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양심, 사뿐히 지르밟고 가시더이다

[삘릴리~ 학생인권 마술피리] (3)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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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인권오름>은 ‘인권교육센터 들’과 함께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연속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지만 학교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고 뒷짐 진 국가의 태도 역시 여전합니다. 학생인권을 지원하는 법률과 정책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학생과 교사들이 일어선다면 일구어낼 수 있는 변화는 많습니다.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설계도로서 학생인권에 관한 종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가이드라인이 학생인권을 부르는 마술피리가 되어 인권이 꽃피는 학교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들, 어제 종이비행기 (시위) 잘 봤습니다. … 초등학교 1, 2학년 수준의 내용들 아주 감명 깊게 잘 봤습니다. 여러분들은 학생입니다. 진성고등학교 학생입니다. 선생님들 바보 아닙니다.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여러분들 위해서 선생님들이 노력합니다. 노력해도 되는 게 있고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되지 않을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 비판의식, 부정적인 사고방식 지금 필요 없습니다.” - 조회시간에 나온 진성고 학생부장의 말

‘선무공작’이 넘쳐나는 학교

위 사진:올 2월 진성고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종이비행기 시위 [출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지난 봄 인터넷에서는 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진성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올린 동영상이 큰 주목을 받았다. 급식 비리, 비싼 생활복 구매를 강제하는 학생생활규정, 수용소나 다름없는 기숙사, 체벌, 두발규제, 소지품 검사…. ‘실존하는 만화 속 정글고’라는 학생들의 설명처럼, 이 학교는 학생인권 문제를 죄다 긁어모은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견디다 못한 학생들은 올 2월, 학교 옥상에 올라 존엄을 되찾기 위한 요구를 종이비행기에 실어 날렸다. “사육이 아닌 진정한 교육을 원해요!” 이튿날 오전 방송시간에는 으름장과 타이름이 절묘한 균형을 갖춘 학생부장의 ‘선무’(宣撫) 공작이 기세를 떨쳤다. “비판의식, 부정적인 사고방식 지금 필요 없습니다!!!”

이처럼 학교에서는 학교 당국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의례와 교육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난다. 전교생을 모아놓고 ‘사랑의 매’ 전달식을 진행하는가 하면, 촛불집회 참석은 학생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이 주구장창 이어지는 조회가 열리기도 한다. 생각의 차이, 생각의 부딪힘을 허용하지 않는 학교. 학교가 유일한 진리와 도덕의 심판자를 자처하며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을 ‘철없는 짓거리’로 매도할 때, 학생들의 양심에는 생채기가 난다.

생활지도를 명분으로 양심을 지르밟는 일도 빈번하다. “내일도 배지 달고 오면 끝장날 줄 알아!” 두발자유 문구가 적힌 배지를 달고 등교했던 한 중학생은 학생부장에게 걸려 곤욕을 치렀다. 내일도 배지를 달고 가자니 당할 일이 아득하고 배지를 떼고 가자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 이처럼 왜 두발자유 배지를 달고 등교해서는 안 되는지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다짜고짜 금지를 통고하는 학교 앞에서 학생은 양심을 기만해야 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할 얄궂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대부분의 선택은? 자기 양심을 외면하는 길이다.

입학부터 인권포기각서, 이어지는 서약서들

최근 교칙을 둘러싼 학내 갈등이 심화되자, 나중을 위해 미리 신입생에게 교칙 준수 서약서를 받아놓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다. 앞서 문제가 된 진성고 역시 신입생 전원에게 서약서를 받아냈다. 대부분의 학생이 배정받은 학교의 교칙을 읽어보지도 못한 채로 입학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교칙을 위반하면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아내는 것은 인권포기각서의 제출을 강제하는 것과 다름없다. 앞으로 3년간 쏟아질 학교의 교육방침에 대해서도 사안별로 판단해서 동의 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무조건 순응하겠다는 서약을 받아내는 것은 굴종을 강요하는 일일 뿐 아니라 설령 학생 자신의 의견과 일치한다 하더라도 자기 양심을 외부로 표현하도록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까지 침해한다.

위 사진:진성고가 신입생들에게 받아내고 있는 서약서. 각종 서류양식 내려받기 사이트를 둘러보면 ‘신입생 서약서’ 양식이 단골 메뉴로 올라가 있다.
금연 캠페인 뒤 작성하는 ‘전교생 평생 금연 서약서’, 성 교육 뒤 작성된 ‘전교생 순결 서약서’ 등등까지 학교에서는 서약서가 넘쳐 난다. 서약서 제출 관행이 자리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나중에 학교 방침에 어긋나는 학생의 행동을 제지할 때 서약서를 들이밀면 기선을 제압하기 편한 데다 행여 법적 다툼이 일어날 경우 학교의 정당함을 입증하는 증거물 역할까지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네 스스로 각서를 써 놓고 왜 이제 와서 딴 소리냐”라고 말하면 게임 끝이라는 것을 학교는 잘 알고 있다.

실제 2004년 학교 안 종교 강요 문제를 제기해 사회적 주목을 끌었던 서울 대광고 강의석 씨 사건에서도 이 신입생 서약 관행은 맹활약을 펼쳤다. 당시 학교에 의해 퇴학처분까지 당했던 의석 씨는 이후 종교 강요와 퇴학처분 등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인 의석 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신입생을 대표하여 의석 씨가 학교의 교육과정에 충실히 따르기로 선서한 만큼 종교교육을 강요당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 서약, 양심의 자유는 어디에?

