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노조가 비틀거릴 때도 연대가 꿈틀대도록

영양 밥상 한술 들고 페달을 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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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활동은 연대에서 시작해 연대로 끝난다.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노조를 만들기로 두근두근 결심할 때도, 손에 힘 꽉 주고 노조 가입원서를 쓸 때도, 노동조합이 비틀거리거나 잘못 방향을 잡지 않도록 토닥토닥 서로를 격려할 때도, 한해 활동의 품을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할 때도, 당장 우리 사업장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도, ‘연대’의 가치는 노조의 페달을 멈추지 않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연대는 그냥 주어지지도 자라지도 않는다. 메마르지 않도록 계속 물을 주고 거름도 주며 가꾸어나가야 한다. 인권교육이 작은 거름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날개 달기 - 바지런한 지부장, 언덕을 오르다

올해 경희의료원 노조 지부장이 된 그녀는 바지런한 사람이다. 새해 첫 노조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대의원들과 나눌 풍성한 교육 밥상을 차리기 위해 그녀는 두 번씩이나 ‘들’이 있는 언덕길을 오르내렸다. 노조활동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의무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새로운 유대와 자기 성장의 장이 되면 좋겠다는 게 그녀의 바람.

위 사진:경희의료원 노조를 일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람이 바지런한 그녀. (출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경희의료원지부)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 총무과에서 일하는 사람, 병원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 전기 만지는 사람…….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노조에 모여 있지만 나이도 성별도 맡은 일도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교육에 참여한다. 노조가 필요하다는 건 잘 알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건 버거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녀와 조율하면서 대의원들의 입맛과 체질에도 맞고 부족한 영양소도 채워줄 수 있는 식단을 짜보았다. 하루 식단으로 부족한 영양분을 모두 채울 수는 없는 법. 욕심을 줄여 이번 교육에선 대의원들이 더욱 자신감을 갖고 노조활동에 임하는 데, 그리고 연대에 관한 마음가짐을 더욱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렇게 경희의료원 노조 대의원들을 위한 하루 식단이 탄생했다.

더불어 날갯짓 1 - 우리 안의 차이 보듬기

먼저 자기의 소중함을 찾아보는 인권 꽃밭을 풍성하게 가꾼 다음,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억압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눈을 감은 채로 펜을 쥐고 옆 사람의 설명에 따라 길을 그려나가는 <길 따라 삼천리>를 하다 보니 우리가 ‘소통’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입장의 차이에 따라 얼마나 일방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가, “잘 하고 있어”라는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알 수 있었다. 신뢰가 없다면 서로의 의지가 충돌하면서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도.

위 사진:소중한 나를 발견하는 꽃밭 만들기와 소통의 벽을 깨어보는 <길 따라 삼천리>. 오른쪽 사진도 경희의료원 노조에서 얻어왔다.

연대를 가로막는 소통의 장벽을 넘어선 다음에는 차별의 장벽을 넘어서는 시간. <다섯 가지 은유의 비밀>은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 HIV/AIDS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 국제결혼으로 이주한 여성, 청소 일을 하는 여성 등 다양한 ‘소수자’들을 드러내는 은유를 찾아보는 활동이다. ‘용역노동자’라는 신분 때문에 조합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병원 청소노동자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저임금에 마땅히 쉴 곳도 없는데다 병원 지하 주차장에 모여 조회를 하는 또 다른 여성노동자들. 현 조합원만을 위한 노조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만나는 순간이다.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우리가 그저 ‘관찰자’ 시선에만 머물러서는 그이들의 처지에 공감하기 힘들다”, “우리 안에도 소수성이 존재한다”라는 데까지 나아갔다.

더불어 날갯짓 2 - 날개를 활짝, 담장을 폴짝

이젠 상황극을 통해 노조활동을 하는 동안 구체적으로 부닥칠 수 있는 갈등상황으로 성큼 들어가 볼 차례. 본격적인 상황극 만들기에 앞서 <릴레이 몸짓 만들기>를 통해 쭈뼛쭈뼛한 몸과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녹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준비운동이 끝났으니 본격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상황극을 펼쳐 보니 왁자지껄 생생하게 갈등상황을 재현하고 대안까지 담아낸 모둠이 있는가 하면, 대안을 미처 찾아내지 못한 모둠도 있었다.

