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2] 한반도 비핵화를 넘어 동북아 비핵지대로

동북아 비핵지대 운동의 가능성과 한계

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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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6자회담의 성과인 ‘2.13합의’는 2005년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초기 조치를 합의한 것이다. 따라서 2.13합의의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의 구체적인 상은 9.19공동성명에 드러나 있다. 이에 따르면 북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하게 된다. 한국은 1992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접수 또는 배비하지 않는다는 공약을 재확인”한다.

2.13합의는 이른바 ‘북핵위기’에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논의는 마음만 먹으면 핵을 보유할 수 있는 일본은 물론 미국·중국·러시아 등 동북아 주변 핵보유 3개국의 핵무기는 문제 삼지 않는다. 한반도 비핵화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지만 그 끝이 핵을 가진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선에서 마무리된다면 이 또한 한계가 명확한 것이다. 동북아 차원의 비핵화 논의가 뒤따르지 않으면 어렵게 찾아온 ‘한반도의 봄’은 또 하나의 ‘공포의 균형’으로 귀결될 수 있다.

위 사진:2005년 10월 열린 '동북아시아 비핵지대와 평화를 위한 한일 국제회의' <출처; 평화네트워크>

동북아 비핵지대?

2005년 ‘동북아시아 비핵지대와 공동안보를 위한 한일국제회의’에 참석한 일본의 평화단체 피스데포 우메바야시 대표는 동북아에서 일본과 남, 북 3개국이 지리적인 비핵지대를 설정하고 이 안에서 핵무기의 개발·실험·제조·배치를 금지하는 ‘동북아 비핵지대론’을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핵보유국인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비핵지대에 대해 핵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을 하고 조약 준수를 위한 기구를 따로 설치하게 된다. 9.19공동선언에 따르면 단지 핵공격이 아니라 모든 공격을 하지 않는 보장 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동북아 비핵지대론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이미 한국과 북에는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아래 비핵화공동선언)이 있고, 일본에는 ‘핵무기를 제조·보유·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비핵3원칙과 ‘원자력의 연구개발과 이용을 평화적인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된 1955년 원자력기본법이 있으므로 그 연장선상에서 비핵지대를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메바야시 대표는 핵무기 탑재가 의심되는 선박과 항공기의 기항, 영해와 영공 통과 문제는 사전협의할 것을 의무화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협의 결과 허가할지 불허할지의 판단은 개별 국가에 위임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동맹 체제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탑재한 항공기가 영공을 통과하더라도 사실상 이를 허용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우메바야시는 이를 추후 논의과제로 남기면서 “보수적이며 최저의 요건만이 갖추어진…조약이라고 해도 그것이 일찍 성립되는 것이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향한 협조적인 틀 만들기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비핵화의 한계와 동북아 비핵지대론

동북아 비핵지대론은 6자회담의 목표인 한반도 비핵화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더라도 중국과 일본 사이의 긴장은 남는다. 일본은 핵무장국인 중국의 위협을 빌미로 미국의 ‘핵우산’을 받아들이는 한편 당장이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까지 비핵지대로 묶는 동북아 비핵지대는 잠재적 핵보유국인 일본을 견제하는 한 방법이다.

둘째, 1992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문제 삼고 있지만 일본은 IAEA의 사찰을 받고 있다는 명분으로 이 시설들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핵무장에 대한 우려와 불신을 씻을 수 없으며 어떤 시점에서는 ‘일본발 핵위기’가 증폭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또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시스템 아래에 둘 필요가 있다.

셋째, 동북아 비핵지대론은 비핵 3개국 협력관계의 발전을 전제로 한다는 측면에서 동북아에서 절대적인 미국의 영향력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6자회담의 진전이 북미관계의 진전에 달려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서 미국이 가진 영향력은 막강하며 그 영향력은 한반도가 비핵화 되더라도 계속 유지될 것이다. 6자회담 미국 측 대표인 힐 차관보는 2005년 9월 미 평화연구소가 주최한 강연에서 “미국의 한반도 내 핵 반입은 한반도 비핵화의 내용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영향력을 비핵 3개국은 협력관계를 통해 상대화시킬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위 사진:지난해 10월 환경운동연합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출처; 환경운동연합>

아래로부터의 비핵지대 창설 : 비핵자치체

비핵지대를 설정하는 조약은 기본적으로 국가 간의 협상을 통해 이뤄진다. 국가 간 협상은 당사국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할 경우 모호하게 넘어가거나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종속될 위험이 크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통제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평화네트워크 이준규 정책실장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 비핵지대를 창설하는 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통로”로 비핵자치체 선언과 비핵법 제정운동을 소개했다.

