

알리바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결국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최순실을 비롯한 몇몇 이들은 검찰에 출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는 사그라들긴커녕 오히려 더욱 폭발하고 있다. 정치권력에 균열이 생기고 보수 여당은 분열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섣부르게 그 균열을 채우지도, 그렇다고 떠나지도 못한다. 여기에 보수언론은 권력형 비리의 문제를 대서특필하고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며 마치 권력을 향해 냉철한 비판을 하는 언론인 것처럼 자신들의 이미지를 포장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정윤회, 우병우 문제를 가장 먼저 보도한 언론으로서 비리 정권에 맞서는 언론을 자처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야당은 탄핵이니 하야니 특검이니 하는 말들을 여론의 눈치만 보며 한마디씩 흘린다. 새누리당은 비박은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며 박근혜와 선을 긋고, 친박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버티기에 돌입하며 현 사태를 모면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벌도 마치 정권에 돈을 갈취당한 피해자인 것처럼 자신들의 피해를 호소한다. 앞서 말했듯 검찰과 경찰은 말할 것도 없이 태도를 바꿨다. 언론, 정치, 검찰, 경찰, 재벌 할 것 없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언저리에서 알리바이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들고 일어나는데 저들은 알리바이만 내밀고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질문은 ‘무엇이 지금의 박근혜-최순실을 만들었지?’이다. 박근혜-최순실은 혼자 정치를 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박근혜의 실정에 견제는커녕 말 한마디라도 더 보태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애써온 파트너가 새누리당이었다. 최순실의 존재를 친박이 몰랐을 리 없다는 이야기가 김무성의 입에서 나오는 마당에 새누리당이야말로 공모자가 아닐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제가 어렵다고만 하면 재벌들을 위해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나서겠다는 대통령에게 그들은 돈을 뜯긴 게 아니다. 재벌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 노동개혁법, 경제활성화법 입법 촉구 서명운동에 나선 나팔수에게 돈을 뜯길 집단이 아닌 것이다. 또한 이 모든 일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가장 앞에서 힘쓴 집단은 바로 보수 언론이었다. 정치권과 재벌이 추진하는 어떤 일이든 마다않고 힘을 실어주며 매일같이 경제위기니 안보위기니 하는 위기론을 확대 재생산해온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을 행사한 언론이 지금 박근혜 하야를 가장 먼저 외친 조선일보라는 사실도 역시 놓치고 갈 수 없다. 어디 이뿐인가. 늘 자신은 힘이 없어서, 표가 부족해서, 심지어는 여소야대 국면에서도 민생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견제조차 못해온 무능한 야당도 있다. 또 생명을 구하지 않는 공권력, 정권에 반대에 나선다는 사람을 죽이고 처벌도 하지 않는 경찰과 검찰까지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을 만든 것은 바로 이 카르텔이다. 이들에겐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는다.

위 사진:매일 저녁 광화문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행진하는 모습

‘우리’는 모욕당했다.

이 사회의 ‘나’들은 각자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박근혜를 지지했거나 반대했다. 그런데 그 결말이 고작 사이비 종파와 그 추종자들의 농간과 비리였다는 현실 앞에서 모든 상황은 중단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키를 쥐고 갈만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그 적합성을 따져왔다는 믿음 자체를 깨트린 것이다.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내가 타고 있는 이 배가 결국 출구를 찾아낼 것이라는 마음이 가로막힌 것이다. 국정을 운영하다보면 으레 있던 비리가 아니라 처음부터 비리를 위해 있었던 국정이었다. 얼토당토않은 인물과 그 인물을 선장으로 앉힌 권력들이 우리에겐 ‘노오력’을 하라고 떠들며 서서히 배를 침몰시키고 있었다. 저들은 ‘우리’의 삶 따위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잇속만 챙기며 우리를 조롱하고 모욕했다.

선장을 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력의 카르텔은 우리를 모욕하고 있다. 보수 언론은 경제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양적완화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쏟아낸다. 삼성과 같은 재벌은 정치권에 50억을 뺏겼느니 100억을 뺏겼느니 앓는 소리를 이어가며 경영권의 3대 세습을 착실히 진행 중이다. 정치권은 각자의 배를 띄우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권은 자신들이 주도하겠다고 나선다. 권력의 공백기를 자신들의 권력으로 채워나가겠다고 앞 다퉈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에 가득찬 사람들을 향해서는 유효하지 않은 알리바이만 열심히 홍보하면서 뒤에서는 권력의 카르텔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의 분노는 안 보이는 것처럼, ‘우리’가 자신들과 같이 서있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존엄을 잃지 않는다.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해온 노력이 빛바래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답한 이대생의 말처럼, 백남기 농민을 부검하겠다는 국가권력에 맞서왔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존엄을 지켜왔다. 이제 이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서 분노하고,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분노는 그저 박근혜-최순실에 대한 분노로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외치는 박근혜 퇴진은 그저 박근혜만 아니면 누구라도 괜찮다는 안일함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분노할 것이고 저 권력의 카르텔을 깨트리기 위한 외침인 것이다. 또 다시 ‘아무나’ 나의 의사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나서서 우리의 삶을 조롱하는 꼴을 더는 볼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권력 집단의 내부 교체가 아니다. 우리는 권력의 교체를 원한다. 권력의 카르텔을 깨고 우리의 배를 만들기를 원한다. 또다시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선장만 구조되는 배에 힘없는 승객으로 승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의 키는 우리 스스로가 움켜쥘 것이다
덧붙이는 글
디요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507 호 [기사입력] 2016년 11월 03일 16: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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