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한, 장애인에 의한 인권의 재구성

[벼리2]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과 인권운동의 과제

명숙
print
아침에 일어나 휠체어로 학교를 가려면 수없이 넘어야 하는 턱 때문에 이동시간이 세 배 이상 걸려 혼자서는 집을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현실.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고 싶어도 입사 시험에서 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시험시간이나 시험지가 구비되지 않아 합격하기 어려운 현실. 친구를 만나고 싶어도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만나기 어려운 현실. 언어 표현 능력이 달라서, 어눌해보여서 용의자로 쉽게 지목받는 정신지체장애인의 현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은 차별을 겪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차별을 겪어본 사람과 일생 동안 몇 번 겪어본 사람 간에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장애인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차별과 인권침해를 겪는다. 그래서 많은 장애인들이 무엇이 차별인지, 무엇이 인권침해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수많은 권리들을 빼앗긴 채 살아간다. 이러한 장애인의 현실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나온 배경이다.

기나긴 싸움으로 당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

4월 11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들이 위험가득한 지하철 철로를 점거하면서, 휠체어 바퀴가 닳도록 기나긴 도로 행진을 하면서 싸운 결과 만들어진 법이다. 그래서 몇몇 복지행정가에 의해 시혜적으로 만들어진 법과 다르게 장애인이 살기 어려운 현실을 토대로 장애인의 실질적 요구를 반영한 법이다.

위 사진:4월 23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열흘 동안 모인 장애인 차별 진정사례 156건을 장애인들이 함께 국가인권위에 진정하고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자신의 욕구와 권리를 실현하면서 살지 못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춘 법이다. 장애란 개인이 단지 신체적, 정신적 기능에 질곡이 있는 상태여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특정인’들이 생활하기 어렵도록 ‘배제적인’ 사회관계를 만들기 때문에 발생한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을 배제하고 있는 차별의 영역과 차별의 유형을 정리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실질적 평등을 향한 반차별

법에 명시된 차별의 유형은 직접차별(장애인을 정당한 이유 없이 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경우), 간접차별(형식상으로 공정한 기준을 적용했더라도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가 발생한 경우),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에 의한 차별(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과 같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장애인에게 편의시설이나 서비스 등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 광고에 의한 차별(광고의 내용이 장애인에 대한 배제·거부 등 불리한 대우를 나타내는 경우)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차별은 직접적으로 특정인을 거부하는 직접 차별에 한정되었다. 그 결과 장애가 발생하는 사회적 맥락과 현실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156명이 진정한 사건에는 장애인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와 배제도 있었지만 장애인의 특수함을 반영하지 않은 정책으로 인한 차별도 있었다. 간접차별의 예로 당시 진정인 중 한 명인 시각장애인의 요구를 보자. 그는 임용고시를 볼 때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르게 시험용지에 써 있는 글자의 크기로 볼 수 없으니 컴퓨터 텍스트 파일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야 공정한 시험이라고 주장했다. ‘동일한 시험지’가 그에게는 ‘차별’이며 ‘부당한’ 대우이다. 서로 다른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에게 동일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차별이다. 형식적 평등이 ‘동일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라면 실질적 평등은 서로 다른 조건과 처지를 고려해 ‘다르게’ 대우할 때 보장될 수 있다.

누군가 선의이든 악의이든 의도적으로 차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아 암묵적인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는 보장해야 한다.

어떤 미래를 그릴 것인가

한 사회에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바꿔야 하며 그동안 사회구성원의 몸에 진득하니 밴 차별의 ‘관습’을 바꿔야 한다. 몇 세기 동안 계속된 차별을 바꾸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들며 사람들의 차별 관습을 바꾸려면 수많은 ‘아우성’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차별의 영역으로 제시된 영역은 사회 전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고용, 교육뿐 아니라 시설물의 접근 및 이용과 정보접근 및 의사소통에 대한 차별금지 등을 포함하고 있다. 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하며,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며, 구청에 가거나 식당에 갈 때 가로막았던 턱, 계단들을 제거해야 하며 장애 특성에 맞춰 수화나 문자 등의 정보이용 및 의사소통에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충족하려면 도로를 정비하고 건물을 보수해야 하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선하고 행사 때는 수화통역사나 문자 통역을 준비해야 한다.

위 사진:장애인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 그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의의 중 하나다.

이렇듯 몇 개의 차별 영역만을 없애기 위해서도 엄청난 재정이 들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시행령은 편의제공과 문화예술과 관련해 적용 시기를 1년에서 8년 정도 유예시켰다. 따라서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작동하는 현대 자본주의사회가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이러한 차별금지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가 남는다. ‘효율성’의 논리로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운영을 해온 이 사회가 장애인차별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효율성’의 논리를 뛰어넘어야 하기에 장애인 차별을 없애나가는 것은 ‘새로운 사회 상’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좋은 사회란 ‘효율성’에 의해 사회의 부가 늘어나고 ‘효율에 적합한 사람만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특성에 맞게 삶을 살 수 있도록 제약이 없는 사회이다. 그런 점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효율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인간의 권리, 인권의 논리를 구성하고 있다.

