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희의 인권이야기] 고흐는 자신의 전시에 초대될 수 있었을까?

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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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가물하지만 아마도 고흐를 만난 것은 중학교 미술교과서였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공공공간이 별로 없어 일정한 지식 공유의 장은 책과 학교가 유일했다. 고흐에 대한 첫 감응이 어땠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정신적 발작과 창작을 반복하다 귀까지 잘랐고 결국 자살한 어두운 생애와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을 함께 대면했으니 아마도 그에 대한 인상은 제법 ‘셌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흐와 만나지 않았을까? 아무튼 고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꼽히며 몇백억 원에 팔리는 최고가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의 작품이 서울에 왔다. 그것도 67점이나. 서울시립미술관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개막사를 시작으로 11월 24일부터 ‘반 고흐 전’을 개막했다. 포스코, GS, 하나은행 등 20여개 기업의 후원과 협찬을 받으며 진행되는 이 전시는 그림에 대한 전시보험가액만 1조 4000억 원(문화예술인들에게 지원되는 2008년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규모가 대략 800억 원 정도라는 걸 환기하면 새삼 놀라게 된다)에 달하는 아시아지역 최초, 최대 규모의 반 고흐 전시회이다. 국내외 문화예술계 및 사회 인사 5백여 명이 참석했다는 개막일부터 현재까지의 관람객 규모나 언론의 조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메가톤급이라 할 수 있다.

위 사진:혼다코리아는 이번 전시회에 공식 협찬사로 참여해 수입차 SUV 판매 1위 모델인 CR-V를 행사 공식 차량으로 제공한다.


정부와 기업의 전면적 지원 속에 진행된 이번 전시는 주류적 문화기호이자 다양한 광고마케팅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고흐의 문화적 배경과 긴밀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고흐 자신이 민중이었고, 그가 민중을 그렸다는 점은 별로 주목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박한 차림의 민중들인 ‘감자를 먹는 사람들’, 왜소한 노파들이 빗속에서 줄지어 기다리는 음울한 ‘복권판매소’의 정경, 나비가 파득 날아오를 것만 같이 연두 빛 가득한, 사회주의자 ‘우편배달부 룰랭’과 같이 그의 예술은 대체로 민중 속에서 숨 쉬는 사회적 미학에 기초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조명은 물감이 부족해 찍어 짜서 그린 붓놀림이나 모델을 살 돈이 없이 초상화를 주로 그렸고 결국 가슴에 총을 쏴 자살한 그의 일대기와 작품의 색채와 질감 그리고 세계적 유명세뿐이다. 사회와 창작과의 관계성은 성찰되지 못한 채 아름다움 그리고 기능주의에 편향된 예술주의, 일류주의 그리고 헝그리 정신이 은유되며 신화로 재생산된다. 바로 공공기관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말이다.

위 사진:빈센트 반 고흐, “복권 판매소”, 38×57㎝, 1882년 9월, 수채화


고흐에 대한 이러한 조명은 여전히 ‘서구 근대예술’에 기초해 ‘예술신화’를 생산하는 거점으로서의 공공문화기관과 주류예술계, 학교교육을 비롯한 대중문화 그리고 자본과 권력이란 삼위일체의 공모 속에서 형성돼 왔다. 이들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신화를 재생산하는 한편, 자본은 상품판매를 위한 광고마케팅이나 자사 문화사업 및 메세나(기업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와 연계한 기업이미지 제고를 통해 자본의 재생산에 활용한다. 권력 또한 재생산을 위한 치적에 활용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꾀한다. 결국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시는 고흐를 조명하지만 권력에 활용되며 삭제된 ‘동시대’와 ‘사회’란 반성적 키워드는 또다시 현재의 민중과 가난한 예술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만든다.

개막식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가난과 고통이라는 시련 속에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이뤄낸 정열의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서울시민에게 창의와 열정을 불어넣는 문화에너지로 작용하기를 바란다”고 했단다. 그런데 고흐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이라면 과연 그는 전시개막일에 초대될 수 있었을까? 생전에 팔린 그림이라곤 3만 원 정도에 팔린 단 한 점뿐이고 테오라는 동생한테 ‘빌붙어’ 살았다는데 혹시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 ‘반(反) 고흐’란 퍼포먼스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정은희 님은 문화연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81 호 [기사입력] 2007년 11월 28일 11: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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