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의료가 만들어 낸 풍요

[가라가라 빈곤 ⑤] 쿠바, 자본주의 의료에 연대로 저항하다 <2>

홍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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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의료, 쿠바에서 ‘도덕적 해이’를 찾을 수 있을까?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얼마 전 의료급여환자에게도 본인부담금을 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무료로 병원을 이용하는 의료급여 환자들의 대부분이 하루에도 수십 곳의 병원을 방문하고, 수백 알의 약을 처방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덕적으로 해이’해서 ‘무료혜택을 남용’하는 의료급여 환자들이 보건의료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 낙인찍고 있다. 같은 질문을 쿠바의 종합진료소에서 일하는 의사에게 물었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무료라는 점을 악용해서 병원을 지나치게 많이 이용하지는 않나요?” 질문을 받은 의사는 한참을 고민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해서 다시 물었다. “한국에서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진료를 무료로 해줍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사람들의 의료 남용이 심각하다고, 나라에서는 돈을 부담시키겠다고 했답니다.” 그는 또 한참을 고민하더니 대답한다. “쿠바에서 아픈 사람은 의사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병원을 찾지 않아요. 저희는 모든 진료를 무료로 해주니까요.” 무료이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지 않다는 다소 생뚱맞은 대답을 듣고 말았다. 무엇이 이런 대답을 만들어 내는지, 쿠바의 보건의료 현실을 천천히 찾아가보자.

위 사진:왼쪽 사진은 아바나 구시가지에 있는 가정의사 진료소, 오른쪽 사진은 아바나 구시가지에 있는 종합진료소 모습

의사 선생님은 어디에 계세요?

아바나 인근 마을의 가정집을 방문했다. 집 앞 거리에서 잠시 쉬던 중, 함께 있던 쿠바사람에게 의사는 어디에서 사는지 물었다. “바로 저기 자전거에서 내리는 분이에요”라며 집 앞을 가리켰다. 청바지에 셔츠 차림의 의사는 집 주위를 살피다가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인상 좋은 ‘이웃집 아저씨’같은 얼굴에 차림새였다. 이같은 가정의사는 쿠바의사의 47% 정도를 차지한다. 아침에 진료를 시작하면 점심때까지 보통 20여명의 환자들을 진료한다. 오후에는 5~6곳의 집에 방문 진료를 간다. 쿠바에서 의사 1명이 만나는 지역주민은 160명 정도인데, 이는 도시와 시골을 모두 합친 통계라서 실제 시골의 경우에는 120명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 의사 1인당 국민수는 630여명이고, 미국도 390명인 것에 비하면 큰 차이다.


집 앞에서 마주친 이 의사는 진료만 하지는 않는다.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사소한 생활까지도 다 알고 있다. 이 집에 가족은 몇 명이고, 하수도 시설은 어떤지, 소득원은 무엇이고, 소득은 어느 정도인지……. 적은 수의 환자를 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의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경제적 궁핍이 원인일 수도 있고, 깨끗하지 못한 환경일 수도 있다. 작업환경도 중요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아픈 사람의 ‘몸’만 볼 것이 아니라, 쿠바의 가정의사들처럼 환자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가정의사들의 활동이 쿠바의 예방 중심 의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몸이 아프고 나서야 병원을 찾는 치료 중심 의학이 아니라, 몸이 건강할 때부터 가정의사에 의한 관리가 이뤄지는 것이다.

쿠바의 보건지표가 선진국 수준인 이유는 바로 가정의들을 중심으로 한 1차의료의 성과에 있다(아래표 참조). 한 나라의 보건의료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것이 영아사망률과 기대수명이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쿠바의 기대수명과 영아 사망률은 선진국 수준이다. 비록 모성 사망률이 아직 높은 수치를 보이지만, 이것도 멕시코 등의 인접 남미국가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또한 쿠바 의료의 중요한 특징은 국가 주도형 의료라는 점이다. 1차의료 중심의 가정의사가 포괄하는 인구가 전체 국민의 99.2%를 이미 넘어 섰고, 국가가 아픈 사람들의 급여를 비롯한 생활을 보장해 준다. 국가 주도형 의료이기 때문에 대기환자의 숫자가 넘쳐나는 영국과도 다르다. 가정의사 진료소의 대기환자는 4명 이내이고 시간도 15분 안팎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기까지 쿠바 의료의 역사적 과정을 간략히 보자.

보건의료 체계의 변화 : 1959년, 1990년 그리고

1959년은 쿠바가 혁명에 성공한 해다. 혁명 전 쿠바의료는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사적의료체계, 국민의 20% 정도를 포함하는 사회보험체계(국내 건강보험과 유사), 빈곤층을 포함하는 공공부조체계(국내 의료급여와 유사)로 구성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빈곤층은 낮은 질과 궁핍한 보건재정으로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혁명 후 상황은 급변했다.

혁명 후 쿠바의 국가보건시스템은 “통합성, 평등한 접근성, 정부주도”의 슬로건으로 집약된다. 대부분의 민간병원과 제약회사는 국유화되었고, 전국은 14개의 주와 169개의 시 단위의 건강지역으로 나뉘었다. 의사들의 손길이 닿지 않던 외딴 마을까지 다가가는 의료정책으로 재편된 것이다. 특히 의학교육을 집중 육성했다. 혁명 후 체제에 반대하는 3천명 이상의 의사들과 의대교수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결국 쿠바는 새로운 토양에서 새로운 의사들을 교육시켜야 했다.

