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1] ‘인권정책 계획’ 아닌 ‘반인권정책 짜깁기’

인권상황 오히려 후퇴시킬 법무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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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2011년까지 5년 동안 한국 정부가 펼쳐야 할 인권정책의 기본틀이 누더기로 만들어질 위기에 처했다. 2월 13일 법무부(장관 김성호)가 공청회를 통해 공개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초안(아래 초안)은 ‘기본계획’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새로운 정책보다는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거나 시행할 것을 공개한 정책이 단순히 나열되어 있다. 게다가 ‘반인권적’이라고 평가되는 정책까지 계획으로 포함되어 있는 등 “도저히 ‘인권정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정도”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인권정책 계획’이 아니라 ‘반인권정책 짜깁기’

법무부 초안은 지난해 말 개악된 파견법 등 비정규 노동법 개악을 “근로의 권리”로 소개하고 있다. 국제인권기준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무시하고 비정규직을 오히려 확대시키는 법률의 개악이 ‘비정규직 보호’라는 포장을 덮어쓰고 인권정책에 포함된 것이다. 또 초안은 학습지교사, 덤프노동자 등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에 대해서도 지난해 10월 정부안으로 확정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대책’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대책은 엄연히 노동자인 이들을 자영업자로 간주하고 이들에게 가해지는 노동탄압을 ‘불공정 거래’로 간주해 공정거래법·약관법 등을 적용해 ‘보호’하겠다는 발상일 뿐이다. 초안은 이들에게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방안은 향후의 검토 과제로 미뤄두고 있어 현 정부의 비정규직 양산 정책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한편 초안은 명예훼손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프라이버시권’ 보장 정책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통과된 이 법안은 정보인권단체들로부터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게다가 이 법은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 등에 대한 정보통신부 장관의 삭제 명령을 ‘의무화’하고 이에 불응하는 게시판 운영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검열의 시대를 불러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표적인 반인권 악법마저 법무부 초안은 ‘인권정책’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함량 미달 ‘인권정책’

초안에는 이처럼 노골적인 반인권정책이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기준은 물론이고 국가인권위의 권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책들 역시 적지 않게 담겨 있다. 국가인권위가 폐지를 권고한 사형제에 대해 초안은 “사형제가 가지는 범죄억지력 유무 및 사형제 폐지 시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존폐 여부에 대한 선입견 없이 분석·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는 생명권을 국가가 박탈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를 묻는 사형제 폐지론의 인권적 질문을 회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제인권기구로부터 끊임없이 ‘반인권적’이라는 권고를 받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초안은 법 해석 및 적용에서 남용을 막겠다며 ‘기소유예 처분’이나 ‘불입건 처리’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또 초안은 개폐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검토’와 ‘원만한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사상·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성에 대한 판단은 제쳐두고 모든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는 것으로, ‘인권계획’이 가지는 태도일 수는 없다. 또한 국회에서 주요 정당들이 논의 자체를 회피하고 있는 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으로 사실상 국가보안법을 존속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한편, 초안은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거듭 권고하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 개선 문제에 대해서도 올 3월로 예정된 ‘대체복무제도개선연구회’의 결과 발표에 책임을 미뤄두고 있다. 초안은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해 형을 선고받은 사람 가운데 ‘보안관찰대상자’를 선정해 거주예정지 등에 대한 각종 신고의무를 두고 집회·시위 장소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보안관찰제도도 건드리지 않고 있다. 다만 ‘재범의 위험성 여부에 대한 실질심사’를 통해 운영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초안은 국제사회로부터 가장 극심한 인권침해로 지탄받고 있는 ‘강제철거’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아예 ‘주거권’ 항목이 빠져 있어 그동안 국제인권기구로부터 권고 받은 강제철거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임시주거시설제공 등의 보호조치 채택, 취약집단과 한계계층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즉각적 조치 등이 아예 누락된 것이다. 또한 초안의 시선은 빈곤층이나 노숙인에게 적절한 주거를 보장하는 정책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 약자·소수자는 시혜와 동정의 대상?

초안 3부의 제목은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배려’인데, 이러한 제목은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관심과 배려’의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표현이다. 더 큰 문제는 실제로 이 제목 아래 배치된 내용도 대부분 시혜와 동정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이 배제되는 구조를 문제 삼는 대신 초안은 △장애수당 지급액의 1~6만원 인상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 설립 △청소년 동아리 활동 활성화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영역에서 군인, 전·의경과 사회복지시설 생활인,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제외된 것도 큰 문제다. 이 항목들은 국가인권위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에는 포함되었지만 법무부 초안에서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군과 경찰 내부의 폭력적 구조에 노출되어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 군인, 전·의경이나 입·퇴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한평생 시설에 수용되는 사회복지시설 생활인이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영역에서 누락될 이유는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국가인권위 권고안에서는 독자적인 항목으로 설정되었지만, 법무부 초안에서는 ‘근로의 권리’ 항목으로 앞에서 언급한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 정도가 포함되었을 뿐이다. 법무부가 초안에서 이들 항목을 배제한 것은 실수라기보다는 이들 영역의 인권 침해 실태에 침묵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초안은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언급 또한 ‘병력자 및 성적소수자’ 항목으로 묶고 있다. 물론 ‘병력자’가 받는 차별도 중요하지만, 초안은 성소수자를 병력자와 같은 항목에서 언급함에 따라 성정체성의 차이를 ‘정신질환’으로 보는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그 내용 또한 교육과정에서 ‘특정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 또는 편견과 관련된 내용’을 삭제·수정한다는 내용으로 단 한 단락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실태조사와 차별 모니터링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는 각종 법령의 개선 △형사절차상 인권보장 등 일상 전반에 걸친 성소수자 인권증진 과제가 모두 누락되어 있다.

반면 초안은 ‘가족생활 등에 관한 권리’를 따로 둬 ‘모성보호제도의 활성화’ 등 이른바 ‘정상가족’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비해 △비혼 여성 △한부모 가정 △성소수자 가족 △혈연에 기반하지 않는 다양한 공동체 등에 대한 대책은 초안에서 불충분하게 언급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시간만 낭비한 초안 작업, 졸속 추진 안된다

정부는 이번 초안을 토대로 각 부처 의견을 수렴한 뒤 3월말~4월초 국가인권정책협의회에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안을 상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법무부 스스로도 밝히듯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는 2011년까지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인권증진 계획이 담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법무부 초안은 지난해 1월 국가인권위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1년 넘게 추진한 사업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고 관점에 있어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초안대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 수립된다면 이는 보여주기 식의 ‘전시행정’에 지나지 않으며 ‘인권’의 이름으로 반인권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법무부가 진정으로 국가의 인권정책에 대한 기본계획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번 초안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국가인권위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 발표가 단지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집행 책임이 있는 각 정부 부처는 최소한 그 권고안의 기준에 근거해 인권정책의 실행 방안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진출, 유엔 사무총장 배출국 등 ‘인권선진국’은 허울뿐인 ‘명예’를 얻는 것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인권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의 인권 지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권오름 제 41 호 [기사입력] 2007년 02월 14일 5: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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