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유엔 UPR 민간보고서와 한국의 인권상황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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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권레짐과 한국

인권은 세계 곳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유린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실한 필요성 때문에 자라났다.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은 세계 대전으로 자행된 수많은 학살을 보며 ‘인간존엄성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고민의 결과였다. 또한 인간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질서는 일국 내에서만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은 식민지와 전쟁, 독재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인해 ‘인권’이란 단어조차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엄혹한 시절이 있었으며 ‘인권’은 감옥에 간 민주투사들을 옹호할 때만 쓰이는 아주 좁은 의미일 뿐이었다. 대통령직선제, 민간정부의 등장으로 늦게나마 외형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겨우 ‘인권’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늦은 만큼 우리 사회 분위기나 인식, 그를 기반으로 한 사회정책은 국제인권레짐에 한참 뒤쳐져 있다. 더구나 뒤늦은 한국의 국제기구 가입은 우리사회에 국제인권레짐의 확산으로 이어지기보다 ‘정권의 합법성, 정통성’을 장식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다.

위 사진: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홈페이지 [출처] www.ohchr.org


유엔 인권이사회의 출발, 보편적 정례검토

유엔 인권위원회는 유엔의 인권전담기구로서 1946년 경제사회이사회의 산하 위원회로 창설되어 국제 인권논의의 장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인권위원회의 권한 및 실행력의 부족에 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세계 인권증진에 더욱 적극적으로 기여하려면 권한 및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 결과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의 인권위원회를 유엔 총회 산하의 인권이사회로 격상시키는 권고안이 2004년 말 나와 2006년 3월 15일 마침내 유엔 총회에서 170개국의 찬성과 미국을 위시한 4개국의 반대만이 있는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어 그해 6월에 이사회로 격상되었다.

총회산하 기관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과 과제가 커졌다는 의미일 수 있으며 ‘인권’이 세계사회의 주요 의제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위상의 격상이 국제사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의 정치화, 정치수단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강대국의 인권유린 현실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비서구 국가의 인권을 ‘문제시화’해서 다양한 국제적 제재를 취하고 있는 현실 때문에, ‘유엔이 그동안 보여준 인권은 이중기준이며 선별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하기에 모든 유엔 가입국의 인권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보편적 정례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아래 UPR)는 의미가 있다. UPR은 유엔 192개 회원국의 인권 의무 이행상황에 대한 점검과 평가를 통해 인권상황의 실질적인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이다.

많은 국가들이 국제인권규약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특정규약 가입유무와 상관없이 해당 인권현안을 검토하여 증진시킬 의무를 국가에 강제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세계인권상황을 상향조정하는 역할도 기대된다. 실제 한국도 가입하지 않은 국제인권규약으로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 등이 있으며, 인권을 정치적 무기로 하여 전쟁을 일삼는 미국은 아직도 ‘사회권규약’, ‘문화다양성 협약’ 등에도 가입하지 않은 현실에서 UPR은 자국의 인권을 평가하고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는 모순된 행동에 제어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권보장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실천적 제도화는 여전히 부족하고 물리적 구속력이 없는 유엔기구라는 한계 때문에 ‘행동은 없고 토론만 있는’ 기구에 그칠 우려도 크다. 더구나 1년에 한번 열렸던 인권위원회에 비해 연중 3회 이상으로 모임의 횟수는 늘었지만, 가입국의 인권상황을 짧은 시간에 전문가들이 아닌 이사국들끼리 모여 평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문제의식도 많다. 더구나 이사국들이 모여 검토하는 방식은 이사국의 ‘정치적 봐주기나 관례적 검토’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위 사진:루이즈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 [출처] www.ohchr.org


한국 인권상황에 대한 판단

처음 도입되는 제도라 한국인권단체들만이 아니라, 유엔에서도 준비방법과 과정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시아 인권단체들의 연명으로 제출시한을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 결과 제출시한이 1월 25일로 일주일 연장되었다. 한국에서 여러 인권단체들이 모여 만든 ‘UPR에 관한 민간단체 보고서’(아래 민간보고서)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 5쪽 분량으로 제출하게 되어 있다. 인권사회단체들이 제출하는 것 외에도 국가인권기구들도 5쪽 분량으로 제출하게 되어 있다. 정부보고서는 각종 규약관련 보고서와 달리 인권단체와 국가인권기구의 보고서가 제출된 이후에 제출되도록 되어 있다. 제출한 여러 보고서를 토대로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이 한국인권상황에 대한 보고를 다시 UPR 실무그룹 회의(working groups)에 제출하고 이를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들이 검토하게 된다.

