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나로부터? 나에게로?

[발로 걷는 평화교육] 평화교육을 준비하면서

미니
print

<편집자 주> 국제연대운동단체 ‘경계를 넘어’는 올 3월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평화교육프로그램과 대안학교의 평화수업 한 꼭지를 맡아 진행했다. 강연 형태와는 다르게 특정한 주제로 연속 강좌를 맡게 되면서 ‘경계를 넘어’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부터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까지 고민하게 되었다. <인권오름>은 놀이터에 네 차례 기사를 실어 ‘경계를 넘어’가 ‘평화교육’의 ‘경계’에서 나누는 고민과 그 과정을 담는다.

‘경계를 넘어’는 그동안 주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등 전쟁이나 군사 점령과 관련된 활동을 해왔다. 전쟁 관련 정보를 만든다거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한다거나 거리에서 캠페인을 한다거나 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우리끼리만 하고 있는 거 아냐?”

활동하는 사람들 몇몇이만 늘 말하고 생각하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여럿이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하면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되었고 그게 ‘교육’으로 이어졌다. 사람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얘기하다 보면 우리끼리가 아니라 ‘우리 함께’가 될 거고 세상을 바꾸는 더 좋은 방법도 찾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어느 게 먼저일까?

위 사진:미니와 평화교육을 나눈 학생이 함께 웃으며 사진 한 장.
교육 내용이 아무래도 전쟁이나 팔레스타인, 이라크 뭐 그런 것들이다 보니 청소년들이 평소에 듣거나 얘기하지 않던 주제이기도 하고 좀 무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인 주제를 가지고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다가서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있었다.

하나는 자기로부터 출발해서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겪는 일상이나 학교 교육 등에서 출발해 전쟁이나 사회로 나아가보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이라크나 바그다드로 가보자는 것이다. 자신과 관련 있는 사건이나 사회 문제를 통해 생각을 점점 넓혀 나가는 것. 아무래도 바로 이라크 얘기부터 시작하면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좀 지루해할 수도 있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나라 얘기를 그야말로 듣고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의견은 다른 세계로부터 나에게로 다가가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도 그렇고, 소위 ‘평화교육’이라는 것도 그렇고, 너무 자신에게서만 출발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고민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의 관련성, 연관성을 중심으로 생각을 뻗어나가다 보면 그 문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나와의 연관성을 찾지 못하면 그야말로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두 의견의 공통점은 우리의 일상과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연관되어 있으며 결코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이라크라고 해서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지 말고 함께 생각하고 평화를 찾기 위해서 무언가를 해보자는 것이다. 다만, 방법을 고민할 때 나에게서 이라크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이라크에서 나에게로 올 것인지가 토론되었던 것이다. 어떤 방법이 좋을 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겠다.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는 연습

처음에는 교육의 방법을 놓고 토론을 시작했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방법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와 개인, 전쟁과 평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까지 드러났다. 우리의 고민은 이런 것이다. 한국에서 평화나 평화운동 하면 많이 나오는 것이 개인의 성찰이나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물어보자. 한국에 사는 우리가 착한 마음을 먹는 것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 폭탄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혹시 우리의 생각이 ‘전쟁→집단→투쟁’, ‘평화→개인→화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앞서 말한 두 가지 교육 방법 가운데 우리는 이라크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는 방법을 택했다. 먼저 남의 심정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두 번째 문제고 먼저 그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보자는 것.

이런 방식이 처음에는 좀 낯설고 지루할 수도 있다. 문제가 만약 지루함이라면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는 교육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 뿌리에서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나를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대기업 노동조합이 가끔 욕먹는 것 가운데 하나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는데 그 권리가 개별 기업과 노조의 울타리를 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인권이나 인권운동, 평화나 평화운동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람들에게 ‘인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역시 나와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생각할 것 같다.

아이들은 모른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과연 청소년들이 자신의 문제에서 출발하지 않고 이라크니 전쟁이니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도 잘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한번은 중학생들과 ‘미국이 왜 이라크를 침공했을까?’라는 주제로 수업을 했다. 그 답을 각자 종이에 그림으로 그려 보자고 했다. 7분 30초를 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쭈뼛쭈뼛, “에이, 선생님 그걸 어떻게 그림으로 그려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을 했다. 20분이 지나도 끝내지 못하고 계속 그리는 학생도 있었다. 얼추 다 그린 것 같은 때 둘러 앉아 자신의 그림을 다른 사람을 향해 들고 왜 그렇게 그렸는지를 얘기했다. 결론은 주로 석유였는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정말 여러 가지였다.

물론 당시 수업을 했던 학생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 그전에도 들어본 경험이 많고, 이 그림 그리는 수업 이전에 전쟁에 관한 얘기도 몇 번 했기 때문에 이런 수업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흔히들 말하는 ‘아이들은 잘 모를 거야’라는 통념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른다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혹시 어른들이나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모를 거야’라는 생각이 오히려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서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미니 님은 경계를넘어(http://www.ifis.or.kr)에서 󰡒몇 년째 죽치고 앉아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인간 ^------ ^ 󰡓입니다.
인권오름 제 102 호 [기사입력] 2008년 05월 06일 23:41:18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