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물구나무] 나눔은 투자입니까?

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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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투자’로 말하는 세상이다. 부동산 투기는 말할 것도 없고, 펀드다 주식이다 해서 너나 할 것 없이 투자의 흐름에 쓸려가고 있다. 투자는 장차 얻을 수익을 기대하며 현재 자금을 지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식 투자가 확산되면서 일상의 많은 것들을 투자 대비 수익률로 계산하게 된다. 수익률이 ‘수치’로 환산되어 시시각각 투자자에게 보고되는 시대에, 상생하는 인간관계나 공동체적 연대는 옛말이 되고 있다.

위 사진: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홈페이지에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나눔마저 ‘투자’가 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는 “당신도 행복주주가 될 수 있다”고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1달러 기부’는 ‘19달러의 수익’이 있어서 의미를 얻게 된다. 나눔이 투자가 되면 투자자인 ‘행복주주’는 나눔의 혜택을 받는 이웃(투자상품)에게 일정 정도의 수익을 기대하며 투자를 하게 된다. 캠페인에서와 같이 투자의 효과는 19배 이상의 수익을 가져와야 하며, “소외아동의 자신감이 30% 높아”지거나 “장애인의 삶의 질이 30% 좋아”지는 행복한 세상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행복주주의 투자만으로 해결되기에는, 어려운 이웃의 빈곤은 매우 다면적이고 구조적이다. 빈곤이 현 세대를 거쳐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빈곤의 대물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이렇듯 빈곤이 구조화되고 만성화되는 사회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1달러를 기부해 소외된 사람들의 삶이 30% 좋아진다는 낙관을 설파하는 것은 빈곤을 은폐할 수 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자선과 시혜’의 대상으로 남게 하고 영속적인 상하관계에 머물게 한다.

투자자는 빈곤한 이들에게 경제적 원조를 할 수 있고 그런 자신의 참여로 그들의 삶과 이 사회에 질적인 기여를 했다고 자위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정금액 이상을 ‘투자’하면 자신의 이름으로 지원 사업을 만들 수 있고, 1억 원 이상 ‘투자’하면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될 수 있는 행복주주는 투자의 크기에 따라 분화된다. 값이 매겨지지 않는 행복인 나눔의 의미는 퇴색된 채 더 큰 나눔과 변변치 않은 나눔이 ‘계급화’되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수동적으로 받거나 수직관계에 있는 ‘대상’인 것처럼 기부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익’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인간으로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주어져야 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나눔은 가난한 사람들과 조건 없이 공유하고 연대할 때 가능하다. 단순히 부족한 복지 자원을 민간 차원에서 메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나눔 자체가 빈곤층과 사회일반의 소통과정이 되어야 하며 사회연대의식이 자라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인권오름 제 96 호 [기사입력] 2008년 03월 25일 18: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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