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심의를 심의한다

[벼리1] 인권영화제가 거리로 나가는 이유

김일숙·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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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검열이 엄존했던 1996년 인권영화제는 표현의 자유를 기치로 닻을 올렸다. 인권영화제는 사전심의를 거부하는 가운데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의 모든 인권침해 현장을 고발하고, 인권의식과 감수성을 전파했다. 그렇다보니 인권영화제 상영작은 영화 전문 상영관이 아닌 대학 강당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 이적표현물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대표가 구속되자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하듯 영화를 상영한 적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다양하게 활동하던 운동의 힘으로 영화진흥법이 재개정되었고, 국가에 의한 사전검열은 형식상 폐지되었다. 2001년부터 인권영화제도 대학이 아닌 영화 전문 상영관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위 사진:1997년 제2회 인권영화제가 진행되고 있는 홍익대학교 정문을 경찰이 봉쇄하고 있다.
그러나 제12회를 맞는 인권영화제는 올해 다시 거리로 나선다. 국가에 의한 사전검열은 사라졌지만, 자본은 돈의 힘으로 문화의 다양성이 소통될 수 있는 공간을 차단하고, 자본이 유통되지 않는 문화 창작물을 사장시키고 있다. 국가는 ‘심의’라는 이름으로 창작 및 상영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행정규제를 일삼는다. 그래서 영화관이 넘쳐나는 시대, 인권영화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상영관을 구하지 못해 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영비법, 검열의 잔재 남아

2006년 제정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아래 영비법)은 국민의 문화생활 향상과 영상물의 질적 향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영비법이 기존 제도와 확연히 다른 점은 사전 검열제도를 폐지하고 등급분류를 심의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영비법에 따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영화는 상영등급 분류를 받아야 한다(29조 1항).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가 아니므로 법해석에 따라 상영 등급분류를 받을 의무는 없다. 그러나 영비법은 ‘누구든지’ 상영 등급을 분류 받지 아니한 영화를 상영하여서는 아니 된다(29조 3항)라고 못 박고 있어,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 및 징역과 같은 벌칙을 각오해야 한다(94조).

이렇듯 모든 영화에 대한 ‘상영 등급 분류’의 강제성은 등급분류를 받지 않는 영화와 관객이 만날 수 없게 한다. 왜냐하면 상영 등급 분류를 받지 않는 인권영화제에게 과태료 및 징역과 같은 벌칙을 무릅쓰고 영화 상영관을 대여해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과 같이 국가가 앞장서서 영화를 가위질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상영할 경우 강제적인 행정처분이 뒤따르고, 등급분류를 받지 못한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상황을 고려하면 여전히 ‘검열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영비법은 등급분류를 받지 않는 영화에 관해 일부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29조 1항). 대가를 받지 않고 상영하는 단편‧소형 영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추천을 받은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 문화관광부 장관이 등급분류가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영화는 등급분류를 면제받는다. 그러나 이 경우도 등급분류 면제 대상을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천하는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나 ‘문화부 장관이 등급분류가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영화’로 규정하고 있어 검열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영화의 내용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 경우 이는 형법으로 사후적인 처벌이 가능하다. 따라서 국가가 사전에 등급분류 면제 추천권을 행사할 게 아니라 인권영화제와 같이 비영리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 실험적으로 제작되는 창작물, 예술영화전용관 같은 특정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상물에 대해서는 등급분류를 면제해야 한다. 예외조항만으로는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문화권 향유를 보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일부 예외 조항을 두고 문화 창작자와 수용자에게 틈새에서 소통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문화향유자들이 서로 자유롭게 만나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큰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검열의 또 다른 이름 등급 심의

현재 등급분류 심의는 상영되는 영화를 어느 나이까지 볼 수 있는지 구분하는 수준이다. 일견 등급분류는 과거 국가권력이 자행한 사전검열에 비해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나, 사회적인 소통의 기능으로 자리잡아야할 심의제도는 자기 기능을 갖지 못한 채 검열제도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상태이다.

위 사진:1996년 사전검열을 거부하고 이화대학교 강당에서 관객을 만난 제1회 인권영화제. 표현의 자유는 창작자와 수용자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문화연대 이원재 활동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가권력의 입장과 대응방식은 크게 변화했고 수많은 국가 검열기관들은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각종 위원회로 전환되었지만, 한국사회에서 검열의 질서를 심의의 질서가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검열제도는 국가권력을 가로질러 자본에 의한 검열 즉 표현자체의 구조적인 봉쇄까지 확장하고 있으며, 문화 표현과 재현에 대한 구체적인 심의정책에 있어서 청소년보호, 가부장적 보수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등의 강화를 통해 일상적인 통제와 검열의 질서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 국가가 사전검열을 통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관리해왔다면, 이제 국가는 민간위원을 앞세우고 ‘청소년보호’라는 명분을 통해 모든 표현물을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쏟아지는 표현물과 다양한 매체가 진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심의를 통해 ‘청소년의 보호’에 악영향을 미칠 창작물들을 골라낼 수 있을까? 이미 현실에서 청소년들은 실시간으로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서든, 19세 이상 관람가 영상물들이든 너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이유를 들어 영상물에 대한 규제와 통제를 일삼는 것은 검열이라는 옷을 다르게 입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민간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진행한다고 해도, 형식적인 절차라고 해도, 강제적이고 일률적인 심의는 검열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심의’가 통제나 규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소통을 촉진하는 성격을 지니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심의의 사전적 의미는 “덮여진 사물을 자세하게 드러내 조사하고 그럼으로써 뜻하는 바를 올바르게 밝혀내기 위한 논의의 과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규찬 교수는 심의의 과정을 “가려져있던 사물의 참된 의미를, 말을 통한 의논과 대화의 과정을 통해, 자세히 밝혀내는 실천”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서 사회적인 소통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심의가 단지 그 사회의 주류적인 가치관을 걸러내는 과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 문화정책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문화권을 향유할 수 있는 삶의 질서가 구성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다수가 지배하는 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사회적 소수자와 소통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심의제도는 강제적인 행정제도가 아닌 문화향유자들에게 영상물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으며, 매체 및 표현물의 성격에 따라 심의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등급제와 같은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

제12회 인권영화제는 오는 5월 30일, 아직은 어느 거리일지 모르는 ‘어떤’ 장소에서 개막한다. 지난 13년간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인권영화제는 영비법이 허용하는 작은 틈새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 문화공공성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작업은 인권영화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올해 인권영화제는 문화운동가, 영화인, 문화 민주주의의 안에서 자유를 찾는 일반 시민들과 함께 ‘거리의 소통 공간’을 펼치고 싶다. 국가가 단지 침해하지 않음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대를 넘어, 자본으로부터 포위된 문화공공재를 모든 창작자와 수용자에게 개방해 문화권을 향유할 수 있는 제도를 함께 만들고 싶다.
덧붙이는 글
김일숙·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http://www.sarangbang.or.kr)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01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29일 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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