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2] 입 닫고 표만 찍으라는 공직선거법

인터넷에 표현의 자유는 없다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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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 돌아왔다. 두 달 뒤에는 대선이, 여섯 달 뒤에는 총선이 있다. 대의민주주의제도에서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한다. 정치적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공직자를 선출함에 있어서 유권자들은 후보들에 대한 정보에 쉽게 접근하여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로이 후보들의 공약과 후보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4년 또는 5년 동안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을 운영할 대표를 선출하는 일인데, 활발하게 선거에 참여하고 토론하고, 비판하는 일이 가능해야 한다. 토론과 비판의 자유는 참정권의 주요 요소다.

선거에 대한 의견 표현을 봉쇄한 공직선거법 93조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시기에는 전체 사회가 들썩거린다.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향후 몇 년간의 국정운영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의사를 표현하게 되고, 그런 이유로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고도 한다. 그런데 올해 대선이나 내년 총선에 적용되는 공직선거법 제93조에 따르면, 이와 같은 토론과 비판의 자유는 거의 불가능하다.

“누구든지 선거일전 180일(보궐선거 등에 있어서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창당준비위원회와 정당의 정강·정책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또는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

탈법적인 방법에 의해서 선거에 개입하여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방지하겠다는 의도에서 개정된 공직선거법의 위 조항에 따르면, 선거일 180일 전부터 유권자들은 후보들에 대한 어떤 지지와 비판도 불가능하게 된다. 입을 닥치고, 조용히 후보들이나 정당들이 떠드는 것을 듣고 심사숙고하고 있다가 투표장에 가서 투표나 하라는 것이다.

위 사진:2006년 중앙선관위 주최 패러디포스터 UCC 공모 입선작 가운데 하나. 선거시기 선관위에서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는 투표 독려 운동 뿐?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홍보광장(www.necpr.go.kr)


더욱이 2002년 대선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표현의 공간인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는 더욱 엄격하게 제한된다. 인터넷에서 특정후보나 정당을 당선시키거나 낙선시키기 위해서 선거운동용 글을 작성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인터넷에서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는 사례가 없는지를 찾기 위해서 선관위는 330명의 감시요원을 상시적으로 동원한다. 이들이 검색엔진을 돌리면 미니 홈피나 블로그에 써놓은 아주 개인적인 글까지도 모두 검색에 걸린다. 어느 간 큰 사람이 이런 처벌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인터넷 상에서 선거운동용 글을 쓸 수 있을까?

UCC를 차단하라

중앙선관위는 이 법조항으로도 안심할 수 없어서인지 ‘선거 UCC 운용기준’까지 마련하여 철저하게 인터넷 공간을 침묵의 바다로 만들어 놓고 있다. 올 대선에서 최대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 예상되는 ‘인터넷 UCC’(전통적인 매체 생산자가 아니라 인터넷 사용자가 만든 글·사진·동영상 등)를 제어하기 위한 그 핵심내용은 “유권자는 선거에 임박해서 딱 23일만 후보에 대한 지지,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있고, 선거운동 기간 외에 올린 UCC에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없어야 하며, 또, 네티즌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이용하고 있는 댓글, 퍼나르기, 다운받기, RSS, 트랙백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가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제재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성인들은 법정선거운동기간인 11월 18일부터 12월 18일까지만 선거 UCC를 제작, 배포할 수 있다. 19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하면 불법이다. 그리고 UCC에 특정정당이나 후보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포함된 UCC는 불법이다. 그런 의도가 없이 아주 단순한 의사표시여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의사표시도 인터넷에 반복해서 유포하면 그것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있으므로 처벌된다. UCC에 사실을 기록하였다고 해도 내용이 공격적이거나 악의적이면 후보자 비방 게시물로 불법에 해당한다. 따라서 선거 시기에 UCC를 활용하여 선거운동을 하려고 하면 이와 같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만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 9월 초에는 누리꾼 192명이 공직선거법 93조와 선관위의 UCC 운용기준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위 사진:공직선거법 헌법소원 청구인단 모집 홈페이지(freeucc.jinbo.net)


이미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고 있고, 지난 7월 26일부터는 개악된 정보통신망법이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국회 본회의에는 개악된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이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인터넷은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다. 실시간으로 감시를 받아야 하고, 실명 인증을 받지 않고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 공간이 인터넷이다. 그리고 포털사이트나 미니홈피, 블로그 등에 올린 글들 중에서 정치인들이 보기에 명예훼손이라고 생각되는 글이나 표현이 있으면 삭제 요청을 하고, 그것만으로 선관위는 그런 요청을 분쟁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삭제하게 된다. 사법적인 판단도 받지 않고 이런 행정적인 판단과 행위만으로 표현의 자유가 ‘삭제’될 수 있는 참담한 상황이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치적 자유는 어디로

인터넷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정부의 통계를 통해서 보면, 3천 4백만 명의 국민이 하루 2시간 이상 인터넷을 이용한다. 블로그를 가진 사람은 1천 3백만 명이다. 국민의 48%는 뉴스를 인터넷으로 접한다. TV나 신문이 밀려났다. UCC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적극적인 인터넷 이용자는 전체 이용자의 절반이 넘는다.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는 미국이나 유럽의 어떤 나라들보다도 적극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터넷이 선거운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간이 된다.

그것을 알기 때문일까? 정치권에서는 보다 철저하게 인터넷 공간을 통제하려고만 한다. 한나라당은 지금의 공직선거법보다도 더 철저하게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을 통제하라는 주문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만들어 국회에 발의해 놓고 있다. 이미 헌법재판소나 국가인권위원회가 현행 선거법이 위헌적인 요소가 있으므로 개정하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서는 국회가 침묵하고 있다. 철저하게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상태에서 진행되는 선거, 그런 침묵의 선거를 통해서 당선되는 국민의 대표들, 민주주의는 억압당하고 있다.

한국에서 선거는 이제 요식적인 표를 찍는 행위로 국한된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끊임없이 침묵할 것을 강요하는 공직선거법,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유권자들은 계속 침묵하고 있어야 할까? 우리의 빼앗긴 정치적 자유를 되찾기 위해 인터넷 공간에서 불복종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스럽다.
인권오름 제 73 호 [기사입력] 2007년 10월 03일 10: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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