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아의 인권이야기] 최요삼 그리고 이천냉동공장 화재사고로 죽어간 노동자를 기억하며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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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여느 때와 같이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던 중 뉴스에서 최요삼 씨의 뇌사판정과 장기기증 소식이 들려왔다. 하던 일을 멈추고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 멍하니 화면을 보던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가 최요삼 씨처럼 뇌출혈로 쓰러진 경험이 있어서,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소식에 자연스레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는 그의 모습을 그리면서 부디 그에게 재활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기도했다. 그러나 그는 뇌사판정을 받았고, 그의 가족은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최요삼 씨의 장기를 기증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었다.

한국권투인협회는 최요삼 씨가 사고 직후 병원에 후송되기까지 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건강보호기금(복서들이 대전료 중 1%를 떼어 적립한 기금)이 바닥난 사실에 관해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위급한 응급환자의 경우 무엇보다 ‘가까운 치료 가능한 병원’에 가는 것이 상식이나, 최요삼 씨의 경우 한국권투위원회가 지정한 병원으로 이동하느라 후송시간이 지체되었다. 또한 오랫동안 적립해온 건강보호기금이 바닥이나 그의 병원비를 모금운동에 의존하게 하는 것도 이러한 기금에 대한 사회적인 감시가 얼마나 미흡한지를 절감하게 한다.

이러한 조치가 당장 죽은 사람을 살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을 통해 위급한 사고에 대한 응급조치의 필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점검의 계기가 되었다.

또 다른 한편, 최요삼 씨의 죽음에 이천냉동창고 화재사건으로 죽어간 이주노동자와 일용직노동자들의 죽음이 겹쳐지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죽음조차 평등하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다. 대개 죽음 앞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빈부격차를 넘어 “인간이라면 모두 죽는다”라고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는지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죽어나가면서까지 중대재해를 통제할 수 없는 한국타이어 노동자들, 뉴올리언스에서 집을 잃은 많은 흑인들, 쓰나미로 가까운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들 모두 ‘노동자’라는, ‘유색인종’이라는,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주민’이라는 조건이 같은 사고라도 훨씬 위험하고 가혹한 경험을 낳게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재해, 중대 질병, 대형 사고와 같은 상황에 종종 맞부딪친다. 이럴 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얼마나 조절 가능한 조건으로 만들 수 있느냐는 그 사회의 안전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사고의 위험인자가 원인과 결과처럼 따라붙는 조건이 형성되는 것을 가능한 줄이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사회적인 위험에 직면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지속적인 감시를 해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생명권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권투경기와 같은 스포츠를 진행할 때 응급의학에 관련된 전문의료인을 상주시키고 협진체계를 마련하는 일, 다중시설에서 최소한의 소방도로를 확보하는 일, 권투인을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기부·운영되는 권투선수를 위한 건강보험체계를 마련하는 일, 유해물질로 쓰이는 건축 자재를 쓰지 않도록 하는 일, 안전기준에 대한 예방교육과 홍보와 감시를 실천하는 일 등 일상을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만들고 실천으로 옮기는 일은 최요삼 씨와 이천냉동창고 화재사건으로 죽어간 이주노동자와 일용직노동자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덧붙이는 글
◎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86 호 [기사입력] 2008년 01월 09일 1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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