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없어도 산다

[기획] 선거 놀음에 파묻힌 인권 법안 (15) 사형제 폐지안

김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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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계의 지도자들과 시민 · 인권 단체들의 이름으로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이 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비롯한 종교계의 대표들과 워릭 모리스 주한 영국대사,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등 각계의 인사들이 모여 한목소리로 2007년 12월 30일 한국이 사실상 사형폐지국가가 되는 것을 축하했다. 언론은 일제히 한국이 사형폐지국가가 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했고, 법무부 홈페이지에서는 사형존폐의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사형폐지 운동을 함께 해 온 활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사형제도가 폐지된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위 사진:지난 10월 10일 열린 사형폐지국가 선포식


그러나, 입법에 의해 이 제도가 한국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아직도 먼일로 보인다. 15대와 16대 국회에 이어, 17대 국회에도 발의되어 있는 ‘사형폐지에관한특별법안’은 무려 10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전체 국회의원 수의 과반수가 넘는 175명이 서명한 이 법안은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2006년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공청회를 열기도 했지만, 공청회 이후에 단 한번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는 이 법안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국민의 의사 따위는 무시해 버리기가 부지기수인 국회에서 국민을 존중한다는 핑계로 자신들의 직무유기를 합리화 시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형제도는 인간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국가가 직접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형벌이며, 국제사회의 인권규범이 금지하고 있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제도이다. 특히 우리 현대사에서는 독재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들을 제거하거나,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사형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수없이 많이 있었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재심 무죄 판결을 비롯하여, 이제야 그 진실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억울하게 사형집행을 당한 이들의 피해를 복구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범죄 억지력’이라는 것은 이미 1988년 유엔이 ‘사형제도와 살인율과의 관계 연구’(2002년 업데이트)를 통해 “사형제도의 존치 여부가 살인범죄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사형은 현대 형벌의 기능이 지니고 있는 ‘교화’의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또, 범죄발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회의 불완전한 요소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전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만 책임지우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위일 뿐이다.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형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근거 없는 논리이다. 지난 2005년 어머니와 부인, 3대독자 외아들 등 일가족 3명을 연쇄살인범 유 아무개 씨에 의해 잃은 고정원 선생은 그의 죽음을 막아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고 선생은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지나 유 씨를 용서하고 탄원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마음에 평온을 얻었으며 저주하고 미워하던 시기보다 훨씬 행복해졌다고 밝혔다.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덜어지거나 피해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정신적 · 제도적 지원을 통해 그들을 안정시켜 사회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이를 위해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전국에 설립되었고 시민사회에서도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걸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판의 가능성과 더불어 형벌제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사형제도와 그 집행은 오히려 더욱 폭력적인 사회를 만들 뿐이다.

1997년 12월 30일부터 2007년 12월 30일까지 사형집행 없는 10년 동안, 이 반문명적이고 반인권 · 반생명적인 제도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시민 · 인권 단체들은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국민들과 함께 이야기 해 왔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 제도의 잔혹함을 세상에 알려왔다. 국제앰네스티, 세계사형폐지운동협회 등에서 한국의 사형폐지를 지원하기 위해 다각도의 활동을 하고 있고, 법무부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설문조사에서도 국민들은 사형제도 폐지에 월등히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한국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며,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이다. 유엔은 이미 ‘전 세계 국가의 사형제도 폐지’를 천명했고 이를 위한 결의안과 선택의정서도 채택된 지 벌써 오래다. 지금 회기 중인 62차 유엔 총회에서 논의 되고 있는 ‘사형제도폐지 글로벌모라토리엄 결의안’ 역시 그 통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에 걸맞게 우리의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한국의 사형폐지는 아시아 많은 국가들의 사형폐지 운동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다.

17대 국회도 이제 그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이번 국회에서 사형폐지에관한특별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18대 국회에서도 똑같은 법안이 4번째로 발의될 것이다. 국민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자는 똑같은 법안이 십수 년에 걸쳐 발의되고 폐기되기를 반복하는 부끄러운 상황들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17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사형제도를 입법을 통해 폐지하고 2008년 부임할 대통령은 사형제도가 없는 한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선거 득표율을 생각하는 만큼 국민의 생명을 생각한다면 여야가 힘을 합쳐 사형제도를 없애야 할 것이다. 2007년 12월 30일 한국은 사형폐지국이 된다.
덧붙이는 글
◎ 김덕진 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77 호 [기사입력] 2007년 10월 31일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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