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군의 인권이야기] 이름 없는 마법사의 귀환

불러도 주인 없을 이름이 되어

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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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밤에 그게 찾아와서 네 이름을 물어보면 절대 이름을 말하면 안 돼. 그냥 근처에 있는 다른 것들의 이름을 대."

20년 전쯤 친구들이 일러준, 홍콩할매(당시 초등학교에 출몰했다던 반인반묘 귀신)를 만나면 주의할 사항 중에 하나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주지 말라는 거였어. 그러고 보니 이름에 관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이 더 있네. 어슐러 르 귄이 쓴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에는 어떤 사물에게나 ‘일반적으로 불리는 이름’과 "진짜 이름"이 있어. 어떤 대상에 마법을 사용하려면 그것의 진짜 이름을 알아야 하는 거지. 어떤 대상의 진짜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대상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야. 또 <음양사>라는 일본 만화를 보면 음양사(주술사 같은 것)인 세이메이가 귀신을 퇴치하러 가면서 친구 히로마사에게 주의 사항을 일러주는데 역시 이름을 귀신에게 절대 알려서는 안 된다고 하거든. 왜냐는 질문에 세이메이는 "이름은 저주"라고 대답하지. 저주란 곧 사물을 속박하는 것인데 이름은 사물의 근본적인 실제를 속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야.

위 사진:마법사여, "진짜 이름"을 대라? (바탕사진 출처 ; 웹진 액트온)

“진짜 이름”을 요구하는 공간들

마법이니 주술이니 이게 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아니, 현실에서도 이름은 속박과 통제의 수단이 돼. 가장 적나라한 규제의 공간 학교를 떠올려보자고. 난 교복에 이름표를 달지 않았다고 교문 앞에 붙들려서 벌을 받은 적이 부지기수야. 왜 이름표를 강제했을까? 이름은 지시하고 호명할 수 있게 하지. 그래서 이름표를 달고 행동을 하게 하면 규율에 어긋난 행동을 통제할 수 있거나 혹은 통제하기 쉽다고 여겨서 강제로 달게 했겠지. 출석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야. 누구누구 불러서 손을 들고 대답하게 하지. 내가 여기 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도 있지만, 그 이름이 지시하는 것은 ‘나’라는 것을 매일 확인시키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

학교를 떠올리지 않아도 여전히 우리는 일상적으로 겪고 있어. 인터넷에 접속해서 뭔가를 할 때마다 ‘실명인증’을 요구받고는 하잖아. 실명인증의 과정은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넣고 그게 실제 국가에 등록된 정보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잖아? 실명-“진짜 이름”은 국가가 부여한 고유한 일련번호인 주민등록번호랑 이 육체의 정보인 지문정보랑 함께 등록된 거여야 한다는 거지. 개인이 인터넷 상에서 어떤 행위를 할 때마다, 특히 의견을 표현할 때마다 국가가 인증한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뭘 의미할까? 국가의 권위, 국가가 강제하는 방식대로 혹은 국가-법에 위반되지 않는 사실만을 표현할 것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근데 이거 말이야 왜 인터넷에서만 법적으로 규제하면서까지 요구 하는 걸까?

마법의 공간, 인터넷

인터넷 공간-이것을 장소라고 할 수 있다면-은 마법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계속 마법타령이냐고? 근데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 게, 옛이야기에 나오는 마법사니 주술사니 이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 비물질적인 힘들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잖아. 마법사는 변신도 하고 새로운 공간을 열거나 순간이동도 하지. 보통은 오가지 못하는 경계를 오갈 수 있는 자들이고. 육체-물질계에 속박되지 않고 말이야. 인터넷에서 우리가 하는 활동들이 마법사가 하는 거랑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현실계의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개념이 비틀리는 장이니까 말이야. 인터넷에서는 국가라는 개념이 희박하고 클릭 한 번으로 연결된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육체의 이동 없이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잖아.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거지. (물론 오프라인 세계와 완전히 분리된 세계라고 말하는 건 아냐.)

우리 마법사들은 고정된 정체성을 가지지 않아. 성별을 바꿔치기 할 수도 있고 복수의 정체성을 가질 수도 있어. 그리고 복수의 마법사가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 수도 있어. 이건 사실 오프라인에서도 가능하지만 제약을 받거나 기존 질서에서 허용되지 않기도 하지. 이렇게 인터넷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해 온 개념을 교란시키는 영역이라고 생각해. 동시에 초법적인 영역이‘었’지. 그리고 이건 오프라인 영역과도 영향을 주고받지. 힘들, 정보들, 말들이 여기저기서 팡팡 튀어 오르고 경합하고 만나고 변이하는 게 아니겠어?

마법사의 귀환을 두려워하는 자는 누구

국가/권력은 이 귀환한 마법사에게 두려움을 느껴. 불안은 공포가 되어 폭력을 불러오지. 그래서 기존 질서를 인터넷으로도 가져오려고 애를 써. 그 가능성들, 교란의 가능성들은 입법들에 의해 포섭되고 규정되지, 아주 빠른 속도로. 자본과 국가는 인터넷이 마치 분할 가능한 장소인 것처럼, 단일한 시간을 가진 것처럼 규정하려고 해. 마법을 통제하기 위해 마법사들을 한자리에 ‘고정’하기 위한 못과 망치를 들고 나타났지. 어떻게 고정하냐고? 간단해. 육체를 통제할 수 있는 “진짜이름”의 호명과 ‘기록’.

