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고리대 계약’에 갇힌 나

[기획] 불운의 스타 글리벡 (3) 계약

강아라·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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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약이 없어서 죽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죽는다는 환자들의 절규. 그러나 의약품을 둘러싸고 어떤 문제들이 있어 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먹을 수 없게 됐는지를 알기란 쉽지 않다. <인권오름>은 의약품의 연구, 개발, 생산, 공급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기사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한국에서 의약품접근권 운동의 출발점이 된 의약품 '글리벡'. '불운의 스타 글리벡'이 들려주는 우여곡절 회고록을 통해 의약품에 대한 우리의 권리가 어디에서 가로막히고 있는지 살펴본다.

2001년 5월 1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허가를 받으며 나는 드디어 데뷔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된 거다. 그런데 그 때 소속사인 노바티스가 내 눈 앞에 무슨 서류 한 장을 던져주더군. 그것 보는 순간 멍해지더라.

2만 5천 원 아래로는 못 내놔

FDA 승인을 받기가 무섭게 노바티스는 월 2,400달러 이하로는 절대 나를 선보이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를 했지. 그리고 전 세계 순회공연의 첫 번째 방문국인 한국에서 내 소속사는 나를 한 알 당 2만5천 원에 팔겠다며 ‘보험약제 등재 신청’을 했다. 보통 환자들이 하루에 네 알에서 여덟 알을 투약해야 하니, 하루에 10만 원에서 20만 원, 한 달 평균 약값이 300~600만 원이라는 골 때리는 계산이 나오더군. 내가 무슨 금가루야? 명품 핸드백이야? 성인의 하루 물 섭취량이 못해도 2리터는 되어야 한다는데 그 값이 10만 원에서 20만 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 사진:한국에서 한 알에 25,000원을 부른 노바티스는 환자들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친다.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그래서 내가 따졌어. 당신이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나는 ‘약’이라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약’이니까, 내 삶을 가두지 말라고. 오매불망 나를 기다렸던 환자들의 품에 안기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표였는데, 나에게 해준 것도 별로 없는 소속사가 이걸 막아버리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지.

그랬더니 노바티스가 내 눈 앞에 보여준 그것! 말도 안 되는 내 몸 값의 근거! 내가 세금을 낸 국민들이 아니라 노바티스의 소속이 된 그 근거! 바로 ‘특허’였다. 출생, 아니 계약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었지.

지적재산권 협정, 제약회사가 초안을?

노바티스와 나와의 계약 내용, 즉 ‘특허’란 노바티스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를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독점 판매권’을 갖는다는 이야기야. 독점 판매권이 독점 약가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지. 아니, 무슨 자본주의가 ‘독점’을 인정하나? 자본주의는 ‘경쟁’을 통해 굴러가는 제도 아니었어? 이해가 안 가서 내가 또 따졌지. 그랬더니 노바티스의 친구 녀석이 대뜸 튀어나와 이야기를 해주더군. 녀석의 이름은 ‘화이자(Pfizer)’라고, 이 바닥에서 매출 1, 2위를 다투는 초거대 제약회사다.

“아픈 사람들은 ‘신약’을 기다리잖아? 신약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고 많은 연구가 필요한 거, 너도 잘 알지? 그래서 신약에 대한 연구·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특허’라는 제도가 있어야 해. 또, 연구실에 틀어박혀 피땀 흘려가며 약을 만들었는데, 보상을 해줘야 될 거 아니야? 누가 마음대로 베껴서 돈 벌면, 만든 사람은 뭐가 되냐고? 게다가 20년만 기다리면 특허가 된 발명과 관련된 기술은 누구라도 이용할 수가 있다고.”

“뭔 소리 하냐? 노바티스 저 녀석은 나 개발하는 것도 꺼려했던 녀석이야. 보고도 몰라? 고혈압이나 관절염, 당뇨 같이 ‘잘 팔리는 병’에만 관심 있어. 게다가 20년이란 기준은 또 누가 만든 기준이야? 언제는 12년(1987년 이전 한국)이었다가, 어느 곳에서는 또 17년(TRIPs 이전 미국)이었다가, 이제는 또 20년이라고? 약이 산삼처럼 오래 묵힐수록 좋은 것도 아닌데, 무슨 기준으로 그렇게 고무줄 늘리듯 늘리는 거야? 이런 저런 이유들로 더 이상 쓸 수도 없는 약을 20년이나 보호해주면 그게 강시지, 약이야?”

“넌 참 글로벌 마인드에 프렌들리 하지 않구나. 이건 전 세계적 규칙이다. 1995년에 TRIPs 협정(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이 체결되면서 특허뿐만 아니라 저작권 등 모든 지적재산권 협정들을 포괄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단일한 지적재산권 체계를 갖추도록 만들었지. 20년 보호도 이 협정에서 언급한 거니 토 달지 말고 따라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그 TRIPs라는 거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기준이냐고!”

