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당사자와 함께 하고 있나?”

[기획] 인권운동, 임파워먼트를 만나다 (1) ‘임파워먼트’라는 열쇠말

윤미
print
<편집자 주>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는 인권운동. 그러나 현안 대응이나 정책 생산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인권의 주체인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많이, 자주 만나서 허허로움이 달래지지도 않는다. 인권운동사랑방 건강권 팀은 ‘임파워먼트(empowerment)’ 워크숍을 열어 어떻게 ‘사람’을 만나면 좋을 지에 대해 하나의 실마리를 내어놓았다. <인권오름>은 ‘임파워먼트 워크숍’과 그 준비 과정에서의 인터뷰를 소개해, 정답이 아닌 ‘질문’을 독자들과 나누려고 한다.


인권운동을 하다보면 당사자와의 만남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작 권리주체인 당사자가 보이지 않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인권이 몇몇 사람들의 의지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때는 허허로움을 느끼게 된다.
당사자들이 권리를 인식하고 그 인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또 힘을 합쳐 자신을 둘러싼 환경까지 변화시키는 힘을 만들어가는 과정. 이런 모든 과정을 임파워먼트라고 한다. 그래서 임파워먼트는 활동가로서 한번쯤은 고민해봤을 만한 화두일 듯하다.

인권운동사랑방 건강권 팀은 지난해 ‘동자동 의료수급권자 모임’을 함께 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동자동 건강권 배움터‘를 진행하고 실태조사도 하러 뛰어다녔지만 ’우리가 정말 당사자와 함께 하고 있나‘라는 고민이 들었다. 건강권의 침해를 경험한 당사자 스스로 ’권리로서의 건강‘을 존중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인권으로서의 건강권‘의 의미라면, 당사자 없는 인권운동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몇 달 동안의 활동을 평가하면서 고민들이 터져 나왔다. 단순한 조직화를 넘어 당사자들을 권리주체로 세우기 위해 어떤 방법들이 있을 지 고민하던 중, ’임파워먼트‘가 흘러 들어왔다. 그걸 놓치지 않고 조금 더 쫓아가보려고 머리를 맞댄 자리가 지난 3월 7일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열린 ‘임파워먼트 워크숍’이었다.

위 사진:당일 워크숍 자료집에는 ‘임파워먼트의 개념/ 임파워먼트의 운동적 의미/ 다양한 단체의 임파워먼트를 조사한 사례/ 당사자운동과의 관계’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임파워먼트’는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단어로 번역되지 않는다.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높이고 세력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인권교육에서는 ‘권한 강화’로 번역한다. ‘인권의 문법’ 저자 조효제 교수는 ‘자력화’라는 말로 번역하기도 한다. 공통점은 ‘강점관점’을 중시하는 건데, 활동가와 당사자가 ‘제공자-수혜자’의 관계를 극복하고 동반자로서 함께 운동해 나간다는 의미다.

한편, 최근 임파워먼트 개념은 경영학에서 가장 활발하게 쓰인다. 하지만 경영학이 쓰는 임파워먼트는 당사자의 입장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 이처럼 임파워먼트라는 말 자체가 인권 운동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들이 무조건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 어떤 가치와 결합해’ 힘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워크숍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다. 인권운동에서 임파워먼트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임파워먼트, 당사자의 힘을 믿는 것

임파워먼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다. 흔히 그러하듯 당사자들을 ‘피해자’로서만 인식하다보면 당사자가 스스로 권리를 재구성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놓칠 수 있다. 인권운동은 당사자들을 활동가와 보조를 같이 하는 주체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사자와 활동가가 함께 인권을 만들어나가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

“운동에서 임파워먼트를 쓰는 사상적 기초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세상이 아니면 저 사람이 가진 힘을 키워내고 삶을 꽃피울 수 있었는데, 지금의 구조 속에서 그런 기회와 힘들을 빼앗겼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무력해지기도 한다는 것. 임파워먼트는 이 구조에 맞서는 사람들을 변화의 씨앗으로 불러낼 수 있다.”

“사랑방에서 직접행동으로 평택이나 이랜드 활동을 했었다. 하지만 활동가만의 제스처를 취했던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든다. 활동가들도 당사자로서 당사자운동을 해야 한다”

“임파워먼트가 역능강화라는 말로도 번역이 되는데, 나는 이게 역동성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역동적인 것은, 인권활동가와 당사자, 당사자와 비당사자로 구분하는 것을 벗어나 둘 다 임파워먼트되는 과정이다.”

너와 나의 권리가 연결되어 있어

또 임파워먼트는 ‘인권감수성을 키워’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한다. 단지 나의 권리를 인식하고 마는 것을 넘어서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내 권리 뿐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이해하고 둘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깨닫는 게 바로 임파워먼트의 과정이다.

