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④] 자유는 목적, 안전은 수단

제3조 생명, 자유, 안전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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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제3조

모든 사람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

3조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선언 기초자 중의 한 사람은 선언 전체의 개념 구조가 18세기 인권철학의 세 가지 주요 사상을 반영한다고 봤다. 1조는 우애의 사상, 2조는 평등의 사상, 3조는 자유의 사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3조는 선언 4~11조로 이어지는 조항들을 규정하는 기본원칙으로 이들 조항들에서 자유의 사상은 점진적으로 확대된다고 봤다.

이에 대해 3조의 ‘자유’의 의미를 더 확대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즉 18세기 이후로 자유의 사상은 훨씬 넓어졌기에, 사회권에 대한 보장을 포함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자유의 의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격을 완전히 발전시킬 권리이며, 이 발전에 필수적인 모든 요소들에 대한 권리를 의미한다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3조의 ‘생명, 자유, 안전’에 대한 존중은 국가에 의한 자의적 박탈로부터 개인을 보호한다는 전통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그 보장과 증진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를 요구한다는 지적이었다.

신체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관련 조항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생명권과 안전을 중심으로 생각해본다.

현대 인권체계에서의 ‘생명권’

근대 인권체계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한 자의적인 생명의 박탈만을 생명권의 문제로 봤다. 생명의 향유를 개인의 ‘타고난’ 권리로 봤고, 국가권력은 이를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물리적 힘에 의해 생명을 위협당할 뿐 아니라 ‘결핍’에 의해서도 생명을 박탈당한다. 근대 인권체계는 ‘개인이 생명을 가진다’는 것과 그에 대한 국가의 불개입을 얘기했을 뿐 인간다운 생존을 영위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와 비교해 현대 인권체계는 ‘인간다운 생존’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생존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사회보장을 비롯한 광범위한 사회정책을 취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가 되었다.

‘생명권’의 진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결핍’뿐 아니라 ‘공포’로부터 벗어나 평화 속에 생존할 권리가 중요해졌다. 이를 위해서는 침략전쟁을 부정하고, 군비경쟁이나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는 외교정책을 지향하는 것 등이 생명권에 부응하는 국가의 책무가 됐다. 평화적 생존권과 더불어 ‘환경권’도 생명권의 현대적 얼굴이다. 환경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로 떠올랐다.

사형제는 여전히 진행형

선언 기초 과정에서 사형제 폐지를 생명권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은 채택되지 못했다. 많은 대표자들이 사형제 폐지가 생명권의 확장이라는 점을 대놓고 반대하지 못했지만 국내의 정치적 이유로 대놓고 지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선언에선 사형제 금지를 언급하지 못했다. 1989년에 와서야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가 만들어진다.

현재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지난 10년 또는 그 이상 기간 동안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은 133개국이며, 2007년 12월 유엔총회는 사형제에 대한 모라토리엄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 결의안에 대해 ‘사형은 인권문제가 아니라 사법정의의 문제고, 국가는 자국의 범죄자를 어떻게 다룰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며 공공연한 반대 의견을 밝히는 국가들이 여전히 있다. 또한 사실상의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던 한국에서 다시 존치론이 등장하는 걸 볼 때 사형제는 여전히 진행형 문제이다.

기술발달과 생명권

선언 기초 과정에서 생명권의 시작점과 종결점에 대한 논의 역시 결론을 맺지 못했다. 인공유산의 문제, 안락사 이용 문제 등 삶과 죽음을 다루는 문제들은 쉽게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에 선언은 이에 대해 침묵했다. 그러나 선언이 침묵했다고 해서 이들 문제를 인권이 회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술발달로 인한 생명권의 위협요소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배아실험, 인공수정, 태아 성감별법, 장기 판매와 매입, 이종 간 장기이식, 감시 장치, 사생활 침해의 데이터뱅크화, 현대기술로 인한 환경의 파괴, 유전자 조작 농작물 등이 모두 생명권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드는 문제들이다.