“바로 내가 아이디어를 제공했지! 머크(Merck),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 뿐만 아니라 아이비엠(IBM)이라는 친구들과 함께 TRIPs의 초안을 만들었다!”

“뭐야?! 그럼 결국 니들이 돈 벌려고 만든 판이잖아!”

광고에서는 코카콜라 저리 가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노바티스를 처음 만났을 때, 녀석이 나에게 특허라는 굴레를 덮어씌우면서 한 이야기가 있다. 도대체 그 이유 모를 20년이라는 소속 기간에, 어마어마한 가격 조건이 붙는 ‘종신고리대 계약’인 줄 몰랐던 시절이었지. 녀석이 하는 이야기는 연구·개발비가 많이 드니까, ‘특허’가 필요하다고 했어. 자기네도 기업인데 비용을 회수할 이윤은 추구해야 하지 않겠냐는 거야. 자기들은 망할 각오를 하면서 나를 만든다더군. 그런 줄만 알았지. 하지만 그간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녀석들은 엉뚱한 곳에 돈을 쓰면서 다녔다.

백번 양보해서 국민의 세금이 쓰였던 것 차치하고, 연구·개발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 인정할게. 그런데 제약회사들의 예산 보고서에서 가장 큰 항목이 연구·개발 비용이 아니라 그것의 2배가 넘는 마케팅 비용이라면, 우리의 가격에 대한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보통 광고 하면 생각나는 제품이 ‘코카콜라’잖아. 그런데 미국의 제약회사인 쉐링-프라우(Schering-Plough)가 1998년 항 알레르기 약물인 ‘클래리틴(Claritin)’을 광고하느라 쓴 돈이 1억 3천6백 만 달러다. 이 천문학적인 금액은 같은 해에 코카콜라 광고비용보다 많은 액수야.

더욱 중요한 건 이 모든 비용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들의 수익성이 엄청나다는 것이지. 노바티스의 말처럼 망할 각오를 하며 약을 만드는 게 아니란 이야기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얘들은 조금이라도 망조가 보이면 손을 대지 않아. 어느 정도로 우리 소속사들이 돈을 잘 버냐고? 2002년 지 선정 500대 기업에 오른 미국 10대 제약회사들의 평균 순이익률은 매출액(2,170억 달러) 대비 약 18%다. 이거 어마어마한 수치야. 포춘 500에 오른 다른 모든 기업들의 순이익률 중간 값이 겨우 매출의 3% 수준이니까. 요즘 잘나간다고 소문난 은행업조차 매출 대비 순이익률은 13.5%일 뿐이라서 2위로 밀렸을 정도다. 이 해에 포춘 500에 오른 10대 제약회사의 순익을 모두 더한 액수인 359억 달러가 나머지 490개 기업 순익의 합인 337억 달러보다 크다.

같은 해에 연구·개발에 지출한 비용은 매출의 14%를 조금 넘는 310억 달러, 순이익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다. 마케팅 비용은 얼마였냐고? 매출의 31%인 670억 달러가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됐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마케팅 비용은 약값에 그대로 반영돼. 연구·개발 비용의 회수가 아니라 광고비 회수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위한 가격 책정이나 다름없지.

위 사진:노인용 50대 의약품을 판매하는 미국 제약회사들의 2000년 회계 결과 (source: Families USA, Off the Charts: Pay, Profits and Spending by Drug Companies, 2001.7.)


“나도 약”, “나도~” “나도~”

대단한 약이니까 광고도 대단하게 한 거 아니겠냐고? 제약회사들이 개발해내는 약들이 모두 나처럼 진짜 ‘혁신적인 신약’이라면 오히려 광고·판촉에 엄청난 돈을 들일 필요가 없겠지. 입소문만으로도 불티나게 팔릴 거다. 그런데 언제나 빈 수레가 요란한 법 아니겠어? 이전에 나온 약보다 별로 낫지도 않은 재탕, 삼탕에 중탕한 약들을 ‘블록버스터’로 만들기 위해 소속사들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거다.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약들을 조금씩 변형시킨 그런 약들을 우리는 이렇게 불러. “나도 약(me-too drug)”

요즘 사방팔방에서 “나도~”, “나도~”하는 소리 때문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2002년 미국 FDA에 승인된 87개의 의약품 중에서 오직 7개만이 이전 약보다 나은 약일 정도야. 나머지 약들은 이전 약보다 별반 나을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약이라는 거지. 미국 제약협회 자료에 따르면 연구·개발비의 70%가 ‘나도 약(me-too drug)' 개발에 쓰이고 있다고 하니, 혁신성은 무슨!

“나도 약”이라고 외치는 이 약들은 기존의 약보다 더 싸지도 않아. 그런데 도대체 얘들은 왜 계속해서 등장하는 거지?

