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류한승의 인권이야기] 김승연 하중근 끝나지 않았다

이류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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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근. 44세. 호미곶의 가난한 어촌마을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97년부터 포스코 공장에서 10년 가까이 건설노동자로 일했지만 한번도 자기 집을 가져보지 못한 채 포항의 한 여관에서 월셋방살이를 했다. 한해에 6조원 가까운 수익을 올리는 회사의 노동조건은 70년대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단계하도급의 먹이사슬에서 하청업체들은 발뺌했고 실제로도 권한이 없었다. 포스코와 건설노동자들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포스코가 소집한 파업대책회의에는 국회의원과 지방정치인 지자체장, 언론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파업파괴공작은 치밀했다. 7월13일. 불법대체인력 투입에 항의한 노동자들의 농성은 곧바로 고립되었다. 16일. 공권력투입에 항의하며 합법적이고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집회는 경찰의 난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푸른 제복의 살인자들이 휘두른 방패와 곤봉 아래에서, 하중근 조합원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결국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건설노동자들을 폭도로 몰아붙이던 언론은 경찰폭력에 희생된 그의 죽음을 일제히 외면했다.

위 사진:하중근 씨의 영정 [출처] 포항건설노조


김승연. 55세. 재계순위 9위의 한화그룹 재벌2세로 태어나서 스물아홉살에 총수로 취임한 이래 27년동안 그룹을 ‘통치’해 왔다. 10대 재벌총수인 그가 사는 가회동 집의 공시가격은 2007년 기준 49억원, 포브스(Forbes) 지는 그의 재산을 8억달러로 추정했다.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총수 자녀에게 헐값에 넘기고 여기서 얻은 막대한 차익을 활용해 경영권 지분을 확보한다. 한국 재벌이 총수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보편적인 수법이다. 김승연 회장은 같은 수법으로 세 아들에게 미성년일 때부터 수백억원의 재산을 물려줄 만큼 자식사랑이 각별했다. 둘째아들이 북창동에서 깡패들에게 폭행당하자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폭행을 했고 필사적인 로비와 경찰의 은폐·축소에도 불구하고 구속되었다. 한 외신기자는 “회사 임원이건 노조 간부건 상관없이 폭력적인 징벌을 가할 수”있는 “세습귀족 스타일”의 재벌회장들이 저지른 “거칠고 난잡한 한국식 폭력사건”이라고 묘사했다. 9월11일 재판부는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수천억의 배임 횡령 혐의로 구속된 현대그룹 회장 정몽구와 김승연이 차례로 풀려나는 동안 감옥은 노동자들로 채워져 있다. 노무현 정권은 지금까지 938명의 노동자를 구속하는 ‘업적’을 세웠다. 지난해 구속된 271명 중에 비정규직이 200명이었고 포항건설노조에서만 58명이 구속되고 27명에게 중형이 선고되었다.

위 사진:지난해 8월 16일 서울역에서 열린 '하중근 사망 책임자 처벌 및 포항파업 해결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한 포항지역건설노조 조합원 천여명이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공권력에 살해된 하중근의 죽음은 언론의 외면 속에 잊혀 갔고 8월1일 그의 1주기는 감옥에 갇힌 동료들의 단식으로 기억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김승연의 구속과 집행유예는 언론의 조명 속에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름없는 건설노동자 하중근보다 재계순위 9위의 재벌회장 김승연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마땅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김승연의 구속은 통치기구들의 자율화, 합리화를 과시하는 드라마틱하지만 내용없는 쇼에 불과했다. 반면에 하중근의 죽음은 이윤과 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사상최대의 순이익을 올리며 한국사회의 지배권을 확립해가고 있는 거대재벌들은 바로 비정규직에 대한 이중삼중의 착취를 통해 지탱되고 있다는 것, 그에 대한 저항은 피를 부른다는 사실이 그를 통해 밝혀졌다. 그래서 그 죽음은 깊이 묻혀야 했고 50이 넘은 늙은 ‘노가다’들의 처절한 투쟁은 철저히 분쇄되어야 했다. 재벌 총수도 구속될 수 있는 체제의 ‘합리성’은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체제의 ‘폭력’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야만스럽고 가혹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사적 폭력을 행사한 김승연의 구속은 체제의 안정성에 어떠한 흠집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불법 다단계하도급 아래에서 야만적인 무권리 상태를 감내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저항은 곧바로 지배자들의 안녕과 평화를 뒤흔든다. 그리고 그들의 평화가 계속되는 한 노동자들의 죽음도 끊이지 않는다. 1년째 해결되지 않은 하중근의 핏값을 받아내지 못하는 한 우리는 거대 기업들이 군림하는 왕국에서 노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김승연의 집행유예, 하중근의 죽음, 그리고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류한승 님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편집부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71 호 [기사입력] 2007년 09월 12일 11: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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