과학기술을 그저 낙관하거나 전문가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문제를 공론화하고 연구결과에 함축되어 있는 도덕적 의미를 분석하며 그것을 강제할 국내외적 감시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영위할 권리, 과학기술의 발전방향이나 우선순위, 속도 등을 정하는 기술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 과학정보에 대할 알 권리 등이 새로운 인권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999년 세계과학회의는 ‘과학과 과학적 지식의 이용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고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 과학 연구와 과학지식의 이용은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만” 하며 “모든 과학자들은 높은 윤리적 기준을 설정해야 하며, 국제인권문서들에 명시된 관련규범들에 근거한 윤리 규약이 과학 전문직에 확립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소 막막할지라도 기본 방향성에 대해서는 논점이 모아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유전적·생물학적 존재 이상의 전인격적 존재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미 자행된 인권침해 사례의 경험에 대한 반응을 넘어서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걸 예방하기 위한 관점에서 논의한다’,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기술을 상업화하려는 민간 기업이나 기술 적용을 원하는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인권에 대한 주요한 도전이 도발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유전자로 인한 차별가능성에 주목한다’, ‘기술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불평등 심화에 주목한다’는 등이 그것이다.

자유와 안전은 목적과 수단

‘안전(security of the person)'은 국가에 의한 자의적인 자유 박탈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의미이다. 여기서 자유와 안전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이다. 즉 안전(또는 안보)정책은 자유권에 대해 복무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흔히 자유냐 안전이냐의 이분법적 접근이나 자유와 안전이 동질의 가치를 갖는 것처럼 슬쩍 바꿔치기 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전통적인 ‘국가안보 대 자유’의 대립 주장이 그러하고, 9·11 이후 소위 ‘테러와의 전쟁’에서 사용되는 논리도 그러하다. 이는 자유와 안전을 거래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위험하다. 목적과 수단을 맞바꾸자는 건 말이 안 된다.

국가는 원래 개인의 생명, 자유로운 의사표현, 결사의 자유에 관한 권리 등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2004년 8월 국제법률가위원회(ICJ)는 베를린선언을 통해 이런 국가의 의무가 권리를 해치지 않으며 안전을 보호할 책임과 갈등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가 대테러조치의 명분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으며, 현재의 인권법과 인도주의법이 국가가 인권에 따른 법적 의무를 다치게 하지 않고도 대테러조치를 취할 충분한 유연성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법의 지배와 인권이 후퇴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메리 로빈슨 전 유엔인권고등판무관도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비난했다. 9·11은 “반인류적 범죄”의 관할 하에 있는데 ‘테러와의 전쟁’이란 용어의 사용은 사악한 의도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언어를 택하면서 질서와 안보가 다른 모든 고려사항보다 으뜸이라는 강조점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축소와 관련되기에 위험하다고 봤다. 계속된 지적은 다음과 같다.

“9·11은 이미 폭력, 질병, 극빈에서 오는 일상적 위험에 시달리고 있는 수백만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들의 불안전은 어디서 다음 먹을 것 구하나, 어떻게 죽어가는 아이의 약을 구할까, 총을 가진 범죄자를 어떻게 피할까, 열 살짜리 에이즈 고아로서 어떻게 생계를 꾸려 가나 하는 것이다.

지난 6년간 대략 2만5천여 명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전 세계에서 사망했다. 같은 기간 기아, 말라리아, 그리고 기타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수와 비교해보라. 그 수는 하루 2만5천여 명에 가깝다. 발전을 위한 지원은 연간 6백억 달러, 군사지출은 9천억 달러다. 밀레니엄발전목표(MDG) 실천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연간 500~600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

진정으로 안전한 세상을 위하여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해야 한다. 즉, 인간안보의 성취이다. 이것은 인권과 인간발전에 대한 새로운 헌신을 요구한다. 국가안보를 넘어선 안전에 대한 광의의 이해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한 인간안보란 빈곤과 절망으로 극단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고, 이로 인해 공포와 강압적 안전을 거래하는 일이 없는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다. 공포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 활동을 줄인다거나 공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거나 공포 때문에 총과 무기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불행히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이렇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은 인간안보의 핵심을 ‘보호’와 ‘자력화’라 했다. 보호는 빈곤을 경감시키고 포괄적인 발전을 성취할 국가의 책임(때로는 국제사회의 책임)을 말하는 것이고, 자력화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인민의 능력이다. 자력화된 인민은 자신의 존엄성이 침해받을 때 그에 대한 존중을 요구할 수 있다. 지역적인 많은 문제를 다루고 일할 새로운 기회를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타인의 안전을 위해 결집할 수 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가 안전의 목적이다. 선언 3조의 ‘생명, 자유, 안전’은 상호 연결돼 있는데 따로 떼어내서 거래하자는 말은 속임수이기에 조심해서 경계하고 또 경계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http://khrrc.org)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99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16일 1: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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