“임파워먼트는 가려진 서사를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사회에서는 이명박의 서사는 넘치고 있고 상대적으로 억압받는 자의 서사는 적다.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 간의 접점이 생길 수 있다. 그걸 단편적인 걸로만 인식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이해를 넘어 보편적 언어로 만들어내는 것이 임파워먼트가 아닐까?”

주체가 어떤 점을 권리침해로 느꼈고, 어떠한 변화를 원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임파워먼트 과정은 새로운 인권목록과 인권실현의 장을 만들어내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그렇다면 임파워먼트를 실천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이고 그런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위 사진:임파워먼트 실천의 어려움들을 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임파워먼트의 단계마다 부딪치는 어려움

건강권 팀이 ‘동자동 의료수급권 당사자 모임’을 할 때는 조직화 되어 있지 않은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을 불러 모으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무력감에 빠진 개인들에게서 공동의 문제의식을 이끌어 내고 활동의 장으로 모이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런 어려움은 임파워먼트를 하면서 처음 부딪치는 개인 수준의 단계에서 겪게 된다.

임파워먼트를 이해하기 쉽도록 ‘개인 수준, 조직 수준, 그리고 사회 수준’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개인 수준의 임파워먼트는 개인 스스로의 힘이나 변화 능력을 믿는 단계이고 조직 수준은 당사자들이 서로의 문제의식을 주고받으며 모이는 단계다. 그리고 사회수준의 임파워먼트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같은 사회구조를 바꿈으로써 보다 큰 힘을 얻게 되는 단계다.

사회 수준의 임파워먼트가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만난다 해도, 정작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제도나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파워먼트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려고 여러 단체들을 인터뷰 했을 때 공통적으로 말하던 게 개인, 조직 수준까지는 잘되는데 사회 수준으로 발언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게 어렵다는 거였다. 파산상담을 받는 금융피해자들이 모임도 꾸렸는데 면책을 받고 나면 더 이상 같이 하지 않거나, 주거 문제로 모인 사람들이 돈 문제로 분열하면서 멈춰버리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 동성애자 모임은 문제를 인식해도 정작 사회적으로 해결할 통로가 없고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얘기했다.”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는 임파워먼트 방법 만들기

임파워먼트를 개인적, 조직적, 사회적 수준으로 나눌 수는 있지만 정확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며 이런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며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임파워먼트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개인적, 조직적, 사회적으로 구분하는 임파워먼트 개념에 함정이 있는 게 아닐까. 개인들이 모이게 되는 계기는 동일한 문제의식이 있다는 거지만 한 개인의 안에는 무수한 관계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한 가지 방식으로 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이걸 전제하지 않는다면 조직이 하나의 방식과 목적으로 돌아가면서 지금의 한계를 되풀이 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질문을 달리하는 임파워먼트를 해야한다”

임파워먼트는 “나의 권리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문제가 다른 사람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고민하는 질문”들을 하면서 개인 안의 수많은 사회적 관계들을 불러낼 때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운동을 짤 때부터 다른 방식의 질문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인권활동가대회 때 화장실 모둠에서의 첫 질문은, ‘트랜스젠더에게 화장실이 얼마나 폭력적인 공간일까요’가 아니라, '화장실은 각자에게 어떤 공간입니까'였다. 이런 질문으로 출발하면 성별로 이분화 하는 사회가 나에게는 어떤 억압으로 연결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어떤 문제가 특정한 사람, 집단의 문제이기보다, 우리 모두와 연결되는 정치적인 구조의 문제임을 고민할 수 있는 ‘열려있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임파워먼트를 해야 한다.”

임파워먼트는 여러 운동 조직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조직이 하나의 방식으로 하나의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할 때 생기는 결과 중심주의, 성과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또한 ‘노동운동이 이렇게 후퇴하고 있는데 어떻게 동성애, 여성 문제까지 고민하느냐’며 ‘노동자’ 안에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보지 못하고 운동 간 연대가 잘 되지 않는 문제점에도 해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계속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는 것

“임파워먼트, 처음에 들었을 때 분명한 무엇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어렵다.” 워크샵 마지막에 터져 나오는 한 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임파워먼트는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인권운동의 영토를 반성하고 더불어 운동의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훌륭한 열쇠말이다. 각자 활동하는 구체적인 운동의 영역에서 임파워먼트의 가치를 활성화 시키고 그 방법은 어떠해야 할지 풀어나가는 것은 활동가들의 과제일 것이다.

무엇보다 임파워먼트는 완성된 무언가가 아니라 계속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권리 침해 당사자 임파워먼트를 고민하는 활동가 역시 임파워먼트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인권오름 제 96 호 [기사입력] 2008년 03월 25일 17:56:04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