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인권이야기] 거리 민주주의를 봉쇄하는 ‘차벽’,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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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이란 전경 버스를 잇달아 배치하여 만든 벽을 말한다. 경찰은 언제부턴가 '불법 폭력 시위‘를 막는다며 집회 시위 현장에 ‘닭장차’를 촘촘하게 배치하여 시위대의 도로 행진을 막거나 집회 장소를 봉쇄하는 물리적 방책으로 활용해왔다. 이제 집회 시위에서 경찰이 설치한 '차벽'을 보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차벽 위에서는 카메라와 캠코더를 든 경찰 대원들이 채증을 하며, 물대포가 설치되어 차벽에 접근하는 시위대에게는 안경이 깨질 정도로 강력한 수압의 물살이 퍼부어진다. 전의경으로 이루어진 경찰 병력은 차벽 앞이나 옆, 뒤에서 시위대가 접근하거나 옆으로 빠져나가려는 것을 방패를 휘둘러가며 막는다. 간혹 돌파하려는 시위대가 차벽 사이 공간으로 진입하려 하거나, 밧줄을 묶어 차벽을 치워내면 뒤에 있던 경찰 병력이 새까맣게 몰려나와 방패를 휘두르기도 한다.

위 사진:'준법'과 '질서'라는 이름의 차벽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차벽은 대략 다음의 두 가지 형태로 설치된다. 하나는 집회장을 둘러싸고 아주 작은 틈만을 열어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게 하는 형태다. 이런 형태는 서울 시청 광장이나 열린 시민 공원 등 대규모 광장 집회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도로 봉쇄이다. 시위대의 행진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할 때, 경찰은 주변 도로를 차벽으로 전면 봉쇄하고 자동차를 비롯 모든 사람의 통행을 제한한다. 지난 한미FTA 반대 집회들이 광화문 및 청운동 일대에서 벌어졌을 때, 경찰은 광화문 사거리, 광화문 앞, 경복궁 앞 등의 일대를 모두 차벽으로 봉쇄하여 지나다니는 자동차 하나 없는 거리를 만들곤 했다.

위 사진:거리를 전면 봉쇄한 차벽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이렇게 차벽이 설치되면 가장 먼저 제한되는 건 사람들의 '자유롭게 통행할 권리'이다. 시위대는 물론,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 그저 길을 지나가는 통행인들은 멀리 돌아가거나, 경찰이 길을 열어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이따금 왜 길을 막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경찰은 다른 곳으로 돌아가라는 대꾸를 하거나 아예 무시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마치 사람들의 ‘이동의 자유’는 경찰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얼마든지 제한할 수 있다는 투다.

부수적으로, 차벽은 교통 체증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1~2개 차로를 사용하는 시위대의 행진은 해당 구간에 일시적인 체증을 유발할 뿐이며, 이마저도 경찰이 사전 교통 통제를 통해 최소화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리고 그것이 사전 행진 신고를 받는 경찰의 의무이다). 그러나 일단 경찰이 시위대의 행진을 막겠다고 차벽으로 도로 및 일대 거리를 전면 봉쇄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 체증은 시위대의 행진으로 인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경찰과 주류 언론은 이에 대한 책임을 모두 시위대에게로만 돌린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차벽'은 집회 시위의 자유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집회가 차벽으로 고립되면, 바깥에서는 차벽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 바깥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경찰 버스들이 잔뜩 몰려 있으니 집회가 있겠거니 할 뿐, 누가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 얼마나 모였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집회 시위란,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의지를 사회에 널리 알려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의사 표현들이 차벽 안에 갇혀 집회 참가자들만의 것이 된다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무력화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차벽에 물리적으로 갇힌 집회와 시위는, 권력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으며, 울타리 안에서 저항적 성격을 잃어가게 된다. 물리적 고립은 심리적 위축감으로 이어지며, 경찰이 '오늘은 어디까지'라고 그어놓은 선을 넘기 힘들다는 심리적 패배감은 집회 시위의 생동감을 잃게 만든다. 권력과 경찰의 관리 통제 하에 들어간 집회 시위가, 과연 저항적이고 창조적인 성격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권력에 대해 저항할 민중들의 자유는 집회 시위 자유의 핵심이며, 이것이 경찰의 손아귀에 붙잡혀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선 집회통제법인 집시법을 개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궁극적으로는 제도가 아니라 실력으로 쟁취하는 것이라 할 때, 집회 시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획득하려면 경찰이 집회 시위를 관리/통제할 물리적 수단을 강화하도록 방치해둬서는 안된다. 물론 경찰이 집회를 통제하는 수단은 차벽만이 아니며, 경찰은 국가의 막강한 자원과 힘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통제 수단을 확보해가고 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 경찰 국가의 전방위적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는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넘어서야 한다는 절박함, 넘어서겠다는 대중의 의지다. 우리는 필요한 때엔 그것들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위 사진:시위 참가자들이 차벽 아래로 기어서 차벽을 넘어 섰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인권오름 제 61 호 [기사입력] 2007년 07월 04일 22: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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