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레즈비언①] 사랑은 자연스러운가요?

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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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이반의 세상, 세상의 이반'이란 꼭지로 레즈비언의 인권문제를 제기했던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는 이번 호부터는 미디어 속에 비친 레즈비언의 모습, 레즈비언을 그리는 미디어의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연재한다. 앞으로 6회 정도 연재되는 이 기획은 4주에 1회 꼴로 실리게 된다. 일상생활 속에 무심히 지나가게 되는 드러나지 않는 성소수자의 문제, 독자들은 미디어를 읽는 다른 시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좋은 글을 보내주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 감사드린다.


텔레비전이 선전하는 것

여자와 남자는 사랑에 빠진다. 알고 보니 남자는 엄청난 부자의 아들이었고, 남자의 집에서는 자신들이 보기에 별 볼 일 없는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남자의 의지를 꺾으려 기를 쓴다. 눈물나는 사랑, 가슴 아픈 시련, 많은 것을 견디고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할 수도 있겠지만, 여자는 남편의 가족들로부터 꽤 오랫동안 구박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십 년 전에도 일 년 전에도 한 달 전에도 바로 지금도 절찬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의 줄거리이다. 이런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진부함이 아니라 중독성이다. 언제나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다 한 회만 봐도 드라마의 전체 스토리가 잡히는 헐거운 내용일지라도) 나는 레즈비언인 나의 처지를 잠시 잊은 채 그저 본방 사수에 몰두한다. 드라마를 보는 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도 드라마 속 여자와 남자가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어른들의 구박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가 요일마다 시간대마다 줄줄이 소시지로 편성되어 있는데, 도대체 레즈비언이 들어갈 자리는 도대체 어디 있담. 흥. 텔레비전에서는 맨 여자 남자 얘기만 해대는 통에 L드라마는 한 편 보려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캐시를 지불하고 다운을 받아야 하는데. 어떤 건 틀면 나오고 어떤 건 찾아내야 하고, 이건 뭐,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된다. 잠자리에 들며 뭔가 시큰둥한 빈정거림을 토해낼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음 회의 내용이 궁금해서 잠을 못 들겠다. 몰래 만나고 있는 걸 들킬 때가 됐는데, 못된 부자 여자가 남자를 그만 좀 따라 다녀야 할 텐데, 하면서 말이다.

집 밖으로 나올 때까지도 다른 생각을 못 한다. 여자 남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머리 속을 꽉 채워서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라도 해야 뭔가 어긋나 있다 싶다. 레즈비언 자긍심 갉아 먹는 소리. ① 여자가 남자의 팔에 기대어 걷는 게 예뻐 보인다. ② 평소에도 지질했던 게이다 수치가 더욱 낮아져서 동성 커플은 내 눈에 띄지도 않는다. ③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는 게 문득 낯설어진다. 나는 여자인데 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하고.
급기야는 여자와 남자가 사귀는 게 자연스러운가? 하는 생각이 일어나려는 통에 뭐에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모든 게 드라마 한 편 때문이라고 말하려고 하는 거냐고? 천만에.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반복된 이야기 중 하나가 이 드라마 한 편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다. 여자와 남자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이 뿌리 깊은 이야기의 전수. 텔레비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에게 이성애를 선전하고 있다. 방송의 선전은 이렇게도 ‘자연스럽고’ 끝없이 반복된다.

더 자극적인 것, 더 새로운 것

남자와 남자가 천장이 높은 실내에서 서로 마주 안고 엎치락뒤치락하며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다. 멀리서 브라질 가수의 조용한 노래도 들려온다. 이 사람들 지금 뭐하는 거지? 하며 얼굴이 발개지려는 순간, 화면 가까이로 나와 있는 사람이 귀에서 이어폰을 빼낸다. 다시 보니 남자와 남자는 레슬링을 하고 있다. 천장이 높은 실내도 레슬링 경기장이다. 화면이 멀어지면서 한 휴대폰 회사의 브랜드가 자막으로 떨어진다. 이것은 얼마 전 방영된 휴대폰 광고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광고의 전반부는 영락없이 게이 커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처럼 보인다. 이 장면을 두고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사람들은 꽤 활발하게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대부분은 ‘호모 새끼 콱 나가 죽어’ 등의 동성애자 비하 발언 천지겠지만 말이다.

이미지로 대화를 나누는 우리들에게 이미지 속에 숨은 뜻은 이제는 단어의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지를 즉각 읽을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지의 효과는 얼마나 더 세련되거나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여보세요? 섬에서도 잘 터져요!'로 제품을 선전할 수 있는 시절은 오래 전에 지나갔다. 숨 가쁘게 지나가는 이미지가 망막과 시신경에 자극을 남기려면, 더 새롭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담긴 것이라야 한다. 세련된 게이의 이미지를 광고에 적극 도입한 것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처럼 살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니다. (비정하게 말하자면) 동성애에 관한 관점이 진보의 척도가 된 지금, 광고 속 게이 이미지는 그저 진보적인 코드로만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광고가 전무하다는 것은, 남성 동성애자에게 호의적인 도시의 이성애자여성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는 동안 레즈비언에게 호의적인 소비자 층은 가시적으로 확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이미지를 보면 최신의 것을 알 수 있다. 최고로 유행하는 코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지 자체의 속임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자연스럽거나 너무 새롭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이미지의 의도를 받아 안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스스로 나서서 읽어 내는 수밖에 없다. 그 많은 레즈비언은 왜 텔레비전에서는 한 움큼도 보이지 않거나 모자이크 처리로만 만날 수 있는지.

덧붙이는 글
* 원영 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33 호 [기사입력] 2008년 12월 17일 23: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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