비핵자치체 운동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자국 군사기지에 미국의 순항미사일을 배치하는 문제를 계기로 맨체스터시에서부터 시작되어 1982년에는 ‘비핵자치체회의’라는 전국적 조직이 결성되었다. 2001년 요크셔 남부 로잘람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에 반대하는 시의회 결의를 채택했고 다른 지자체에도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위해 영국의 군사기지를 이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결의를 채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에도 비핵자치체가 200여개 있지만 대부분 1980년대에 비핵선언을 했고 그 후 별다른 활동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비핵자치체는 2004년 현재 2천607개로 전체 지자체의 82%에 이를 정도의 거대한 규모이다. 1984년 히로시마현에서 시작된 운동은 비핵선언을 한 자치체들의 상설 협의체로 ‘일본 비핵선언 자치체 협의회’까지 낳았고 이들은 ‘2020년까지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 하겠다’는 목표의 긴급행동계획 ‘2020비전’에 합의하고 있다. 하지만 자치체 대부분은 비핵 3원칙의 준수를 언급하는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베시의 경험은 비핵자치체 운동에 커다란 의미를 던지고 있다.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일본 본토에 진주한 미군은 고베항과 고베를 미군기지로 사용했고 고베항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수행한 미군에 중요한 거점이었다. 이후 부분적인 철수와 기지반환을 시작했지만 고베항에는 여전히 미군 군함이 드나들고 있었다. 이에 고베항의 항만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고베 시민들이 미군기지 반환과 ‘평화롭고 평온한 고베’를 염원하는 캠페인을 전개했고 그 결과 채택된 것이 1975년의 고베 시의회의 비핵 결의이다. 시의회는 ‘핵무기의 반입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결의하고, 외국의 선박이 고베항에 입항할 때에는 핵무기를 탑재하고 있지 않다는 ‘비핵 증명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이 결의 이후 미국은 단 한 척의 함선도 입항시키지 않았고 입항타진도 하지 않았다.

핵에 기반한 동맹전략에 반기를 들다 : 뉴질랜드 비핵법

비핵자치체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의 형태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뉴질랜드의 비핵법은 법률로 비핵화를 강제하고 있다. 1984년 집권한 랑게(David Lange) 노동당 정부는 비핵 원칙을 선언하며 핵에 기반한 동맹전략을 공식적으로 거부했고 1985년 미국 군함 부캐넌의 기항을 거부한데 이어 1987년 4월 비핵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은 △핵폭발 장치와 생물 무기를 획득하거나 유치하는 것을 금지하고 △핵 추진 선박이 내수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며 △선박이나 비행기가 핵폭발 장치를 탑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뉴질랜드 수상이 판단해 허가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고 명시했다. 즉 뉴질랜드를 비핵지대로 유지할 책임을 수상에게 법적으로 지우고 있는 것이다. 비핵법은 핵보유 국가들로부터 오는 배나 비행기가 자국의 비핵법에 따르고 있는지를 독립적으로 결정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뉴질랜드 비핵법의 바탕에는 아래로부터의 평화운동이 있었다. 19세기말 반전운동으로 시작한 평화운동은 “우리는 나의 집과 차와 배가 비핵지대라는 것을 선언한다”는 캠페인을 벌였고 데본포트로부터 시작된 지방정부들의 비핵지대 선언은 전체 인구의 65%가 사는 105개 지역을 비핵지대로 만들었다.