내 친구 중에 프로작(Prozac)이라고 있어.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의 소속사는 일라이 릴리(Eli Lilly)인데 소속사가 하도 혹사를 시켜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지. 원래 이 녀석의 소속기간은 2001년 8월에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 소속사는 계약만료 시점을 여섯 달 앞두고 ‘일주일에 한 번 먹는 프로작’으로 변신 같지도 않은 변신을 시켰고 소속기간을 늘렸다.

어느 날 길 가다가 우연히 프로작을 만났지. 그런데 이번에는 옷 색깔이 바뀌었더라고. 녹색에서 분홍색으로 말이지. 별 상관 않고 인사를 했지. 그런데 이 녀석이 대뜸 나보고 “누구세요?” 이러는 거다. 그러면서 자기는 프로작이 아니라 ‘월경 전 불쾌 장애’에 쓰이는 사라펨(Sarafem)이래. 같은 약에 용량도 같은데 말이다. 아, 프로작과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약국에서 프로작보다 세 배 반이나 더 비싼 가격에 팔리니까.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생리 증후군에 쓰이는 약이 무슨 소아용 시험까지 받았다나. 변신의 귀재가 따로 없어. 내가 그래서 왜 그렇게 사냐고 물었더니 프로작, 아니 사라펨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지.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 녀석, 이제 자기가 우울증 치료제가 아니라 요구르트인 줄 아나 봐.

특허 따기보다 특허 피하기가 특기가 될 판

프로작 같은 애들 보면 제약회사들이 말하는 ‘생명 연장’은 인류의 생명 연장이 아니라, 특허의 생명 연장인 것 같다. 샤론 레빈(Dr. Sharon Levine)이라고, 카이저 퍼마난테 메디컬 그룹(Kaiser Permanente Medical Group)의 부회장이 있는데 2002년 피터 제닝스의 "ABC 스페셜"이라는 방송에 나와 이런 이야기 하더라.

“내가 제약회사라고 칩시다. 특허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 약의 구조에서 분자 딱 하나만 바꾸면 특허를 20년 연장할 수 있고, 매일 먹는 프로작(Prozac)보다 일주일에 한 번 먹는 프로작이, 또한 차세대 프릴로섹(한국명 로섹)이 훨씬 좋은 약이라고 의사와 환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데, 왜 새로운 약물을 찾는 불확실한 노력에 돈을 쏟아 붓는단 말입니까?”

아까 화이자가 한 이야기 생각나지? 보상을 위해, 혁신을 위해 특허가 필요한 거라고. 하지만, 그 보상은 ‘광고에 대한 보상’이고, 그 혁신은 ‘특허기간 연장 기법의 혁신’인 것 같지 않아? 종신고리대 계약의 모든 것을 우리들을 둘러싼 특허가 보여주고 있어.

특허는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보상’이 아닌 ‘독점’을 위해 기능하고 있어. 의약품의 경우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 누군가가 특허기술을 모방하지 않았더라도 특허 신약과 동일한 기술이라면 그 사람은 ‘보상’을 받기는커녕 아예 생산조차 할 수 없는 절대적 독점권이기 때문이야. 특허가 만드는 이런 ‘승자 독식 구조’는 투자와 노력의 중복이라는 비효율성을 야기하지. 새로운 발명을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기존의 특허를 ‘우회’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거든. 그 결과 이중, 삼중의 개발비용이 발생하게 돼. 세상에 이런 비효율이 또 어디 있겠어? 그래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하는 리처드 스톨만은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지뢰밭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고 하더군. 이런 저런 ‘우회’를 하느라 시간 낭비, 돈 낭비 하게 된다는 거야.

공유할수록 얻는 게 많다

지난 세기 3대 과학 혁명이라 불리는 분자 생물학, 핵에너지, 인터넷은 모두 공적 자금이 투여된 연구 결과를 수많은 과학자가 자유롭게 공유하면서 얻은 것이래. 특허와 같은 상업적 이용을 위해서, 또는 그것을 통해 개발된 기술이 아니다. 계속 이야기하지만, 나 역시 비슷한 탄생 배경을 가지고 있어. 그런데 도대체 노바티스는 무슨 배짱으로 나한테 1알에 25,000원이라는 가격을 매기는 건지……. 덕분에 환자들은 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되었고, 나는 소속사 잘못 만난 탓에 주위에 인적이라고는 없는 재수 옴팡지게 없는 불운의 스타가 되어버린 거지. 40년을 갈고 닦은 내 재주를 마음껏 써보지도 못하게 될 상황이 닥친 거야.

나와 노바티스가 맺은 이 ‘특허’라는 종신고리대 계약 이론은 결국 한국의 환자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지. 이론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현실을 이론에 꿰어 맞춰야 할까? 이론을 현실에 맞게 뜯어 고쳐야 할까? 한국의 환자들은 후자 쪽을 택했다.
덧붙이는 글
강아라 님은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홍지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99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16일 10: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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