짧은 분량에 한국의 인권 증진 이행사항을 담아야 하는 작업이라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총체적 판단이 우선 필요했다. 자유권규약, 사회권규약, 아동권규약, 여성인권규약, 인종차별철폐협약, 고문방지협약 등을 포괄해야하는 내용이기에 짧은 시간에 적은 수의 인권단체들이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인권의 상호불가분성과 상호의존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이러한 작업이 인권상황 전체에 대한 시각과 방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민간보고서에 담았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회권의 전반적 후퇴와 그에 따른 자유권의 억압

한국의 인권상황을 평가해보면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인한 공공성 악화 등 ‘사회권의 전반적 후퇴와 그에 따른 민중의 저항을 옭아매기 위한 자유권의 후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 내내 경제우선주의적 정책의 도입과 강화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아래 사회권)는 전반적으로 급격하게 후퇴하고 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은 저하되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노동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도시 근로자가구의 절대 빈곤층은 2006년 11.35%로서, 1999년(15.16%)보다는 3.81%포인트 낮아졌으나, 2002년(9.53%)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상대빈곤율 역시 2006년 16.42%로 2005년의 15.97%보다 0.45%포인트 높아졌다. 이러한 빈곤층의 확대는 사회보장제도가 유럽보다 아주 미약한 한국에서는 사회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증가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빈곤층이 겨우 생존만 하고 있는 정도여서 주거, 의료, 교육, 문화적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인 비닐하우스와 쪽방, 지하방 등이 2005년 통계상 255만 가구에 이르며 개발로 인한 강제철거는 주거대책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본인부담률이 높은 의료제도로 인해 의료의 접근성은 떨어지고 ‘질병의 발생은 가계파탄’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신장, 심장 등의 내부기관 장애인들을 2006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가입자에서 의료급여 수급자로 자격이 바뀐 원인으로 ‘질병으로 인한 가계 파탄 때문’이라고 88.9%가 답변했다. 치료를 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치료비를 계속 지출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질병 때문에 소득이 없거나 줄어드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결국 ‘가계 파탄’으로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다. 문화양극화도 심해져 2005년 통계청 ‘3/4분기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 실시 이후 소득 최상위 10%와 하위 10% 계층 간 교양· 오락비 지출 격차가 무려 10배 이상 벌어지고 있다.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과 무상의무교육이 무색한 한국 교육제도는 빈곤층의 교육혜택을 떨어뜨리고 있어 교육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특히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전무한 한국에서 생존은 노동소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최저생존만을 보장하는 비정규직의 확대(전체 노동자의 50% 이상인 870만 명)는 사회양극화 심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책으로 내놓은 ‘비정규보호법’은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 있도록 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권의 후퇴에 대한 사람들의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국가는 이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하여, 이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아래 자유권)의 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불법집회’의 건수나 비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음에도 집회와 시위를 불온시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져 사실상 허가제처럼 운영되고 있다. 집회·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악용되는 과도한 벌금, 최근 심지어 폴리스라인을 넘어서기만 하면 곧바로 연행, 벌금, 구속이 가능한 법 개악마저 추진하려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강제신분등록제도, 생체여권, 법적 근거 없이 공공·민간영역에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 의한 일상적인 감시의 광범위한 확산 등은 개개인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와 통제, 감시이며 이를 통해 민중들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 곳곳에 차별받는 소수자의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 출신국가, 병력, 언어, 가족상황 및 가족형태, 범죄경력에 관한 항목이 차별사유에서 제외되었고 차별을 없애기 위한 시정명령권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없다. 이러한 정부의 차별금지법은 오히려 차별을 조장할 수 있어 더욱 문제라는 게 인권진영 대부분의 인식이다.

