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2] 가족관계등록부, 국가에 의한 ‘아웃팅’

가족관계등록법 시행 3개월 만에 피해사례 속속 드러나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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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가 폐지되고 호적을 대신해 가족관계등록부가 만들어진 지 3개월이 지났다. 2008년 1월 1일부터 전 국민은 호적부가 아닌 가족관계등록부를 통해 개인별로 자신의 출생, 혼인, 사망, 국적 등을 확인, 증명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3월 2일 호주제 폐지를 주 골자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2007년 4월 27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아래 가족관계등록법)’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국가신분등록제는 한걸음 진전을 하기도 했으나 혈연·부계·친족 중심의 ‘가족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국가신분등록제의 문제점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호주제 폐지 원년이라는 축하가 무색하게 ‘예견되었던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과도한 개인정보 노출

가장 먼저 지적할 문제는 불필요한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되고 있는 점이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개인은 기본증명서를 포함해 목적에 따른 증명서(가족관계, 혼인관계, 입양, 친양자입양)를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신분관계를 보여주는 증명서’와 ‘신분변동사항을 보여주는 증명서가 분리‘되어 있지 않아 이혼, 개명, 입양과 파양, 성별변경 등 신분변동 사항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혈연에 기초한 이성애 핵가족을 일반적인 가족의 범위로 한정해서 생기는 피해도 심각하다.

위 사진:기본증명서에 큼지막하게 '기아발견'이라는 항목이 공시되고 있다.

3월 25일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개최한 ‘가족관계등록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대구 대안가정운동본부 사무국장 김명희 씨는 “(입양한) 아들의 기본증명서에는 큼지막하게 ‘기아(버려진 아이)발견’이란 항목이 있고, 성본창설허가일, 허가법원, 허가내용, 기아발견조서제출일, 기아발견조서작성자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재”되었고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부, 모, 양부, 양모로 구분되어 성명과 주민등록번호까지 기록되었고 법적으로 친권자인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양부와 양모로 기재되었다“고 증언했다. 목적별로 증명서를 발급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기본증명에 ‘기아발견’ 항목이 들어간다거나 가족관계증명에 ‘양부, 양모’가 친절하게(?) 기재되어 있어서 입양증명서가 필요 없을 정도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조사한 최근 피해사례(www.hotline.or.kr/family)를 보면 가족관계증명서로 인한 피해가 24건, 혼인관계증명서로 인한 피해가 5건 나타났다. 가족관계증명서의 경우 ▲이혼하기 전 혼인관계에서의 자녀 기록이 나오고, 본인도 몰랐던 친부/친모가 기록되는 사례 ▲재혼한 경우 현재 자녀 기록이 없고,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현재 부모 중 여성이 기록되지 않는 사례 ▲국제결혼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이 되지 않는 사례 등이 확인되었다. 혼인관계증명서의 경우 ▲이혼기록이 나오는 사례 ▲혼인기록은 없고 이혼기록만 나온 사례 ▲국제결혼의 경우 배우자 증명이 안 되는 사례 등이 보고되었다.

가족주의에 뿌리박은 국가신분등록제

한국여성민우회 이원형 활동가는 “시간과 비용의 한계를 핑계로 새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기존 호적을 기초 자료로 삼았기 때문이며, 호적에 기재된 정보를 각종 증명서로 표시하는 과정에서 ‘초혼인 이성애 부부와 그들이 낳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 이외의 가족형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호주라는 망령은 사라졌으나 여전히 핏줄에 따른 가족관계 안에서 개인을 증명하는 방식이 살아남아 이 같은 피해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 김원정 활동가는 “언론과 관장기관인 대법원과 정부 모두 호주제의 대안으로 가족관계등록제도를 홍보하면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새로운 가족의 상을 보여줄 것이라는 엉뚱한 기대를 부풀렸다”라고 지적하며 여전히 수많은 법과 제도 안에서 가족주의가 굳건히 발을 딛고 있다고 비판했다.

위 사진:<가족관계등록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그렇다면,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법률의 명칭과 목적을 바꿔야 한다. 현행법은 국민의 출생·혼인·사망 등 가족관계의 발생 및 변동사항에 관한 등록과 그 증명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여전히 개인의 출생·혼인·사망 등 신분사항을 가족관계의 범위에서 관리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국가신분등록법은 가족관계의 등록을 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분사항을 공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공동행동은 ‘출생·혼인·사망 등의 신고와 증명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을 제안한 바 있다.

둘째, 신분관계증명서와 신분변동사항증명서의 분리가 법률에 명시되어야 한다. 앞서 피해사례에서 보고되었듯이 현재의 신분관계를 보여주는 증명서와 신분변동사항을 보여주는 증명서가 분리되지 않아, 민감한 신분변동사항이 굳이 증명될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공개되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법을 바꿔야 해결될 수 있다.

그밖에 본적을 그대로 계승한 ‘등록준거지’와 본(本) 개념은 삭제되어야 하며, 혼인 외 자(子)를 구별하여 기재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부모 성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어머니의 성을 따를 때 신고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국가신분등록제도, 가족을 딛고 개인으로!

호주, 호적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가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전체의 신분사항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여, 과도한 개인정보를 공시하고, 가족관계를 통해 개인의 신분을 판단해 다양한 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잘못된 관행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호주를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는 호적제는 국가가 강제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이며, 국가는 호주라는 대표를 앞세워 개인을 통치해왔다.

호주제 폐지가 형식적인 법의 폐지가 아닌 제도와 의식에서 실질화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김원정 씨는 “호적제도가 지닌 규범적인 가족제도의 실질적이고 상징적 의미를 해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새로운 신분등록제도가 ‘가족관계등록법’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역사를 보듯이 그동안 호적제는 부계혈통을 잇는 공적인 족보와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므로 단지 호주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가족관계 속에서 겪은 개인의 인권침해가 모두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김원정 씨는 “한국사회에 팽배한 이성애 혈연중심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다양한 형태로 가족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법, 제도 면에서나 일상의 삶에서나 시민의 지위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국가신분등록제도는 조세나 부역을 위해 국민을 관리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제 국민의 인권보호와 보장, 증진을 위해 국민의 신분(출생, 사망, 국적, 혼인 등)을 증명하는 새로운 국가신분등록제도가 만들어져야 하며 신분등록제도의 공시기능과 프라이버시가 상충되지 않는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인권오름 제 97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02일 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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