1990년 갑작스런 소련의 붕괴와 동구권의 몰락은 쿠바의 상황을 참혹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강력한 경제봉쇄로 석유, 음식, 기본적인 의약품 등이 부족해졌다. 엑스레이와 실험실 진단 장비들뿐만 아니라, 소독약, 구급차, 심지어 의과대학 교과서도 수입이 중단되었다. 심지어 사람들이 쓸 비누도 부족해서 사라진 질병들이 다시 창궐했다. 결핵환자가 늘어나고 감염성 설사 환자들도 늘어났다. 필수 영양소 섭취가 부족해 굶어 죽는 사람도 늘어났다. 쿠바정부는 이 상황을 타개할 때까지를 “특별시기(special period)”로 선포한다. 그리고 전 국민들에게 함께 국난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한국 역시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을 때도 국난 극복의 호소는 있었다. 하지만 공적자금을 투입한 금융 산업은 최근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매각 의혹을 낳았다. 또한 ‘금모으기 운동’은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없었던 국민적 사기극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맸던 일하는 사람들의 빈곤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몇몇 재벌은 더욱 비대해졌다. 하지만 쿠바의 국난 극복을 위한 사회적 노력은 달랐다. 육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남아있는 우유를 아이들과 임산부에게 먼저 나눠주도록 했다.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국방비 예산을 덜어내고 사회보장 예산지출을 늘렸다. 담배, 커피 중심의 획일적 농업에서 자급자족형 농업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다시 관광산업도 확장했다. 그리고 소련 중심의 대외무역에서 벗어나 다른 국가와의 무역을 시도했다. 부족했던 의료장비는 프랑스, 캐나다 등의 국가를 통해 들여왔다. 정부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었지만, 교육과 의료의 예산은 그 삭감 폭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공짜’ 의료, 불가능한 꿈이 아닌

쿠바의 모든 병원에서 이뤄지는 진료와 처치는 무료다.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 의약품의 공급이 부족해서 약을 구입할 때에는 일정정도의 금액을 지불한다. 하지만 노인이나 장애인들은 이마저도 무료다. 그리고 약값이 많이 들어가는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자에게도 무료로 약을 공급한다. 어려운 국가 상황에서도 약자에 대한 보호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무상의료에 대한 다양한 실현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본다. “무상의료가 되기야 하면 좋지만, 이렇게 경제도 어려운데 너무 이상적이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6분의 1이고, 1인당 보건의료 지출비도 한국의 절반에 불과한 쿠바도 하는 일을 우리는 못하고 있다. 쿠바 전체예산에서 보건의료재정 지출비율은 오히려 한국보다 높다.(아래표 참조)


하지만, 보건의료 지출비율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나누는’ 문제다. 쿠바는 미국에 비해 적은 돈을 보건의료분야에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지표의 수준은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흔히들 미국은 죽을 사람도 살릴 수 있도록 빠르게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나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의료기술은 돈 많은 사람들만 접할 수 있다. 살릴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죽이는 의료, 그것이 한국이 그토록 쫓아가는 ‘미국식’ 의료인 셈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에 두고 정책을 결정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공짜’ 의료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적절한 돈을 건강을 위해 투자하고, 소득의 많고 적음을 구분하지 않고 의료혜택을 나누려는 정책적 변환만 이뤄지면 우리도 꿈꿀 수 있다.

쿠바 의사들의 ‘태업’

쿠바 의사들의 게으름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내 의료처럼 민간 중심이 아니라, 공무원 신분인 의사들이 치료에 태만할 것이라는 이유다. 쿠바 의사들의 태업은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의 의사들은 적은 임금(생산직 노동자의 절반 정도)과 24시간 당직을 서는 등 높은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시골 가정의사들의 게으름은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게으름을 피우는 가정의사들, 그/녀들은 매일같이 20여명의 환자를 오전에 보고 오후에는 5~6곳의 가정집을 방문한다. 120여명의 지역주민 전체를 돌보는데 계산상으로는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녀들이 만나는 지역주민의 건강수준은 높다. 국내의 ‘잘나가는’ 개인병원을 찾아가면,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1분 남짓이다. 1분마다 다른 환자를 대할 만큼 의사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병원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족은 여전하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수익에 구애받지 않으며, 쉬엄쉬엄 환자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을 살펴볼 여유가 바로 ‘태업’의 또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

쿠바 사람들은 아프면 가까운 곳에서 의사를 찾을 수 있다.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굳이 아프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면 쉴 수 있는 ‘노인하우스’가 있고, 장애가 있으면 재활과 교육을 받을 센터가 곳곳에 있다. 물론 모든 시설의 이용은 무료다. 이런 쿠바 사람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질문하는 것은 지나치게 한국적 발상이다. 자신이 아플 때, 찾아갈 곳이 충분히 많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료혜택을 ‘남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의료급여 환자가 아프면, 자신을 찾아든 질병만이 그/녀들의 걱정이 아니다. 혹시나 큰 병이면 많은 돈이 들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하루하루 벌어도 살기 힘든 지금의 삶이 더 힘들어지지는 않을까, 내가 아파서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을까, 혹여 나쁜 병에 걸려 친구들이 나를 멀리하면 어쩌나……. 이런저런 두려움들이 그/녀들로 하여금 무료진료를 남용하게끔 할 수도 있다. 나빠지기 전에 좋은 약 한 알이라도 더 먹고 싶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병원을 찾을 수도 있다. 이런 두려움을 해결할 생각은 않고 무조건 의료급여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는 것은 문제의 근본을 보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다. ‘의료남용’을 하고 있는 의료급여 환자의 비율이 전체 의료급여 환자 중에서 얼마나 된단 말인가.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할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또 쿠바에서처럼 사회가 구성원 한 명 한 명에게 아파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공짜라도 환자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지지 않고, 의사 수가 많아서 의사들이 ‘게으름을 피우듯’ 여유롭게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조건’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거다.
인권오름 제 46 호 [기사입력] 2007년 03월 21일 2: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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