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 “바다가 죽어가면서도 베풀고 있어”

계화도 갯벌에 사는 고은식 씨 이야기

정리/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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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외침은 한국사회의 인권현장, 바로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공 없이 그대로 담는 기획이다. 지식인이나 활동가 등은 글쓰기 등을 통해 자기 얘기를 남기지만 인권현장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고스란히 삶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외침’은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한다.


지난 4월 22일 새만금 방조제 마지막 구간에 대한 물막이 공사가 끝났다. 5월 2일 계화 갯벌은 공사가 끝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축구장으로 써도 될 만큼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3살 때 계화도로 이사와 41년을 살아왔다는 고은식 씨는 새만금 사업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아뿔싸, 미래를 도둑맞았구나

우리가 크게 사기 당했구나, 그전에도 느끼긴 좀 느꼈지만…. 처음 공사 시작할 때는 피해란 게 없다가 서서히 피해들이 나타나고 피해가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주면서 사기당한 보상금 때문에 말도 못하고 있다가, 우리가 정말 미래를 도둑맞았구나 생각이 들고 자연스럽게 반대를 시작하게 됐어요.

위 사진:물막이 공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4월 21일의 새만금 살금 갯벌. 염분이 하얗게 드러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사진 출처: 새만금사업을반대하는사람들>


91년도에 보상을 받았죠. 보상이 석달치 바다에서 벌어들이는 수입 정도도 안돼요. 정부에서는 3년 치 기준으로 줬다고 하는데…. (그때) 도장을 찍어준 건 새만금 10년만 기다리면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우리는 (그런 환상에) 넘어가서 도장 찍고 보상 같은 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인 양 받았고 결국 우리들이 농림부도 방문해보고 국무조정실도 가보고 하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하고 정부가 심어준 미래는 거기에 없었어요. 여기에 공항까지 들어서고, 하여간 첨단산업단지에 온갖 것들…. 바다에서 살다 보니까 바다를 버려도 저렇게 바뀐 사회에서 더 잘 살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던 거죠.

처음 생각은 바다가 중요하다, 산업단지가 중요하다가 아니라 우리한테는 계획한 대로 되면 거기서 사는 게 중요했어요. 바다가 지금은 참 소중하지만 그때는 바다라는 게…. 사람은 현실에 만족을 못하잖아요. 바다가 위험하고 죽을 때도 있고 우리도 우리지만 어른들은 위험한 바다보다는 월급쟁이를 하더라도 취직을 하는 게 낫고 안정적이지 않느냐, 그래서 그런 선택을 했던 거죠. 그런데 그것도 아닌데 바다를 뺏겨 버리고 이도 저도 아닌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반대를 시작했죠.


기대한 만큼의 깊은 수렁

이제는 선거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해요. 정부는 다 도둑놈이라 하면서. 대통령만 해도 해양수산부장관 때 문제있는 사업이다, 서해의 어자원에 큰 영향을 준다고 얘기했던 사람이 대통령 되더니 새만금 막아야 한다…. 전북에 정치하는 사람들, 새만금 팔아가지고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해가지고 표로 연결시키고 권력의 도구로 계속 써먹는걸 보니까 울화통만 터져요. 정치인, 관료들, 그리고 답답해서 어디 가면 우린 찬밥신세, 우리에게 시원한 얘기를 해주는 것도 아니고 뱅뱅 돌리는 얘기만 하고, 울화통만 터지죠.

그런 게 좌절로 왔어요. 질의를 해도 집회를 해도 하고 싶은 걸 표현하러 가면 아무것도 안되고 역으로 언론에선 역으로 나오니까 ‘이게 더 좋은 거다’라고 하니까 집회를 하고 오면 힘을 받는 게 아니라 더 좌절돼요. 우리가 기대한 만큼의 깊은 수렁에 빠져버려요. 집회한번 하고 나면 몇 개월간 일어설 수가 없어요. 뭐 하러 서울까지 가고 테레비도 안 나오고 역으로 더 새만금 막아야 한다고 보도 내버리고, 더 힘들어져 버려 사람들이. 참 그러면서 7년을 했네.

우리들이 생각하는 미래? 그런 것 없어요. 구체적으로 이렇게 되면 이렇게 계획을 세워서 이렇게 하겠다가 없어요. 닥치면 힘들면 떠나가고 가지 못할 형편이 못되면 남아서 살아요. 계획이 어디 있겠어요?


바다가 죽어가면서도 베풀고 있구나

새만금 이걸 반대하는 일을 하면서 느낀 게, 바다가 너무 소중했다, 그리고 소중한 것이 뭐냐? 바다가 끝까지 자기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우리에게 계속 베풀어주고 있구나.