새로운 시간의 구성, 새로운 공간의 구성

빠른 시간에 많은 부를 축적해 자본의 회전율을 높여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돈이기에 ‘빠름’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빨리 움직일 수 있어야 하며 쉬지 않는 기계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는 손놀림이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비장애인’ ‘성인’중심으로 사회가 구성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애인들과 함께 호흡하는 사회라면 빠름보다는 ‘함께’를 고려하여 ‘여유로운’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로 인해 시간은 더 이상 특정 논리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

건축 환경과 물리적 환경에 있어서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직접 차별보다는 간접 차별의 형태로 대부분 나타나게 된다. 패스트푸드의 현대사회에서 공간(작업공간과 휴식공간)은 최대한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작업대 높이와 위치, 손님들이 최대한 빨리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좌석배치, 소비를 충동하고 자극시킬 수 있는 방식의 물건 배치 등으로 공간이 배치된다. 만약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이러한 시간 및 공간 구성은 변화될 수밖에 없다. 실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고용영역의 편의제공에는 ①시설·장비의 설치 또는 개조, ②재활, 기능평가, 치료 등을 위한 근무시간의 변경 또는 조정, ③훈련 제공 또는 훈련에 있어 정당한 편의 제공, ④지도 매뉴얼 또는 참고자료의 변경, ⑤시험 또는 평가과정의 개선, ⑥화면낭독·확대 프로그램, 무지점자단말기, 확대 독서기, 인쇄물 음성변환 출력기 등 장애인보조기구의 설치·운영과 낭독자, 수화 통역자 등의 보조인 배치가 포함된다.

인권법의 발전과 조문의 현실적 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인권법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먼저 시정명령권이 부여되어 국가인권위의 수없는 권고가 현실적 힘을 가지지 못했던 것에 비해 한 단계 진전했다. 실질적인 차별시정을 위해서 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그 피해의 정도가 심각하고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무부장관은 피해자의 신청에 의하여 또는 직권으로 차별행위의 중지, 피해의 원상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 등의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 시정명령이 지켜지지 않으면 과태료 등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임신·출산·양육 등 모·부성권에 있어서의 차별 금지와 성, 가족, 가정 등에서 벌어지는 차별 금지 등 국가인권위원회법에 포함되지 않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어 차별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동안 장애인의 임신·출산·양육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 지원은 없었으며 장애인은 입양할 수 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고려되지 않아왔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성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원책을 강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가족·가정 및 복지시설 등의 구성원들이 장애인의 의사에 반해 과중한 역할을 강요하거나 의사결정과정에서 장애인을 배제할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을 깨뜨리는 데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역할이 기대된다.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가족과 시설에서 벌어지는 차별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중 차별을 겪고 있는 장애아동과 장애여성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고 있어 차별에 대한 구체적이고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실시되는 인권국가의 외양을 띄게 된다. 하지만 법이 ‘글자’가 아닌 살아있는 ‘힘’으로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건너야 할 것이 많다. 차별시정기구로 되어 있는 국가인권위의 장애차별인력이 보강되어야 한다. 국가인권위가 전담인력 25명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작은 정부’의 구호아래 추가 인력배정을 하지 않아 7명이 인원이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리고 정부는 2006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되고 올해 발효되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변화를 담아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들의 뿌리 깊은 편견을 바로잡아야 한다. 아직도 많은 개그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은 ‘놀림’이나 ‘웃음거리’로 묘사되고 있으며 장애인을 폄하하는 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광고에 의한 차별 등 생활 문화 속에서 벌어지는 차별은 장애계의 애초 요구보다 많이 후퇴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면 우리사회의 인식을 바꾸어내는 인권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의식하지 않은 차별행위를 할 수 있다.

많은 인권단체들이 아직까지 휠체어 장애인이 드나들 수 없는 건물에 입주해있고 이동에 필요한 장비를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홈페이지에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재정 부족이 이유인 경우도 있으며 인력부족이 이유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집회시위 문화나 교육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의 존재를 빠뜨리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편의를 이유로, 장애인의 숫자가 많지 않을 거라는 짐작으로, 시각·청각 장애인이나 휠체어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정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미루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운동사회에도 부지불식간에 스며든 ‘효율’과 ‘속도’의 논리로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볼 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인권운동에 던진 과제를 피부로 느끼고 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http://www.sarangbang.or.kr)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01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29일 17:22:41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