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2] ‘보호’라는 이름의 차별

비정규 노동법 시행의 의미와 파장

강성준
print
오는 7월 1일부터 이른바 ‘비정규 노동악법’, 즉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파견법)이 시행된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조건 향상과 비정규직 남용 억제, 사회양극화 문제 해결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펼쳐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두 법률이 설계하고 있는 ‘차별시정’의 구조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 이름과는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위 사진: 4월 30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 증언대회'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차별 비교할 대상이 사라진다

먼저, 차별 여부를 판단하려면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기간제법은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제8조 1항), 파견법은 ‘사용사업주의 사업 내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제21조 1항)로 하고 있다. 따라서 두 경우 모두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의 노동자가 없다면, 즉 비정규직으로만 채워져 있거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가 나눠져 있다면 차별 여부를 판단할 길이 없게 된다.

실제로 비정규 노동악법 시행을 앞두고 독립직군, 외주화, 도급화가 유행하는 것도 이런 식으로 비교 대상을 없애려는 시도에 속한다. 우리은행에서 시작되어 금융권 전체로 확산이 예상되는 ‘독립직군제’는 고용은 보장하되 비정규직 노동자만을 별도 직군으로 묶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차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가 ‘독립직군’으로 묶이게 되므로 비교 대상이 없어진다. 이런 점에 착안해 경총은 올해 초 회원사에 배포한 ‘비정규직 법률 및 인력관리 체크포인트’(아래 경총지침서)를 통해 ‘비교대상’을 없애기 위해 정규직·비정규직 업무를 나눌 것을 권하기도 했다. 비정규직의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법률이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고착화시키는 것이다. 경총지침서는 이와 함께 불법파견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하는 업무를 없애고, 외주와 도급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별시정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외주화’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흐름에 정부도 편승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통해 부가적인 ‘주변 업무’에는 외주화를 허용하고 기관의 목적과 관련된 ‘핵심 업무’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외주화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외주화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중 기관별로 확정될 것으로 알려진 이 기준에 따라 이제 공공부문에서도 다양한 방식의 외주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 서겠다”던 정부가 스스로 발의한 비정규 노동악법의 규제마저도 피해가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이다.

도급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만간 정부는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는 기준을 담은 노동부 고시를 바꿀 계획이다. 종전에는 인사노무관리상의 독립성 요건 3가지와 사업경영상의 독립성 요건 3가지를 따져 모두 갖춘 경우에만 도급으로 보았다면, 변경안은 각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해 파견적 요소가 상당히 발견되더라도 종합적으로는 적법도급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위장도급을 적법도급으로 둔갑시킴으로써 개악된 파견법마저도 피해갈 수 있게 된다. 설사 운이 나빠 불법파견으로 적발된다고 해도 파견법은 2년이 지나서야 고용의무를 부과하므로 그 전에 기간제로 전환하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불법파견에 따른 형사처벌은 벌금형이 고작인 것이 현실이므로 이런 경향은 가속화될 것이다.

차별시정 어렵게 만드는 차별시정 절차

다행히 비교 대상 노동자가 작업장 안에 있다 하더라도 넘을 산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비정규 노동악법은 차별시정 절차를 지방노동위원회(아래 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아래 중노위)의 차별시정위원회를 통하도록 하고 있는데, 차별시정 신청자는 차별적 처우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해야 한다. 따라서 기간이 경과되면 권리 구제를 신청할 권리가 소멸되어 신청을 하더라도 각하되는 것이다. 보통 자신이 차별적 대우를 받고 있음을 아는 것도 힘들지만 알게 된다 하더라도 이미 3개월이 넘었다면 차별시정 절차를 아예 이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노위와 중노위가 차별 사안에 대해 엄정하게 판단할지도 의문이다. 지난달 25일 민주노총은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5년 8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중노위에서 처리된 재심 심판 사건 559건 중 초심에서 노동자 승소 시 재심에서 유지되는 비율은 68%인 반면 패소 시 재심에서 유지되는 비율은 92%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한 2006년 한해동안 전체 노동위원회 사건 가운데 부당해고 인정비율은 38.8%, 부당노동행위 인정비율은 14.1%에 불과해 친자본적인 판정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별 사안의 경우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보다 사회적인 주목을 덜 받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인정비율 또한 낮을 것이 전망된다.

