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비인간, 법의 안과 밖, 경계에 주목해야

[세계인권선언의 현재적 의미] 제 6조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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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제6조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나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6조는 선언의 전체 30개 조항 중에서 그다지 눈길을 끄는 조항이 아니고, 인용되는 일도 드물다. 그 이유는 너무 당연하다고 여겨서이거나 혹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인권협약에는 6조와 같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6조의 기본 목적은 법의 눈으로 볼 때 인간으로서 다뤄질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 즉 법적 권리와 의무의 잠재적 담지자로 인정될 모든 사람의 권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것을 너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가령 ‘노예’의 경우처럼 어떤 인간에 대해 법 앞에 인간의 지위를 부인하는 일을 오늘날에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또한 시민권 상실(civil death)의 형벌을 내리는 일, 일체의 법률상의 보호를 박탈하여 추방하는 일은 먼 과거의 일이고 더 이상 어느 국가도 자국민을 상대로 사용하는 형벌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세계인권선언이 2차 대전에서의 반인간적 행위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6조는 더욱 당연하게 여겨진다. 나치는 유대인, 장애인, 동성애자 등 특정 인간을 ‘비인간(비인격)’ 또는 ‘하급인간’으로 낙인찍어서 불평등하게 취급했다. 그리고 그런 취급은 ‘법적으로’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인간 격하와 침해를 돌아보며 선언의 기초자들은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을 권리”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6조를 별 의미가 없다고 보는 시각에선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것의 의미가 구체적이지 않기에 6조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답해야 하고, ‘인간 존중의 의미가 무엇인가’도 확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선언의 다른 구체적 조항들과 비교할 때 건너뛰는 조항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입장 모두 문제가 많다. 먼저 “법 앞에 인간으로서 인정”받는 것이 과연 ‘당연’하기에 문제될 수 없는가이다. 오늘날 주요한 인권문제는 법 앞에서 권리능력을 가지고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법주체들의 문제가 아니라 ‘법에 따라 법으로부터 추방된 사람들’ 속에서 벌어진다.

사냥 당하듯이 잡혀서 추방되는 이주노동자들은 ‘법의 바깥’에 놓인 사람들이다. 지금의 촛불정국에서 확인돼 듯 집권자는 선택권을 갖는데 주권자들은 선택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탈법자 취급을 받고 있다. 선택의 기회는 갖지 못하면서 발생할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떠맡아야 한다. 주권국가 바깥에 놓인 난민 수용소의 사람들, 관타나모 기지에 갇힌 사람들, 분리장벽에 갇힌 팔레스타인 사람들, 세계 곳곳의 ‘불법’ 체류자라 불리는 사람들 등 ‘비인간’으로서 ‘법의 바깥’에 놓인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데 6조가 내세운 원칙이 너무 당연하다고 선언하며 잊어버리는 것은 너무한 일일 것이다.

두 번째 입장의 문제도 이와 연관돼 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 법의 안과 바깥의 경계에 놓인 문제들에 인권은 주목해야 한다. 경계는 불확정적이기에 거기에 인권투쟁의 가능성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확정된 구체적 권리에만 인권이 집중한다면 인권은 법 앞에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된 사람들만의 명시적으로 쓰인 권리에 머물 것이다. 그런 인권은 사실상 ‘인’권이 아닌 일부 사람들의 권리, 법 안의 사람들의 권리, 좁은 의미의 시민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선언의 여타 확정된 권리들이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으려면 우리는 잊혀진 6조를 계속 불러내 생각하고 경계를 확장하려는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http://khrrc.org)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07 호 [기사입력] 2008년 06월 10일 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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