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보자 폴짝] 눈이 마주치는 순간 ‘얼음’

“CCTV 안에 괴물이 살고 있어”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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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처럼 어린이를 대상으로 일어나는 범죄가 최근 언론에 많이 나오고 있지. 아이들을 해치거나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건 분명히 큰 죄야. 그리고 이런 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건 너무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야. 그래서 경찰이나 정부에서 여러 가지 대책들을 내놓고 있기도 해. 그런데 이런 방법 중 하나로 가장 인기가 좋고, 쉽게 나오는 게 바로 나란다. 우리 동무들도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나의 눈부신 활약을 봤겠지? 난, CCTV란다.

“CCTV, 믿습니까?”

위 사진:우리 주변 곳곳에서 너무 자주 만나는 CCTV (출처: 참세상)
원래 내 이름은 ‘폐쇄회로 텔레비전’이야. 조금 어렵지? 일명 ‘감시카메라’라고도 해. 말 그대로 뭔가를 살피면서 감시하는 역할을 하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나만 있으면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또 범죄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나만 있다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어. 그래서 요즘 난 마치 ‘교주’가 된 기분이야. “CCTV 믿습니까?” 도대체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무턱대고 믿는 이유가 뭘까?

커지는 불안과 두려움

CCTV 설치에 대해 여론 조사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찬성을 하고 있어. 실제 몇 년 전에 강남구청에서 주민들에게 여론 조사를 했는데 88%가 나를 설치해도 좋다고 찬성했대. 한 뉴스 홈페이지에서 했던 네티즌 여론 조사에서도 높은 찬성률이 나왔어. 내 인기 좋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씁쓸해. 하루하루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잖아.

하지만 나에게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야. 내 안에 숨어 있는 괴물을 동무들이 알게 된다면 그때도 나를 좋아하게 될까? 사실 이런 고백을 하기까지 많이 망설였어. 그렇지만 나의 단점을 알고 친해져야 더 좋은 동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어.

위 사진:CCTV 천국. 그래야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는 걸까? (사진제공: 박김형준)

“내 안에 괴물이 살고 있어”

난 말이야, 항상 사람들의 모습과 움직임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나중에 또 볼 수 있도록 필름이나 테이프에 담아 둘 수 있어. 그러다가 나와 관련된 곳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면 언제라도 필름이나 테이프를 꺼내서 돌려볼 수 있는 거야. 그러다보니 내가 찍은 모든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라는 의심을 받게 돼. 정말 기분 나쁜 일이겠지? 또 범죄와 관련된 화면만 걸러서 보여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알리고 싶지 않은 모습이나 행동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돼. 내가 만약 찍히는 사람이라면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일 거야.

위 사진:청계천을 관리하는 곳에서는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쳐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CCTV를 설치했다고 해요. 하지만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도 24시간 가동되고 있었답니다. (사진제공: 박김형준)


범죄 방지용으로 어느 골목을 비추고 있던 CCTV가 얘기해 준건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뚫어져라 골목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 코를 파다가 CCTV와 눈이 마주쳤대. 그러더니 갑자기 그 사람 얼굴이 빨개지고 얼음처럼 굳어서 황급히 자리를 피하더래. 또 어느 학교에서 도난 방지용으로 복도를 비추는 CCTV는 학생들이 왜 그렇게 쉬는 시간에도 조용히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대. 그런데 어느 날 한 동무가 지나가면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유를 알았다지 뭐야. 그 동무는 “지난번에는 친구랑 장난치다가 선생님한테 불려갔잖아. CCTV로 다 보고 있었다면서 조용히 다니라고 하더라. CCTV 때문에 이젠 복도도 마음대로 못 다니겠어.”라고 말했대. 자신 때문에 복도에서 동무들의 웃음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괴로웠다고 하더라.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뭔지 아니? 사람들이 나를 범죄와 관련된 일에만 사용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어느 회사에서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서 나를 설치한다고 해. 노동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대. 그리고 학교 교실이나 심지어 잠을 자는 기숙사에까지 CCTV를 달아서 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있어. 억지로 공부를 시킬 수만 있다면 학생들의 개인 생활이 공개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무서운 생각이 나를 괴물로 만들고 있는 거야. 결국 사람들은 CCTV로 자기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눈치를 보게 되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거야. 창살만 없지 감옥에서 사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

위 사진:학교의 문제점을 알리고,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학교에 항의하기 위해 학생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옥상에서 날렸는데요. 그 일이 있고난 후 학교는 곳곳에 CCTV를 달아서 학생들을 감시하기 시작했어요. (출처: 진성고 UCC)


나만의 비밀, 나만의 정보

사람들은 누구나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 해. 이런 걸 ‘사생활의 권리’라고 얘기하는데, 누군가 혼자 있게 놓아두거나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야. 더 넓게는 자신과 관련된 정보-예를 들어 사진, 이름, 전화번호, 성적, 집 주소, 가족, 성별 등-가 어디에 모이고, 어떤 목적으로 누가 사용하는지, 언제까지 보관하는지 등을 알고 고치거나 지울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까지 포함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동무들이 인터넷의 어떤 사이트에 가입할 때 여러 가지 개인 정보를 입력하는데, 그런 정보들은 누가 관리하고, 어떻게 사용되는지, 언제까지 보관하는지 등을 아는 것 또한 권리라는 거지.

마찬가지로 CCTV에 담긴 자신의 모습이나 행동도 중요한 사생활이잖아. CCTV로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행동 하나하나를 녹화하는 건 사생활의 권리를 해칠 수 있는 위험이 너무 커. 그래서 CCTV를 달 때에는 지금보다 엄격한 기준이 필요해. 예를 들어 범죄 예방용으로는 어디든지 설치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설치가 불가능한 장소는 어디인지, 어떤 종류의 CCTV를 사용해야 하는지,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볼 때에도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주고 조사를 한다든지 등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해. 또 더불어 사생활의 권리를 지켜주면서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해. 더 쉬울 거라고, 돈이 더 적게 들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면서 CCTV에만 의존한다면 안전도, 사생활의 권리도 둘 다 잃어버리게 될지 몰라.

덧붙이는 글
영원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98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09일 4: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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