위 사진:국가/권력은 귀환한 마법사에게 두려움을 느껴. 불안은 폭력을 가져오지. 이제 그의 행적을 낱낱이 감시하는 거야. (출처: http://networker.jinbo.net)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에 등록된 이름만을 진짜이름이라면서 그걸 달고 말을 하라고 하지. 이제 마법사의 다른 정체성들은 모두 ‘가짜’가 되어버렸어. 그리고 ‘다른 정체성들’은 이제 점점 허용되지 않아. 단일한 기준에 의해 정해진 정체성만으로 고정되어버려. 오프라인에서 그렇듯 하나의 몸에는 하나의 정체성만 대입되는 거지. 국가가 부르는 ‘진짜’ 이름으로 못 박혀 나의 모든 활동들은 ‘단 하나의 나’로 종합되고 그것은 기록되고 감시받게 되었지. 국가라는 권위가 인정하는 것만 ‘진짜-참’이라는 건데, 권위로부터 합법적인 이름이라고 승인 받은 이름으로만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통제력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 ‘실명인증’이라는 건 사실 이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아. 온 국민이 국가의 주민등록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고 고유번호를 부여받고 있으니 아주 편리하게 가능하지. 실제로 다른 나라 사이트에서는 실명인증이라는 게 불가능해. 그러니까 이건 사실 주민등록제도의 문제야. 주민등록제도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해보자.)

“진짜이름”의 호명과 ‘기록’

이제 그가 누군지 알았어. 그럼 그의 행적을 낱낱이 감시해야 해. 최근 법제화를 추진하려고 하는 ‘로그기록의무보관’이 그 역할을 할 거야. 로그기록이라는 건 서버에 접속한 컴퓨터들의 고유주소인 ‘IP’와 그 컴퓨터가 접속해서 행하는 것들을 기록한 자료야. IP정보를 보면 이 컴퓨터가 어디에 있는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지. 그 컴퓨터로 서버에 접속해서 언제 글을 썼는지 무슨 파일을 다운로드했는지 어느 페이지를 읽었는지를 기록해둔다 이 말이지. 말 그대로 내 행동의 실시간 기록이다 이거야. 실명제가 실시되지 않는 사이트라고 해도 이건 이미 대부분 남기고 있어. 자본의 입장에서도 이용자가 어떤 패턴으로 움직이는가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거든. 이렇게 민감한 정보인 로그기록을 사업자들이 서버에 남기는 것을 규제하기는커녕 강제적으로 기록을 하라고 하는 거지.

마법이고 나발이고 당당하고 떳떳하면 실명을 쓰라고 하건 사생활을 기록해서 좀 보건 간에 관계없지 않느냐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고? 그건 범죄자들이나 두려워할 일 아니냐고? 글쎄. 네가 하는 게 언제나 옳은 것이어야 한다면 그 옳다는 일, 당당한 일이 뭔데? 그건 누가 정해줘? 당신의 내면의 법칙?

유머감각 있는 마법사가 되어

권력이 기능하는 방식의 핵심은, 지배를 받는 시민들이 스스로 복종하는 태도로 자기 자신을 감시하도록 순종적인 역할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봐. 내가 뭘 할 때마다 기록되고 있고-그건 내 통제를 벗어나 기록에 대한 권한조차 없지, 뭐가 기록되는지도 사실 잘 모르고-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국가인증 실명을 자진 호명한 후 글을 쓴다면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는 법칙은 그들이 부여한 법칙이 되는 거지.

어디서 봤는데 푸코가 이렇게 말했대. "아마도 오늘날 목표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발견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현재 모습을 거부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국가의 못 박기에 대항하는 것은 초법, 불법, 비합법적인 계기들과 사건들을 만드는 것에 달려 있지 않을까. 기존 개념에서 소화하기 힘든 비틀린 시공간을 '끊임없이' '생성'해내기. 그런 공간은 투쟁을 통해서 지켜내야 하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불복종으로 국가의 이러한 시도를 비웃고 조롱거리로 만들 수 있는 유머감각 있는 마법사가 되어 새로운 영역들을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아. 국가가 인터넷을 통제하겠다면 그 국가 경계를 클릭으로 한 번 뛰어넘어 게시물 망명을 할 수도 있고, 거룩한 실명을 고유한 것이 아닌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거나 IP를 바꾸고 우회하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비틀린 공간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서로 텔레파시를 주고받되 우리는 서로의 실체를 몰라야 해. 오로지 정보만이 부유할 것. 통제를 벗어난 새로운 공간을 구성할 것, 동시에 진정 기록해야 하는 것을 기록할 것! IP가 아니라, 주민등록번호가 아니라, 나의 서핑기록이 아니라, 또한 그 기록의 종합이 아니라, 기존에는 정보로 공공영역에서 떠다니지 못했던 것, 즉 우리 개개인의 목소리와 작업들, 생각들, 사적인 것들이 분산되어 기록되어야 할 거야. 인터넷이 도서관이라면 그렇게 만들어진 책들은 도서관에 선택되는 권위의 책들이 아니라, 어떤 누구나의 것이 될 것이며, 일상적이고 예전부터 있었지만 한 번도 기록된 적 없었고 공공연히 유통된 적 없었다는 점에서 이질적인 것이 될 거야. 그것은 특정한 정보 생산자들의 권력을 다양성으로 위협할 거고 기존 질서를 어지럽힐 거야.

산산이 부서지는 이름, 허공 중에 헤어지는 이름,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 되자!

부르다가 국가가 죽도록!
덧붙이는 글
달군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98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08일 15: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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