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5가지 은유의 비밀’을 풀어봐

소수자를 가두는 편견과 만나는 시간

김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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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권리! 군더더기 없는 이 짧은 한 마디로 인권을 정의내릴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찜찜하다. 왠지 공허하다. 현실에서는 인권이 보편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곳을 찾기가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 아닐까? 이처럼 인권이 공허한 외침일 뿐인 현실에서, 인권교육은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삶 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날개 달기 - 은유를 찾아 갸웃갸웃

‘5가지 은유의 비밀’은 현실에서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편견과 오해의 벽을 짚어보는 인권교육 프로그램이다. 꿈틀이의 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활동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 아무래도 중학생 이상은 되어야 순조롭게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

지난 4월과 5월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와 함께한 인권교육워크숍에서, 그리고 서울과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사 교육에 초대받은 자리에서 ‘5가지 은유의 비밀’을 함께 나누어 보았다.

먼저 꿈틀이들에게 장애인, 비정규직, 동성애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등 소수자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각각 나눠주고 다른 이들이 모르게 몰래 펴보라고 하니 큰 비밀이라도 가진 듯 신바람이 난다. 그런 다음 5개의 빈 칸이 그려진 활동지에 자기 쪽지에 적힌 사람을 묘사할 수 있는 ‘은유’를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보라고 했다. 은유라는 형식이 못내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평소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람’에 대하여 표현해야 해서일까? 다들 아까와는 달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더불어 날갯짓 1 - 나는 누구일까 맞춰봐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사람까지 기다렸다 5가지 은유의 비밀을 함께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기가 표현한 은유를 소개한 뒤, ‘나는 누구일까요’ 질문을 던져본다.



으음... 이 사람은 누구지? 지켜보는 꿈틀이들의 고개가 갸우뚱, 갸우뚱거린다.
“동성애자?” 누군가 먼저 말문을 연다.
“왜?”
“장롱을 보니까 커밍아웃이 생각났어. 커밍아웃(coming out of the closet)이 원래 벽장 속에 숨어있던 동성애자들이 당당하게 나온다는 말이라며?”
“그럼 90°는 뭐야? 속옷은?”
“글쎄….”
당사자를 빼고 모두들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지만 비밀의 열쇠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이제 어떤 의미에서 그런 은유를 사용했는지 당사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했다. 이내 질문 보따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장롱이란 무겁다는 뜻이야?”
“글쎄…. 장롱은 집안 안방 가장 안쪽 깊숙이 자리 잡고 있잖아. 이사 가기 전까지는 그 자리에 붙박이로 있어. 그렇게 나는 잘 움직이질 않아.”

“근심주머니는 모두가 너를 걱정스럽게 본다는 뜻이야?”
“맞아. 난 온 집안의 근심거리야.”

“속옷은 부끄럽다는 뜻인가?”
“그래. 집에 손님이 오면 화들짝 놀라 빨랫줄에 널어놨던 속옷을 빨랑 감추잖아. 그렇게 난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받아.”

얘기가 이쯤 되자 꿈틀이 하나가 “장애인이야. 야광불은 눈에 잘 띈다는 의미고…”라고 외친다. “아~ 그렇구나. 근데 90°는 뭐지?” “응. 사람들이 나랑 얘기할 때 나랑 눈높이를 맞춰주질 않아. 그래서 비장애인과 얘기할 때는 고개를 뒤로 90°만큼 젖혀야 되거든.” “아, 그럼 넌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이구나.” “맞아 맞아.”

이야기가 끝나자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풍부한 은유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5칸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꿈틀이나 프로그램을 잘못 이해해 다른 내용을 채운 꿈틀이들은 자기가 만든 활동지가 부족해 보였는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위 사진:꿈틀이들이 풀어낸 다양한 은유들. 5가지 은유의 비밀을 함께 풀어볼까요?


