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애는 심판받았다, 나는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한다

[이반의 세상, 세상의 이반] 연애하기도 힘든 세상

현박정원(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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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옛 기억들을 꺼내어 본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헤어짐들에 관련된 여러 기억들을 꺼내어본다. 정말로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앞으로 이야기 할 두 가지 이유들이 아직도 나를 자극하고 괴롭힌다. 좋은 의미로든, 그렇지 않은 의미로든 말이다.

벌써 6년이나 흘렀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해도 무방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이 학교에 나 말고 레즈비언이 얼마나 더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지만, 나는 곧 몇몇 레즈비언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아이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

레즈비언인 것이 ‘죄악’으로 여겨지는 기독교의 심판

대여섯 달 가량 사귀었을까? 그 아이는 나와 헤어지기를 원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기독교인이고, 목사님의 딸이어서 더 이상 나와 교제관계를 지속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레즈비언인 것을 감추거나 이성애자로 살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곁에 같은 여자를 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레즈비언인 것도 엄청난 죄인데, 연애까지 하면 더 큰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것은 죄가 아니니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라고 이야기 하며 대니얼 헬미니악의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 - 신이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사랑』을 같이 읽어보자고 이야기했을 테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헤어진다는 것이 나에게 너무 크게 다가와서였을까? 아니면 그때는 레즈비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찾아보기 힘들어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의 모습이 너무 창피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렇게 헤어져야 했으니까. ‘기독교’라는 것, 레즈비언인 것이 ‘죄악’으로 여겨지는 기독교 때문에 말이다. 보수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동성애는 어쩜 이렇게도 답답할까. 사랑을 외치면서 동성애는 왜 죄악이라고 할까. 너무나도 억지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연애와 감정, 그리고 그녀의 연애와 감정은 종교의 이름으로 죄악시되고 심판받아야 했다.

“난 이 세상과 타협할래!”

벌써 4년이나 흘렀다. 2년 6개월 정도 교제관계에 있던 애인과 헤어졌다. 그녀와 나는 다른 분위기가 사뭇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꽤나 보수적인 학풍을 가진 학교에 다니며, 자신이 동성애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자신을 드러내기 힘든 분위기에서 그녀는 나와 (몰래) 사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녀와 교제하고 있을 때, 레즈비언으로 사는 것에 대해 전혀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끔 그녀와 나만의 연애관계 밖의 이야기를 할라치면, 그녀는 그러한 생각을 하면 우울하다며 더 이상 이야기 말라고 했다.

그리고 4년 전 이맘때 즈음, 그녀는 “우리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난 이 세상과 타협할래!”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그렇게 또 어떠한 이야기도 나눌 수 없는 상황 가운데 헤어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와 헤어진 후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그녀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에게서 그때 당시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남자와 연애하고 있다고. 나와 사귀던 여자가 남자와 연애를 한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던 것이 아니라(성정체성은 바뀔 수 있는 것 이니까), 그때가 돼서야 “난 이 세상과 타협할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연애와 감정, 그리고 그녀의 연애와 감정은 이성애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 의해 심판받았다.

나의 연애를 심판한 이 사회를 알고 싶었다

그 충격은 그녀를 향한 분노와 슬픔이 아니었다. 나의 애틋했던 연애를 산산조각 내버린 이 세상을 향한 분노였다. 이 세상이 무엇이건대 그녀가 이성애중심적이고 가부장제로 가득 찬 세상과 타협하고 맞춰야겠다며 이성애자로 살아가려 하는 걸까. 나는 이성애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헤어질까 두려워서 나의 고민과 우리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지 않았던 당시의 내 모습이 너무나도 창피하고 후회스럽다. 하지만, 그 분노와 슬픔이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하였고 결국, 레즈비언인권운동 이라는 것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

나의 연애를 심판한 이 사회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시작한 레즈비언 인권운동이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서 이 활동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 같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더 이상 분노가 아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다.

가끔 그녀는 나에게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한다. “왜 굳이 이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는 그때의 당신으로 인해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는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멈출 수 없다”는 말이 목까지 차오른다.

삶은 이토록 기쁨이라고

기독교, 혹은 가부장제. 이런 거대한 목소리에 맞서 스스로의 목소리로 도전하는 것은, 성공한다면 혁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시각 속에 반란이라는 이름으로 묻히기 일쑤이다. 그녀들과 같이 자기 스스로를 ‘반란’이라 치부하고 가두려는 사람들도 존재하듯. 하지만 레즈비언 인권운동을 통해 외치는 나의 목소리는 나에게는 혁명으로 살아갈 힘이 되었고, 삶은 반란이라 여겨왔던 수많은 레즈비언들에게 삶은 이토록 기쁨이라고, 하나 둘 자신을 긍정하는 힘을 주고 있다. 지금은 “나의 연애를 심판해준 이 사회와, 분노의 계기를 만들어준 그녀들에게 감사해야 할까?”라는 행복한 고민까지 하고 있는 나는 내가 가는 길이 퍽이나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레즈비언 인권운동’ 왜 그렇게 힘들게 하냐고요? 이 글을 보는 당신만은, 그런 물음 하지 마시길 바라면서….

덧붙이는 글
현박정원(레고)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http://lsangdam.org)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08 호 [기사입력] 2008년 06월 17일 20: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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