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의 인권이야기] 기린의 목은 왜 길어졌을까

박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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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이나 오락성 짙은 ‘동물 농장’과 같은 가족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의 해설가가 동물의 생김새를 놓고 합목적적 해석을 늘어놓는다. 기린의 목은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따먹기 위해 길어진 것이라고. 어떤 생물종이 더 예쁘고 머리가 좋다는 식이다. 다른 종은 예쁘거나 머리가 좋기 싫었다는 걸까. 생각해보자.

아직 목이 길어지지 않은 기린의 조상은 왜 굳이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따먹으려 애를 써야 했을까. 다른 개체들은 다 입 높이의 나뭇잎을 편안하게 따먹는데 장차 기린으로 진화할 개체는 왜 남들이 먹으려 덤벼드는 나뭇잎을 외면한 것일까. 그 개체도 입 높이의 나뭇잎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나뭇잎을 먹으려고 많은 개체들이 다퉜을 테고, 기린의 조상 개체는 경쟁이 없는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먹기로 양보한 것이다.

위 사진:출처: animalpark.pe.kr
다행히 높은 나뭇잎은 많이 남았고, 기린 조상 개체들 중 목이 긴 개체가 그렇지 못한 개체에 비해 많이 먹을 테니 생존과 가족 부양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천적이 노리는 환경에서 살아남은 개체들은 대체적으로 목이 길었고, 그들끼리 짝을 짓자 새끼들도 목이 길었다. 그런 환경 조건은 기린이 진화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결과적으로 기린의 목은 길어졌다. 기린의 목은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따먹으려 합목적적으로 길어진 건 아니다.

생태계에 분포하는 생물이 다양해진 결과에 대한 합목적적 해석은 대부분 잘못이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해석해야 옳다. 사람의 손이 물건을 집는데 유리하지만, 물건을 집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그리 진화되지 않았다. 물건을 집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적응된 동물은 골치 아픈 도구를 다뤄야 하는 손가락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제외한 자연계의 모든 동물은 자칫 감정 상하는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같은 환경 조건에 공존하다 경쟁을 피해 환경 조건을 달리하면서 다양한 생물로 진화하는 현상을 ‘적응방산’이라고 학자들은 정의한다. 대부분의 적응방산은 우연에 의한다. 의도적으로 물건을 집고, 말하려 노력하고,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따먹은 건 아니다. 우연히 목이 길어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입에 쉽게 가져간 기린 조상 개체가 그렇지 못한 개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응력이 높았던 것은 필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의 전두엽이 커진 것도 마찬가지다. 자연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 생태계의 다른 생물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게 된 것도 따지자면 다분히 우연이다.

새로운 환경 조건에 안정적으로 적응방산된 생물종은 생물종이 다양한 생태계에서 안정되어 공존한다. 같은 종 내에 개성이 다양한 개체들과 어울리고, 같은 생태계 내의 다채로운 생물종들과 때로는 경쟁하고 양보하고 협동한다. 천적, 숙주, 기생, 공생, 편리공생이라는 사람들의 구별과 관계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생김새와 습성에 충실하며 어우러진다.

새로운 환경으로 활발하게 이동한 포유류나 조류나 곤충류는 종에 따라 생김새가 무척 다양하지만 한 지역에서 그리 멀리 이동하지 않는 양서류나 연체동물은 대개 비슷하다. 생긴 모습이 비슷하다고 모두 같은 종은 아니다. 전문학자만이 구별하는 우리나라의 청개구리 두 종은 나누어진 지 3백만 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300백만 년 전 겨우 서기 시작한 사람의 조상은 지금의 모습과 완연히 다른데 울음소리와 번식행동이 다른 우리나라의 청개구리 두 종은 아직도 거의 비슷하다. 사는 환경의 차이 정도가 빚은 결과다.

비록 다른 종류라 해도 사는 환경이 비슷하면 생김새도 비슷해진다. 돌고래의 꼬리지느러미는 상어와 비슷하다. 상사기관이다. 박쥐의 날개는 나비와 흡사하다. 어두워질 무렵 날아다니는 박쥐는 나비를 연상하게 한다. 박쥐의 날개 뼈는 사람의 손가락과 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먼 조상이 같다는 걸 설명해준다. 상동기관이다. 사는 환경이 달라지면서 생김새가 결과적으로 많이 달라진 것이다.

어떤 생김새가 더 좋을까. 그런 질문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는 어떤 생김새가 유리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사람의 손은 사람의 환경에서, 박쥐의 날개는 박쥐의 환경에서 유리하다. 잘 생기고 못 생겼다는 해석, 똑똑하거나 미련하다는 구별은 모두 사람의 편견이다. 생태계에 어우러지는 다양한 생물들은 사람의 몰이해와 관계없이 자신의 환경에서 적응돼 잘 살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인종이 더 진화되었을까. 그런 질문도 성립되지 않는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가장 진화되었으므로. 어떤 민족이 더 똑똑할까. 어떤 문화가 더 빼어날까. 어떤 제도가 더 뛰어날까. 그런 질문에 대답할 답은 없다. 다만 자신의 문화와 개성과 정체성을 잃고 남을 좇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아류에 불과한 것은 분명하다. 남의 환경 조건이므로.

한미FTA는 우리를 성공하게 할 거라고? 역사와 문화와 생태조건이 다른 우리가 미국화 되는 것을 성공으로 치부할 수 없을 터. 다시 말해 자본의 이해에 충실한 미국의 환경 조건으로 우리를 억지로 편입시키려 할 경우, 미국식 생활 방식에 길이 든 이의 시각으로 성공이라 얼버무릴 수 있겠지만 터무니없다.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미국식으로 표준화하는 한미FTA. 투자자의 이윤을 위해 획일화된 기준으로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미국식 자본주의는 우리 내부를 교란하는 외부 충격일 뿐이다.

바닷가에 사는 이의 삶은 평야나 산골에 사는 이와 다르다. 옷도 먹을거리도 생각도 다르다. 어떤 삶이 우월하다 할 수 없다. 그들의 삶은 역사 이래 그들의 환경에 가장 어울려왔다. 바로 개성이 어우러진 문화요, 그런 문화에는 우열이 없다. 문화를 획일화하면 위험하다. 변화된 환경을 극복할 힘을 갖지 못한다. 극도로 품종개량된 닭이 조류독감에 몰살하듯, 유전자가 단순한 고추가 역병에 속수무책이듯, 표준을 강요하는 삶은 내일을 위협한다. 광고와 신용카드에 길든 우리에게 절실한 덕목은 이웃의 개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태적 상상력이다.

한미FTA를 성사시킨 이는 생태적 상상력을 이해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 그가 숭상하는 환경 조건은 미국화, 곧 식민지화다.
덧붙이는 글
◎ 박병상 님은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62 호 [기사입력] 2007년 07월 11일 1: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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