이젠 다른 꿈틀이들의 차례. 한 꿈틀이는 학생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편견을 ‘수녀.신부/ 자판기/ 마네킹/ 척척박사/ 군인’으로 표현했다. 무성(無性)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수녀.신부,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누르기만 하면 뱉어내는 자판기, 누군가의 조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마네킹, 온갖 과목을 모두 섭렵해야 하는 척척박사, 그리고 엄격한 규율에 따라야 하는 군인의 모습이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학생의 현실을 쏙 빼닮고 있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꿈틀이는 이주노동자를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반지하’의 공장에서 가족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이로 묘사했다. 때로는 ‘테러리스트’로 취급당하고, 일을 하다가 ‘멍청이, 개새끼’라는 욕을 들어도 참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하나하나 풀려 나올 때마다 모두들 마음이 숙연해졌다.

돌아가며 비밀을 모두 풀어보고 나니 한 꿈틀이가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그동안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잘 떠오르질 않았어. 그만큼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


더불어 날갯짓 2 - ‘우리’ 안에서 마주친 편견들

소수자에 대한 은유가 소개되는 동안, 꿈틀이들의 오가는 말 속에도 소수자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오해들이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HIV 감염인 쪽지를 받은 한 꿈틀이는 ‘잘못된 만남’과 ‘아프리카’를 떠올렸다. 잘못된 만남이란 동성애를 일컫는 것.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만남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편견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경우였다. ‘아프리카’라는 은유에 다른 꿈틀이가 맞장구를 친다. 텔레비전을 봤더니 아프리카의 전통 결혼제도 때문에 에이즈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면서…. 언뜻 들으면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일부를 전체로 일반화시키고 정작 놓쳐서는 안될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 ‘편견과 오해의 단단한 벽 속에 갇힌 말’이었다. 5가지 은유 속에도 감염‘인’은 없고 다만 ‘HIV 감염’과 ‘에이즈’에 대한 것만 들어 있다. 사람은 없고 질병만, 질병에 대한 편경만 남은 셈이었다.

하지만 꿈틀이들의 이야기에 ‘그건 아니에요.’, ‘다시 생각해봐요!’라고 단박에 반박을 할 수는 없는 일. 하고 싶은 말은 넘치지만 꾸욱 눌러 담고, 꿈틀이들에게 질문이나 정보를 던져 본다. “정말 그럴까요?”, “이런 얘기도 있어요”, “이런 자료를 좀 찾아보면 어떨까요?”라며 기존의 자기 생각에 ‘왜’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한다.

너무나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단단한 사고의 벽이 내 안에 있음을 아는 것. 그 사고의 벽을, 오고가는 이야기 속에서 무르게 하고 깨는 것. 여기서부터 꿈틀이와 돋움 모두의 인권감수성이 한 뼘 크는 게 아닐까 싶다.


마음을 맞대어 - ‘비밀’을 발견하는 시간

‘5가지 은유의 비밀’을 풀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차별의 공통점이 드러나게 된다. 주부, 학생, 동성애자, HIV 감염인 등 소수자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다를 수 있어도 이들이 열등한 존재나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거북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점, 권력을 가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낙인찍히고 삶의 결정권을 빼앗긴 존재라는 점 등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어쩜 ‘5가지 은유’의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아하~ ‘차이에 대한 인위적 위계’가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공감하고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당연히’라는 인권의 원칙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려면 소수자들의 입장에 서서 세상과 관계를 바라보아야 함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5가지 은유의 비밀’이 열어준 시간이다.


<용어 소개> '꿈틀이'와 '돋움'이란?

* 꿈틀이 - 인권교육을 통해, 내 안에 잠자고 있는 힘을 꿈틀꿈틀 깨우며 나를 내 삶의 중심에 세우려는 이. <인권오름>은 학생, 학습자, 참가자라는 말을 대신해 ‘꿈틀이’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

** 돋움 - 인권교육을 통해, 꿈틀이가 자기 삶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북돋우는 이. <인권오름>은 교사, 교육자, 진행자 등의 말을 대신해 ‘돋움’이라는 말을 쓰기로 한다.
인권오름 제 6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31일 3: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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