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옥의 인권이야기] 오래된 전쟁, 무뎌진 사람들

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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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리만치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던 지난 3월 20일은 이라크전쟁이 일어난 지 6년째 되는 날이었다. 2003년 이후 매년 반전집회와 함께 거리에서 봄을 맞았던 기억 탓인지 이젠 봄만 되면 반전집회부터 생각난다.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폭격,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는 모습이 TV 생중계로 보면서 느꼈던 충격과 분노, 어떻게든 파병만은 막아보고자 거리에서 보냈던 시간들... 그 이후 막연하게만 느끼던 평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전쟁을 막기 위해서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했다. 이라크전쟁 이후 많은 사람들이 평화에 관심을 보였고, 막연히 반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들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들이 생겨났다.

전쟁 상황에서 인권을 상상할 수 있을까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일할 수 있는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등을 보장받기란 힘들 수밖에 없다. 인권이 침해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가 말살되기 때문이다. 지난 6년 동안 전쟁으로 죽은 이라크인의 숫자는 언론보도를 통해 집계한 것만으로도 95,000명이 넘는다. 오염된 식수나 부족한 의약품 등 장기화되는 전쟁과 점령으로 취약해진 사회적 인프라를 고려한다면 사망자수는 2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전쟁을 피해 이라크를 떠난 난민들까지 고려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난다. 얼핏 보기에 이라크전쟁은 이미 끝난 것 같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보복공격을 했던 아프가니스탄도 8년째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2009년 2월 미군과 나토군의 사망자는 1천명을 넘어섰고 아프간 군도 4천명 이상 숨졌다. 민간인 희생자도 3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평화적 생존은 모든 인권의 출발점’이라는 말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위 사진:2008년 3월, 반전집회에서 전쟁수혜자에 대한 피켓팅을 하는 모습

국민을 전쟁의 위험에 몰아넣는 파병

지난 27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병력 증파, 파키스탄 역할 강화, 동맹국들의 기여 확대 등을 핵심으로 하는 새 아프간 전략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은 아프간에 1만 7천명을 추가 파병하고, 경찰 훈련을 지원하려고 4천명의 공수여단도 보낼 계획이다. 나아가 국제회의에서 아프간 파병 연합군의 급여와 유지 비용을 분담하는 등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 한다. 한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 파병논의가 흘러나온다. 최근 한국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군 병력을 파병한다는 내부 방침을 정하고 파견 규모와 시기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상당한 경제력 및 군사력을 보유한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 때문에 파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2년 전 윤장호 하사가 테러로 숨지고 선교단 23명이 탈레반 무장단체에 납치돼 2명이 살해된 기억을 돌이켜봐야 하지 않는가. 아프가니스탄 입장에서 보면 재건지원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하는 것도 결국 미국의 점령전쟁을 지원하는 일이고,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을 보호해야하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을 테러의 위협에 빠뜨리는 것이자 폭력의 악순환에 빠뜨리는 일이다.

위 사진:2009년 2월 19일 은국의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

얼마 전 은국씨는 파병국가의 군인이 될 수 없다면서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이라크전쟁을 막기 위해 인간방패로 이라크에 머물렀던 그는 “6년 전 이라크 침공을 지켜보며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아무런 힘이 없지만, 적어도 이런 부조리를 강화시키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겠다. 이라크 파병을 선택한 한국 정부는 나에게 국방의 의무를 요구할 권위를 잃었다”며 병역거부 이유를 밝혔다. 당시 전쟁을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은 점차 그때 그 마음을 잊어갔지만 여전히 이라크 사람들은 전쟁을 일상처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때 그 기억으로 군인이 되기를 거부한 은국씨.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파병국의 군인이 되지 않겠다고, 전쟁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전쟁보다 감옥’을 선택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전쟁의 일상화, 일상의 전쟁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이미 전쟁은 우리 사회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와 많은 현상으로 비유되고 전이되었다. ‘화폐전쟁’ 속에서 ‘게릴라 마케팅 전략’을 짜고 컴퓨터로 ‘스타크레프트’나 ‘서든어텍’을 즐기며 학교와 군대, 회사에서 윗사람의 명령에 대한 복종을 배운다. 이제 시공간의 제한 없이 모든 곳에 전쟁이 상존하게 되었다. 그런 전쟁의 문화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전쟁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는 전쟁에 동참한다는 것쯤은, 파병을 한다는 것쯤은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화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았던 사회적 조건들을 찾아내고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를 넘기 위한 새로운 삶의 태도와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덧붙이는 글
여옥님은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46 호 [기사입력] 2009년 04월 01일 14: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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