유치원에서부터 훈련받는 국기에 대한 맹세 역시 자기 양심이 무엇을 말하는지 듣지 못하게 만들거나 양심을 기만하게 만드는 행위이다. 기미가요 제창과 히노마루 게양에 반대하는 일본의 교사·학생들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도 막상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애국가 제창과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해서는 별다른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라는 질문에 앞서 ‘주어진 나라’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는 특정 국가관을 강제하고 개인의 양심이 자랄 정신의 터전을 황폐화시킨다. 게다가 원하지 않을 때 입을 열지 않을 자유가 양심의 자유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이런 국가주의 교육 덕분에 ‘국민이라면 국기에 대한 맹세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통념이 계속되고, ‘이 땅에서 살려면 법을 지키겠다는 서약쯤은 기본 아닌가’라는 헌법재판소의 준법서약서 합헌 결정도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위 사진:지난해 6월 국기법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 폐지를 요구하는 청소년 선언과 인권사회단체들의 성명이 발표됐다.

지난해 제정된 국기법(國旗法)과 시행령에 따라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법제화됐다 하더라도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얘기한다. 하지만 학교현장에서 으레 치러지는 국민의례에서 빠짐으로써 국가관을 의심받아도 괜찮다고 용기 있게 나설 학생은 드물다. 실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는 학생들의 교육권까지 침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맹세와 경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행렬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3년 의정부 영석고등학교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수 없다고 밝힌 응시생 박준규 씨를 국가관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불합격처리했다.

선처를 미끼로 강요되는 반성문

학교에서는 교육이란 이름으로 곧잘 반성문 작성을 요구한다. 점심시간 학생부실(생활지도부실) 앞 복도에 꿇어 앉아 반성문을 쓰는 학생들의 모습은 학교의 일상이다. 자기 실수나 잘못을 돌아보도록 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잘못에 대해 충분히 소통한 뒤 자기 행동을 돌아보는 과정으로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반성문은 자기에게 쓰는 성찰의 편지가 아니라, 권력자에게 쓰는 굴복 문서나 다름없다. 심판자가 원하는 대로 반성문을 써야 처벌을 피할 수 있다. 소통과 주체적 깨달음은 교육의 과정일 수 있지만, 선처를 미끼로 던져진 반성문은 심판자의 의지를 강요하는 반인권적 처벌이다.

“두발 자유 서명을 받다가 학생부실로 끌려갔어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나서야 학생부실에서 나왔어요. 부끄러웠죠. 본심은 그게 아닌데 억지로 잘못했다고 썼으니까. 그 일 이후로는 나를 못 믿겠어요. 내가 뭘 할 수나 있나 자괴감도 들고….” 한 청소년의 고백은 반성문이 가진 효과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왜소하고 무력한 인간으로 만듦으로써,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도록 만듦으로써 저항의 소지를 없애버리는 것.

학교는 선교의 텃밭인가

위 사진:2005년 10월 강의석 씨는 학교와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겠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종교계 사립학교나 교사 개인에 의해 학생들에게 종교가 강요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1일 ‘경향신문’에는 경주초등학교 학부모 4백여 명이 학생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등 교사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며 자녀들과 함께 수업을 거부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자기 반 학생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는 교사, 성경 베껴 쓰기를 벌로 내주는 교사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개별 교사의 종교 강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쉽다. 반면 학교가 집단적으로 종교를 강요할 경우, 학교를 떠나거나 쫓겨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문제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2004년 학교 내 종교자유 문제를 들고 나온 대광고 강의석 씨의 경우도 퇴학처분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지금도 학교의 종교 강요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예배 참석과 기도 강요를 강요하거나, 종교과목 대신에 들을 수 있는 대체과목을 개설하지 않거나, 학생회 임원 자격으로 특정 종교 신자일 것을 강요하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난다. 종교계에서 세운 학교가 전체 사립학교의 25%에 달하는 나라에서 거짓 신앙을 고백하는 일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 밖에도 ‘삐딱한’ 생각을 가졌다는 이유로, 특정 성향의 신문이나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학교나 교사로부터 제지나 불이익을 경험한 학생들은 많다. 사상·양심·신앙은 사람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길을 비춰주는 기둥과 같은 것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배반할 것을 강요당한 사람이 직면하는 가장 가혹한 결과는 자기혐오이다. 그러하기에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는 자존에 필수적이다. 이 자유가 꽃피기 위해서는 학교가 자기 내면을 가꾸고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줄 수 있어야 한다. 그에 앞서 학교 안에서부터 그 자유가 푸르게 피어나야 한다.

학생인권 마술피리 셋째 소절 :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 학생은 자기의 생각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그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생각과 양심의 자유는 내심을 드러내지 않을 침묵의 자유를 포함한다.
○ 선서, 서약서 작성, 상징의식 참여, 반성문 등을 학생에게 요구할 때는 학생 자신의 자유롭고 명시적인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 학생은 특정 사상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지는 각종 대회, 학교당국의 일방적 의사 전달을 위한 소집에 참여를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 학생은 자기가 믿는 종교를 유지하거나 다른 종교로 바꾸거나 종교를 믿지 않을 권리를 갖는다. 종교 활동 참석 강요, 종교 대체 과목 미개설, 특정 종교에 대한 비하나 편견 주입 등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http://dlhre.org)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10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02일 0: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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