법적, 제도적 정비의 허(虛)를 드러낼 수 있어야

인권보장을 위해서는 인권실현을 위한 정책과 법제도의 마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 나라의 인권을 평가할 때도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 법이 얼마나 잘되어 있느냐를 중심으로 평가하게 된다. 한국은 뒤늦은 출발이지만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법과 제도들이 많다. 하지만 ‘비정규직 보호법’처럼 그 이름에 걸맞은 법령이나 제도시행이 아니어서 오히려 인권을 악화시키고 있음을 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한국은 국제 인권규약에 6개나 가입했지만 국제법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는 헌법의 선언은 현실에서 무의미하며 사법부의 판결에서 국제인권법의 법적 구속력은 사실상 부정되고 있는 현실이다. 심지어 헌법에서 기본권의 대상을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어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의 권리박탈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국내법과 국제법의 불일치를 명백히 보여준다.
일국에서의 인권이행을 점검하는 준 국제기구이자 국가기구인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시아에서는 그 독립적 지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주요한 정책이나 법령에 대한 권고를 행하고 구금시설 등의 인권개선에 기여한 면이 있지만 한국인권상황의 핵심인 사회권 침해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인권단체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법원에 대한 의견 제출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현장에 대한 감시 또한 충분히 행하고 있지 않아 혁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부족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조차 막으려는 보수 정치계의 목소리로 인해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조차 위협받고 있어서 그동안 해온 인권 개선조차 어려워진 현실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나타난 새로운 인권 이슈

나라마다 사회제도의 차이로 그 나라에서는 심각한 인권침해로 인식되는 사안이 다른 나라의 경험에 기반을 두어 보면 왜 문제인지 알 수 없는 사안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이슈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비정규직의 존재는 유럽에서 보면 그리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정규직도 충분한 임금과 휴가제도,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많은 것 자체로만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이 전무하고 의료비와 교육비, 주거비에 대한 자부담이 높은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삶의 질의 하락만이 아닌 생명권조차 위협한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했다.

이번에 새로운 이슈로 제기된 것은 '공직선거법에 의한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제약'이었다. 한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어느 나라보다도 높기에 공론형성과 민주주의 실현의 공간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온라인상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선거법의 개악된 규정에 따라 선거일 180일 전부터 유권자들은 후보들에 대한 어떤 지지와 비판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실제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자유롭게 정치에 대한 의사표현을 하는 UCC(User Created Contents)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이 사람들에게 선관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 원 이하의 벌금 부과라는 어마어마한 제한을 가했다.

논의와 소통의 과정은 인권운동진영의 연대 기반

앞에서도 밝혔듯이 짧은 시간에 준비하다보니 여러 단체들의 의견을 모으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단지 자기 전문영역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고서에 ‘짜깁기’처럼 담는 것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작성과정부터 한국인권상황에 대한 문제의식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야 이후 운동과정에서 각 단체가 각기 다른 인권현안을 들고 인권활동을 펼치더라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권의 상호불가분성과 상호의존성을 생각해도 그러하지만 새 정부 들어 신자유주의로 더욱 강화될 인권침해 상황에 효과적으로 공동대응하기 위해서도 인권운동진영의 합의된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년마다 한 번씩 민간보고서 작성이 한국 인권상황에 대한 인권운동진영의 공통의 인식 확보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다음번에는 좀 더 일찍 세밀하게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보고서 작성 이전에 4년간의 인권운동진영의 연대가 바탕에 있어야 좀 더 나은 보고서,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있는 보고서가 될 것이기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국가인권위 대통령 직속기구화 저지를 위한’ 인권활동가들의 연대를 차근차근 모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권오름 제 89 호 [기사입력] 2008년 01월 30일 22: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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