새만금…. 처음에는 제 생존권 때문에 했었는데, 하다가 바다의 그것을 느꼈어요. 힘들다고 해서 내가 여길 떠나면 결국 바다가 나한테 준 것이 별로 의미가 없지 않느냐. 바다가 죽으니 나도 떠난다, 이런 것보다는 바다가 준 것이 그게 있으니 힘들더라도 여기 살면서 다른 어떤 바다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들을 해야지, 힘들어도 여기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하고 부대끼며 살아야지 싶다. 그런 삶을 살아야죠 뭐.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은 바다에서 백합 잡아서 먹고사는 분들, 뭐 재산이나 이런 게 있어서 힘들면 다른 데로 떠날 수 있는데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여기 있으면서도 바다가 더 이상 내어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여기에 있어도 참 막막하고 이런 분들이 남을 거예요. 나이 많고 여자분들이고….

위 사진:갯벌과 함께 살아온 여성 어민들. 이녁들의 삶은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사진 출처: 새만금사업을반대하는사람들>


처음에 새만금 접하면서는 거기에는 다른 생각은 없고 내 사는 것만 있고, 내 사는 위기로 그렇게 했는데, 계속 반대를 하다가 언뜻 느끼는 게 결국 새만금을 막는 게 정부나 자본이나 그런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저것을 막고 있구나. 내 마음에 있는 방조제부터 걷어내야지, 그게 안돼서 저게 막힌 것인 줄 모른다. 너무 내 생존에만 매여 있어서 바다라든지 거기 사서 많은 생물이라든지, 이 친구들도 나와 같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나만 있으니까 좀만 영향만 많아도 모든 게 흔들리는 거다.

새만금 공사는 중단하라고 하면서 우리 삶의 행태는 바다에 쓰레기 다 버려버리고 생합 같은 것 작은 것들은 잡지 말아야 하는데 다 잡아버리고…. 왜 잡냐 하면 이걸 놔주면 커서 나한테 잡히냐, 놔주면 나만 손해다. 결국 이런 것이 바뀌지 않으면 새만금을 막지 말라는 것이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격밖에 되지 않느냐, 우리가 자꾸 좌절하는 것이 그런 게 안돼서 그런 줄도 모른다, 하다 보니 새만금 열심히 반대했던 사람들 맘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스며들더라구요. 내 안에 바다가 아니라 바다 안에 내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진 않지만 생겨나더라구요.

국민의 80 몇 %가 새만금 공사 반대를 하는데 전북만 광적으로 찬성해요. 어딜 가도 새만금 찬성하는 지역은 없더라구요. 전북 안에서만 광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하는데, ‘한’이라고 표현하던데…. 소외되고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소외되고 그 한을 새만금에다 푸는 게 참 야속하기도 하더라구요. 같이 살면서 새만금의 근본적일 것 보려하지 않고 자기 한, 자기 욕심이나 뭐 그런 걸로 새만금을 바라보고, 새만금이 돼야 내가 잘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게…. 지금도 전북 뉴스나 이런 걸 보면 새만금이 들어서면 서울보다 여기가 더 커지겠더라구. 사실 아무것도 없는데, 참 안타까워요. 한으로 풀어내려 하는 것들이….

지금 우리가 결정한 그게, 큰애가 고등학생, 작은애가 중2인데 걔네들 사는데도 크게 영향을 주고 있어요. 어쨌든 경제적인 게 잘 안되니까 용돈도 못주고, 작게는 그런 것들, 부모가 해줘야 할 것들을 못해주고 있고, 내가 결정한 것 땜에 애들이 피해보는 한 부분일 것 같고. 또 하나는 IMF 있었을 때 여기 계화도에 굉장히 인구가 늘었어요.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왔어요. 도시에선 실패했어도 논농사는 돈 없으면 못하지만 갯벌에 나가 조개잡는 것은 도구만 있으면 할 수 있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여기서 회복하고 또 나가고 하는 사람들 많이 봤는데, 내 자식 역시도 갯벌이 있으면…. 어디 나가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잖아요? 자식이 어디 가 있어도, 뭘 해도, 갯벌이나 바다가 있으면 참 든든하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미래세대 소송이나 뭐 깊은 건 잘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들이 있었으니까…

2001년인가 순차개발을 하면서 공사재개 딱 떨어지니까 환경단체가 뭐고 넉아웃됐어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 사무실 문을 아예 몇 달간 닫아놨어요. 문을 닫아놓고 있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절 만나면 “왜 사무실 문을 닫아 논대?” 라고 하더라구요. 굉장히 염려되는 얘기로….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문만 열어놓자라고 했지. 그렇게 하자 해서 샤터를 올려놓으니 사람들이 찾아와요. 좌절했지만 뭔가 할려는 사람들이 사무실을 찾아와요. 그해 가을에 바닷길 걷기를 했고, 힘을 얻어서 그 동력이…. 그것이 참…. 전부 다들 놔두고 있는데 어머니들이 “왜 저 사무실 문을 닫아 논대?” 이 한마디가 큰 힘…. 보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마음들이 있으니까 지금까지 해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분들은 방조제 공사를 끝까지 못하게 하려 했는데, 남자들이 다 배려놔서….