위 사진:릴레이 몸짓 만들기에 이어 본격적인 갈등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아니, 시끄럽게 이게 무슨 짓들이에요? 병원은 환자들이 쉬는 곳이잖아요. 무슨 빨갱이들도 아니고 말이야~.”
“저희는 이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입니다. 지금 무상의료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어요. 병원비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물론 비싸죠. 그렇다고 지금 당장 무상의료가 되는 것도 아니고……. 환자들 안정이 우선 아니에요?”

점심시간 선전전을 하다 보면 환자나 보호자들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게 된다. 아무래도 병원노동자들 입장에서는 환자나 보호자 앞에서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나 보다.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때 노련한 지부장이 환자를 설득해 서명까지 받아낸다. 암 환자 진료비 부담이나 환자 본인 부담률이 낮아진 것도 병원노동자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라는 말에 환자의 분노가 어느새 쑤욱 내려간 덕분이다.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려면 구체적인 말을 준비해야 한다는 데 모두가 마음으로 끄덕이게 되는 순간이다.

“저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근무를 못하겠어요. 근데 수간호사님이 일손이 모자라다고 근무를 못 빼주겠대요. 언니가 노조 대의원이니까 어떻게 좀 해주면 안돼요?”
“내가 대의원이긴 하지만 모든 걸 해결해줄 수는 없어. 나도 어쩔 수 없다, 얘.”

생리휴가를 내려고 해도 인력이 부족해 휴가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가 보다. 아쉽게도 대안을 모둠 안에서 찾아내지 못했다. 대의원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얘기만 해야 하다니 난감한데……. 지켜보던 이들이 하나둘 해결책을 제시한다. “닥쳐서 혼자 해결하려다 보니 대책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닐까요?” “대의원이 나서서 생리휴가 쓰고 싶은 날짜를 미리 알아보고 게시판에 붙여놓고 근무 조정을 요구하면 어떨까요? 당당하게 요구해요.” “다들 너무 빡세다니까. 올해 꼭 인력 충원 요구를 따내자고요. 그래야 여지가 생기지.”

위 사진:임금 단체협상을 앞두고 회유를 목적으로 한 회식이 잡혔다.

“자네 이번에 승진 대상 아냐? 노조 대의원 그거 나서지 말고 적당히 하라고. 오늘 저녁 부서 회식 자리도 빠지지 말고…….”

임금 단체협상 시기를 앞두고 대의원들에게 회유가 들어오는 상황. 모둠에서는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하고 ‘노조와의 의리’를 택하는 경우와 ‘승진’을 택하는 경우, 두 가지를 모두 제시했다. 대의원 활동을 하다 보면 승진은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몇 해 전 파업 참여를 이유로 승진에서 밀린 대의원들이 있었나 보다. “대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진에 불이익을 준다면 노조 차원에서 대응을 해야 하고 우리 노조엔 대응할 힘도 있어요. 미리부터 쫄 필요는 없어요.” “파업 참여자들이 입은 피해가 부풀려서 전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피해의식을 키우고 있어요.” “승진 시기를 ‘4~6년’ 이런 식으로 너무 길게 잡아놓은 규정을 바꾸는 게 중요해요.”

막힌 가슴 속을 확 뚫어주는 뚜렷한 대안을 찾지는 못했더라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시간이 걸리는 일을 구분해 보는 자리를 가진 것만으로도 변화의 물꼬는 터진 게 아닐까.

마음을 맞대어 - 연대를 꿈꾸는 대의원, 연대를 가꾸는 노조

노조활동을 잘 하기 위해서도, 노조 내부에 또 다른 차별과 억압이 똬리를 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사회로부터 지지받는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도, 연대는 살아 꿈틀거려야 한다. 단 하루 교육으로 노조 대의원들의 인권감수성과 연대의식이 성큼 자라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자로서, 노조 대의원으로서 견뎌내야 할 고단한 내일이 그이들 앞에 펼쳐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연대를 당위로서만 되뇌지 않고 대의원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교육 밥상을 기꺼이 준비할 줄 아는 노조라면 다른 내일을 그려갈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98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09일 5: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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