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제 몫은 하는 국가인권위?

국가인권위의 인사시스템과 견제장치 필요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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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권리’를 위한 이행장치

인권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이다. ‘추상적인’ 인간의 권리를 구체적인 현실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직접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인권’을 하늘에서 둥둥 떠 있게 내버려두지 않고, 땅으로 내려오게 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국가인권기구 창설은 ‘인권’을 사회가 보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이행장치’에 대한 고민 속에서 출발한 것이다.

국가인권기구 마련을 위한 유엔의 역사

권리를 적극적으로 실현할 이행장치에 대한 고민은 국제인권활동가들의 지속적인 과제였다. 유엔도 밝혔듯이 헌장에 명시된 인권목표의 달성은 중요한 과제였다. 주요 인권규약들 에 많은 국가들이 가입하도록 하여 인권기준을 이행할 법적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였다.
인권보호는 사인 간에도 국가 간에도 일어난다. 하지만 인권보호의 일차적 책임을 국가가 지도록 해야 구체적인 현실에서 구체적인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인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국가인권기구는 인권의 증진과 보호를 위한 국가적 인프라 중 하나로 인권보호를 주요 기능으로 한다.
유엔에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논의는 1960년 이래 계속되었으며 1978년 유엔인권위는 국가인권위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기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1991년 10월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워크숍을 거쳐 1992년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에서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이하 파리원칙)을 승인되었다.

파리원칙에서는 국가인권기구가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명시적으로’ 인권증진과 보호를 갖추기 위한 ‘능력’을 갖출 수 있어야 하고 가능한 한 광범위한 ‘책무’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국가인권기구의 구성 및 위원의 임명, 독립성과 다원성의 보장, 운영방식 등에 대한 세부 지침들도 들어 있다.

위 사진:10월 22일 청와대 앞에서 김양원 씨를 국가인권위원으로 인선한 청와대를 규탄하는 인권활동가들


국가인권위 창립을 위한 인권활동가들의 노력

한국에서 국가인권기구에 대한 논의는 1993년 6월 비엔나 유엔세계인권대회에 참여한 한국 민간단체 활동가들이 정부에 국가인권기구의 설치를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7년 김대중 대통령 ‘인권법 제정 및 국민인권위원회 설립’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하면서 공론화되었고, 1998년 9월 17일 ‘인권법 제정 및 국가인권기구 설치 민간단체 공동추진위원회’ 발족하여 1999년 4월 29일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로 확대 개편되면서 싸움을 시작하였다. 2000년 5월에도 싸움을 계속하였고 12월 말부터 이듬해인 2001년 1월 초까지 ‘가라 국가보안법, 오라 국가인권위’ 겨울 노숙단식 농성을 하였다. 혹한의 추위에 방석하나 깔지 않은 인권활동가들의 원칙적이고 끈질긴 투쟁이었다. 당시 인권활동가들은 국가인권위의 ‘독립성’과 ‘실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 진정건수 80%가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가해가 공권력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국가인권위는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할 수 없게 된다. ‘인권침해에 대해 눈감거나 포장하는’ 거수기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기에 독립성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국가인권위가 하는 인권침해 진정에 대한 조사와 권고 등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현실에서 ‘인권개선의 효과’는 발휘되기 어려울 것이다. 3년간 투쟁한 결과 2001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만들어지고 5월 법이 공포되었다. 그해 11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법 발효와 함께 국가인권위 공식 출범하였다.

흔들리는 국가인권위의 독립성

인권활동가들은 국가인권위의 활동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지는 않았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잘못했다고 날카로운 비판을 하였고, 잘한 일에는 환영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입장만으로는 부족한 인권위원회 구성의 한계가 있었다. 올 해초 새 정부가 파리원칙에 어긋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대통령 직속기구화로 국가인권위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를 하였을 때도 인권활동가들은 노숙농성을 하며 막아낸 이유는 국가인권기구에 맞는 구조와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권위원 등 인적 구성원의 정치적 독립성은 중요한 요인이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법 10조에서도 인권위원들은 정당의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비상임위원으로 새로 임명된 최윤희 씨와 김양원 씨는 한나라당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한나라당 추천인 최윤희 씨는 국가인권위원으로 추천받은 후에 한나라당의 윤리위원을 수락하며 인권위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기본적 인식조차 없었다. 최윤희 씨가 나중에 한나라당 윤리위원을 그만두기는 했지만 국가인권위의 위상과 인권위원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자질이 여전히 부족하다. 또한 청와대 추천인 김양원 씨는 추천을 받기 일주일전에 한나라당 당원을 사퇴했을 뿐 아니라 한나라당 비례대표에 공천했다 떨어진 인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양원 씨는 장애시설장으로서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가 되었고, 장애인의 결혼은 불임수술을 전제로 허락하고 불임에 실패해서 임신한 장애인의 낙태를 교사․방조하였다.