이미 막은 걸 어떡하냐고?

물막이 공사 끝나고 심정은 담담하더라요. 끝났다는 얘기 듣고 그때부터 술 먹기 시작했어요. 담담하대요. 막혔다니까. 생각이고 뭐고 없고. 얼마나 많이 먹었는가. 헐 일이 없어진 후에는 술로 살았어요.

위 사진:지난 3월 열린 피해주민 투쟁대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고은식 씨. 새만금 어민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 하다. <사진 출처 : 새만금사업을반대하는사람들>


이제 제일 먼저는 침수 피해가 올 것 같고 수질오염이 따라올 것이고 염분 피해 같은 것도 있을 거고…. 비가 좀 오면 침수되고 난리일 거 같아요. 그것이 새만금 공사가 가져다준 영향이란 걸 알려내는 일을 해야 할 거고, 사회적으로 알려낼 필요가 있죠.

이미 막은 걸 어떡하냐면…. 자동으로 해결될 것 같아요. 막히기 전까지는 외로운 싸움이었고 연합을 만들려도 애를 써도 잘 안됐는데, 문제가 생기면 가만히 있겠어요? 그런 문제가 있으면, 정치하는 놈들도 새만금 공사 찬성하면 표가 안 되니까 또 반대할 거 아니에요? 막히고 난후에 더 쉬울 것 같아요. 분명히 문제가 나타날 거니까. 간척을 했으니 계획대로 된다면야 오염되고 뭣하고 하는데 계획했던 일이 될 수 있겠어요? 우리가 반대하면서 그렇게 얘기했던 게 농사지을래도 20년, 30년 기다려야 하고 그런 거였는데, 그런 얘길 한 번도 안했던 농림부가 막히고 나니까 바로 그런 얘길 하대요. 공장 들어설라면 100년이 넘게 걸릴 텐데, 100년 후에 어떤 세상이 될지 모르는데 좋은 갯벌을 다 죽여야 한다는 게 말이 돼요? ‘새만금이 세계 최대다’. ‘하여간 규모도 세계 최대고 환경재앙도 세계 최대도 결국에 방조제 트는 것도 세계 최대로 최단기로 틀 거다’라고 그런 얘기들 해요.


정부가 이웃이랑 원수를 만들더라구요

정부에 반대되는 일 이거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지금은 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되고 결국 우리 속에서 뭐가 나와야 하지 않느냐. 지역자치라는 게 있어야지, 정부가 의도하는 대로 가면 내 이웃하고 원수가 돼버려. 정부는 내 이웃이랑 원수를 만들어 놓더라구요. 정부가 주는 정책자금이랄까 경쟁을 시켜요, 더불어 살기가 아니라. 자랑 나랑 경쟁을 해서 돈을 주니까 대치가 되고, 옛날에는 잘 살다가도 보이지 않는 갈등들이 있는 거고…. 정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는 지역 공동체가 더 중요해요. 모든 법에 우선되는 게 우리 지역에서 정해지는 법이 있어서 그 법안에 국가의 헌법도 들어가 있어야지 제대로 되는 거지.

새만금 하면서 대표적으로 배운 것은 소중한 것은 소중하게 안 보인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소중한 것에 대한 생각을 삶에서,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걸 우리가 못하더라. 그걸 사람들이 찾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 저도 바다가 이렇게 소중한지 몰랐어요. 바다에 그냥 가면 되고 잡아오면 되고, 진작 소중했던 걸 왜 몰랐던가. 일찍 알았다면 이런 일 안 했을 텐데…. 사람들마다 다 그런 것 같아. 정말 소중한 것은 소중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바다를 생각하면 죄인이 뭐 할 말이 있나요. 미안하고…. 소중하다는 걸 느꼈잖아요, 이제. 하여간 변치 않고 내 삶이라든지 주변사람들과의 삶이라든지,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죠. 죄인이 더 할 말이 있나요.
인권오름 제 3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10일 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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