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의 인권이야기] 달빛 아래 여성들 좋지 아니한가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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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밤늦게 다니지 마라” 통화를 끝내면서 엄마가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흉흉한 세상이니 밤길 조심하라는 말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다. 게다가 부모는 육십 먹은 자식에게도 차조심 하라고 한다지 않는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말은 유독 딸자식인 나에게만 각별한(?) 말이다. 예전에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에 차편이 없어 밤차를 타고 간다고 하면 그냥 다음날 새벽에 오라던 엄마지만 오빠의 경우는 늦은 밤이건 이른 새벽이건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남자인 오빠와 달리 나는 더욱 보호받아야 할 존재인 것이다. 더구나 나는 성폭력을 당할 수 있는 여성이 아닌가.

올해로 밤길 되찾기, ‘달빛시위’가 4회를 맞이했다. ‘달빛시위’는 매년 7월 여성주간에 열리는 행사로, 성폭력의 문제를 피해자 여성의 문제로 규정하고 여성의 시공간을 제약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문화 축제이다. 그런데 올해 달빛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여 단체들 간에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 밤길 되찾기 홍보물인 포스터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가 화근이었던 것. 야한 옷차림과 정숙치 못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며 묘한 눈웃음을 발사하고 있는 여성 캐릭터가 ‘달빛시위’ 홍보용으로는 부적합하며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위 사진:달빛시위 올해 포스터


여성들이 밤길을 다닐 권리는 옹호하지만 불량한 옷차림과 태도로 혼자 있는 여성 이미지는 탐탁지 않은 것은 왜일까. 밤길에 돌아다녀도 되는 여성의 이미지는 누가 보아도 단정해서 성폭력 피해를 전혀 불러일으키지 않을 법한 여성들만의 권리인가. 여성들이 주장하는 밤길의 권리는 다만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 안전할 권리만을 의미하는 것인가.

사실 피해 여성이 정숙하지 않은 여성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는 것은 가해자들의 오래된 수법이다. 그리고 그 여성의 ‘정숙’ 여부는 피해 여성의 옷차림, 여성이 피해 입을 당시의 시간과 공간, 여성의 말과 행동, 심지어는 눈빛과 표정까지 모두 남성의 작위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밤길은 괜찮지만 여성들의 어떤 행실을 문제 삼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달빛시위’는 성폭력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일상화된 공포로 여성을 통제하고자 하는 가부장성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다. ‘밤길’은 말 그대로 밤길이 아니라 여성들을 통제해온 여성 에 대한 억압 기제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의미가 사유되지 않은 채, 남성과 동등하게 여성에게 주어져야 할 평등한 권리로서의 ‘밤길 되찾기’ 구호는 공허하다. 아니 너무 평화롭다.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규범적 여성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불편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면, 성폭력의 문제는 여전히 나와는 무관한 문제일 뿐이다. 피해자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당신은 피해를 입을만한 여성이 아니었다는 언설이 되지 않으려면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폭력의 피해가 어떻게 발생하고 그것이 여성에게 어떻게 의미화 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7월 6일 여성들의 신나는 행진과 구호가 거리를 메우던 날, 경찰청에서는 ‘성범죄가 증가하는 여름철을 맞아’ 아연실색할 만한 지침을 내렸다. ‘으슥한 밤길은 위험’, ‘지나친 노출의상은 성범죄의 표적’, ‘과음은 사건 사고의 원인’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지침은 철저히 피해자 유발론에 근거하여 작성된 것이었다. 여성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면서도 한 번도 감소한 적 없는 성폭력 범죄는 이렇게 여성의 자유를 볼모로 지속된다. 우리는 그것들을 마음껏 조롱하며 한편으로는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며 우리들의 신나는 축제를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했다.

여성들이 밤길 되찾기를 외치는 또 다른 한편에는 밤길은 위험하다고 여성들에게 경고하는 지침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밤길은 어떤 의미냐고. 포스터의 그녀처럼, 밤길에 혼자서 풀어져 있는 옷차림과 자세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은 위험을 예고하는 존재냐고. 경찰청의 성폭력 예방지침과 당신의 성폭력에 대한 관념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존재하느냐고.
덧붙이는 글
◎ 자주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68 호 [기사입력] 2007년 08월 22일 23: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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