설령 노동위원회가 시정명령을 확정하더라도 해당 차별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벌칙이 부과되지 않는다. 대신 비정규 노동악법은 사용자가 확정된 시정명령을 정당한 이유 없이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동부장관이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1억원이라는 액수가 사용자에게 부담이 되어 보이지만 이는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의 최대 액수를 의미할 뿐이다. 또한 대규모 사업장의 사용자일수록 차별적인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데 드는 비용에 비해 과태료가 더 ‘싸게 먹힐’ 가능성이 높아 과태료 처분은 솜방망이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사용자가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하거나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가게 되면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에 이르는 5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긴 소송 기간 동안 생계 부담 등을 지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시정 절차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위 사진:5월 23일 열린 '여성비정규노동자 대정부 규탄대회 및 비정규 확산법 시행령 저지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석한 한 노동자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악마는 시행령에도…

기간제법은 “2년을 초과하여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제4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즉 2년 내에서는 기간제 사용을 사유제한 없이 완전히 자유화함으로써 이전에는 비정상적인 고용형태로 치부되던 기간제 고용을 노동법적 제도로 승인한 것이다. 게다가 시행령으로 예외를 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본법 시행에 맞춰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시행령은 박사학위 소지자나 전문자격자 등 ‘전문적 지식·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자활 노동자 등 ‘정부의 복지정책, 실업대책 등에 의하여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우’는 2년이 넘어도 기간제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했다.

파견법 시행령 또한 파견허용업무를 기존 26개 업무(138개 직종)에서 29개 업무(197개 직종)로 확대해 기존 정규직 중심 노동자들이 파견 노동자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었다. 특히 정부는 5월 17일 확정 발표한 시행령안에서 4월 19일 입법예고 당시와 비교해 △우편물집배원 △신문배달원 △물품배달원 등을 추가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고용 의무 또는 간주 기간이 2년으로 정해짐에 따라 기간제 2년에 이어 파견제(또는 위장도급) 2년으로, 그리고 다시 기간제 2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돌려 사용해도 아무런 규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없앰으로써 그 확산을 방지하겠다는 정부의 명분은, 실은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제 비정규직이 ‘예외적’인 고용이 아니라 정규직이 ‘예외적’인 고용형태가 됨에 따라 전체 노동자의 일상적 고용불안의 심화, 노동권의 약화와 노동조합의 무력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비정규 노동악법을 ‘비정규직 확산법’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적 계약의 원리에 우선하는 노동권

그동안 비정규직을 철폐하라는 요구에 대해 자본은 노무의 제공과 임금의 지급을 위한 사적 계약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며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대응해 왔다. 하지만 노동법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계약자유의 원칙을 수정하는 역사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은 계약자유의 원칙이 관철되면서 노동조건이 열악해지고 결국 노동력의 재생산마저 불가능해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까지 의문시됨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국가는 할 수 없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필요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법률로 보장했고 그 한도에서 계약자유의 원칙을 제한한 것이다. 국가의 개입은 자본에 우선하는 인간의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운동에 떠밀린 것이면서도 동시에 이를 제도화함으로써 길들이는 과정이기도 했다.

비정규 노동악법 또한 차별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국가가 개입하려 하지만 그 기본틀은 계약자유의 원칙 아래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 분할 구조를 영속화시키는 시도일 뿐이다. ‘차별시정’ 제도의 실효성은 의심스러운 반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여부를 비교할 수 있는 정규직은 점점 축소될 것이 예상된다. ‘차별시정’이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하향평준화를 통해 달성될 공산이 커지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해결 방향은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를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주기적인 고용불안을 가져오는 기간제 고용의 사유를 엄격히 한정하는 것과 함께 파견업체라는 중간 착취를 인정해 노동자의 저항권을 악화시키는 파견법을 폐지하는 것이 그것이다.
인권오름 제 57 호 [기사입력] 2007년 06월 06일 11:36:49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