인권적이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은 인권위원 인선절차

이번 인권위원 인선이 단지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실수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심각성이 있다. 인권위원 인선절차가 워낙 ‘인권적’이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기에 발생한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후 지금까지 인권위원의 인선과정이 공개된 경우는 없었다. 대통령 추천은 비서실을 중심으로, 정당 추천도 당 지도부의 인맥이며, 대법원도 마찬가지이다. 밀실에서 추천될 뿐 아니라 공개적인 검증작업도 없다. 현재와 같은 인선절차라면 2010년까지 국가인권위원장을 비롯한 교체를 앞둔 인권위원이 8명이 최윤희 씨와 김양원 씨 같은 국가인권위의 독립성과 권위를 위협하는 인물이 인선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현행 국가인권위법 제5조2항은 인권위원 자격 요건을 “인권 문제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권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은 ‘법조인’으로 치환되고 있다.

국가인권위 인적 구성에 대한 가이드라인

국가인권위 구성에 대한 국제 가이드라인은 국가인권기구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다원성’을 확보하고 ‘다양성’을 존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인권침해가 다양한 주체들에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의 현실과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국가인권기구가 남성들만으로 구성되거나 특정 인종으로만 구성될 경우,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해 대표성도 상실된다. 대표성 있는 구성이 되지 않으면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비롯한 시민사회구성원들이 접근하지 못하거나 안 해 접근성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는다.

법조인 중심 구성과 정당별 나눠 먹기 식 인선

현 국가인권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위원장을 포함한 11명의 인권위원 중 7명이 법조계 출신으로 2/3나 된다. 이에 대해 인권활동가들은 ‘다양성’과 ‘다원’성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몇 년 동안 수없이 비판하였다. 사실 법조계 중심의 인적 구성은 위계와 인맥이 강하게 작용하는 법조계의 현실을 볼 때, 인권위원들이 사법부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법적 테두리 안에서 활동의 안위를 보장받으려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실제 전원회의에 참석하는 인권위원들의 발언에서 법률적 기준과 잣대를 넘는 ‘인권감수성’이 묻어나며 ‘국제인권기준’에 입각한 논의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이렇듯 인권위원들이 인권침해에 대한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고 ‘인권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국가인권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앙상한 법원의 배심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인권침해를 당한 시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입법․행정․사법부가 인권보장을 해주지 못해 인권위로 침해사건을 들고 들어왔는데, ‘인권적 감수성’은 없고 ‘사법적 사고’만 있는 사람들이 인권위원을 하고 있다면, 시민들은 무엇을 믿고 진정하겠는가. 소수자의 인권감수성도 없고 침해 현실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얘기할 수 있는 내용과 개선 요구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국제인권기준에서 정치적 다원성을 보장하기 위해 특정 정당 추천을 배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를 정당별 추천(여야 2명씩)과 대통령(4명)과 대법원장(3명)의 지명만 명시할 뿐 구체적인 인선절차와 자격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다. 그러다보니 ‘정당별 나눠 먹기 식’으로 협소하게 해석하고 악용한다.

국가인권위 투명성을 위한 인선절차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인선절차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권위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활동이 국민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이기에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절차로 인권위원의 자질을 사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인권위원 인선권한이 부여된 정당별 추천과 대통령의 추천 등을 그대로 두더라도 ‘공개성과 공식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은 가능하다. 현재와 같이 인맥과 밀실에 의해 추천하는 방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민주성과 인권적 결여를 방지하려면, 입법․행정․사법부에서 ‘추천기구 설치와 절차’, ‘검증방식과 절차’를 공개하고 공식화해야 한다.

임명권을 갖고 있는 곳에서는 ‘인권위원 인선기구’를 비상설적으로 만들고, 그 기구는 각계각층에서 추천받은 사람들을 온오프라인에 공개한다. 물론 추천할 때 받은 ‘추천의 근거와 자격요건’을 공개하고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창구 등을 마련한다. 그래야 시민들을 비롯한 인권전문가들이 인권위원의 자격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정한 ‘검증 기간’도 두어, 추천의 이유와 자격미달의 이유가 공개된다면 검증된다면 김양원 씨와 같은 반인권적 인물이 임명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권위원 구성의 다원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조인에 한정되지 않아야 한다. 파리원칙에도 다양한 사회계층의 다원적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는 인적 구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권 및 인종 차별과 싸울 책임을 맡은 민간단체 사회단체의 활동가”들의 참여를 보장이 필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극심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운동주체들과 당사자들의 참여를 명시하는 기준도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인권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한나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과 규정 마련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인권위원을 비롯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견제할 수 없다. 그래서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위원의 활동과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25 호 [기사입력] 2008년 10월 23일 3: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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