물론 미국은 뉴질랜드 비핵법에 강하게 반발했다. 뉴질랜드와의 공동군사훈련을 중단했고 안보 관련 정보에 뉴질랜드가 접근하는 것을 불허했다. 미국 내부에서는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자는 논의도 일었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는 뉴질랜드의 정책이 다른 국가로 확산될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비핵법은 다른 국가로 ‘수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준규 정책실장은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작은 국가는 핵의 위협 속에서 강력한 국가와의 동맹을 통해 핵우산 하에서 국가 안보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인 관념을 깨뜨린 의미 있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비핵지대의 한계와 가능성

1970년 발표한 NPT는 핵무기 비확산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기존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 기득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미국 부시 정부는 2002년 핵태세검토보고서를 통해 비핵국가를 상대로 ‘핵 선제공격’까지도 감행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미국은 북과 이란 등 NPT에 가입한 후 탈퇴한 나라에 대해 제재하면서도 NPT가 핵보유국에 요구하는 ‘핵군축 협상’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 미국은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핵보유는 동맹관계를 통해 용인하고 있다.

비핵지대론은 기존 핵무기 보유국의 핵무기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며 NPT의 사찰시스템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는 ‘핵 없는 세계’라는 평화운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들은 NPT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지역의 비핵지대화를 지지하거나 추진하기도 했다. 한반도 비핵화도 남북한에 의한 핵무기 개발을 방지하려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의 의도가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즉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거나 개발하려는 의도를 지닌 이른바 ‘문턱국가(threshold states)’들을 겨냥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지대의 설정이 즉각적인 핵무기 철폐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핵자치체나 비핵법 제정운동 등 아래로부터 비핵지대를 만들어가는 운동이 확산되어 핵무기 없는 지역이 늘어난다면, 사실상 핵군축의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이 구상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의 비핵지대

비핵지대는 새로운 구상이 아니다. 1975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결의는 ‘비핵지대’를 “해당지대에 적용되는 핵무기의 전반적인 부재를 내용으로 하는 규정이 확립되어 있으며…그러한 규정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의 이행을 보장할 ‘국제적 검증 및 통제체제’가 설립”된 지대로 정의하고 있다. 이철기 교수에 따르면 이미 △중남미 핵무기금지조약(틀라텔로코조약) △남태평양 비핵지대조약(라로통가조약) △아프리카 비핵지대조약(펠린다바 조약) △동남아시아 비핵지대조약(방콕조약) 등 4개의 비핵지대조약이 있다. 이들 비핵지대조약은 규제 대상을 단지 핵무기로 하는지 모든 핵폭발장치를 포함하는지, 핵무기의 개념을 핵탄두만으로 보는지 미사일 같은 운반수단을 포함하는지 등 세부 내용은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당사국의 의무를 핵무기의 △비보유(non-possession) △비배치(non-stationing) △비사용(non-use) 및 비사용위협(non-threat of use)으로 두고 있다.

여기서 ‘비보유’란 역내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제조·생산·획득의 금지와 핵무기 보유를 위한 실험(test)의 금지를 내포한다. 따라서 비핵지대 안에 핵무기 보유국가가 있는 경우 핵무기의 포기를 조건으로 한다. 펠린다바조약의 성립도 남아프카공화국의 핵폭발장지 폐기와 NPT 가입으로 가능했다. ‘비배치’란 핵무기의 접수·비축·저장·설치·전개·수송 등의 금지를 포괄한다. 라로통가조약의 경우 남태평양에서의 프랑스 핵실험과 핵폐기물의 해상 덤핑(투기) 방지가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비사용 및 비사용위협’은 지대 밖 핵무기 보유 국가들에 적용되는 것으로 핵무기국가들이 비핵국가들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위협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하는 ‘소극적 안보보장’을 의미한다.

한편 비핵지대조약들은 이른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보장하고 있어, 이것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검증제도를 두고 있다. 조약들은 IAEA와 안전협정(safeguards agreement) 체결을 통해 이 기구의 사찰을 받는 것과 함께 자체적으로 설치된 상설기관에 의한 사찰을 받도록 하는 '이중통제체제'를 확립하고 있다. 또한 다른 당사국의 요청에 따라 현장사찰을 실시할 수 있는 ‘특별사찰’도 제도화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일본의 평화단체인 피스데포 우메바야시 히로미치 대표와 한국의 평화단체인 평화네트워크의 이준규 정책실장, 그리고 동국대 국제관계학 이철기 교수의 연구 성과를 참고했습니다.
인권오름 제 49 호 [기사입력] 2007년 04월 11일 0: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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