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1] 알 권리냐 프라이버시권이냐

권리의 대립 구도로 은폐되는 인권의 가치

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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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냐, 프라이버시권이냐. 낯익은 쟁점이다. ‘장자연 리스트(아래 리스트)’나 ‘군포연쇄살인사건(강호순 사건, 아래 군포사건)’은 최근 이 쟁점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촉발한 사안이다. 아직까지 대세는 ‘리스트’는 프라이버시권에, ‘군포사건’은 알 권리에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이것은 인권의 관점에서 타당한 결론인가? 비슷한 구도지만 서로 다른 여론의 방향은 인권의 후퇴를 우려하게 만들고 있는 곤혹스러운 현실이다. 공개되어야 할 것과 공개되면 안 될 것, 알아야 할 것과 알면 안 되는 것을 둘러싼 논쟁에서 다시 인권의 원칙을 찾아야 할 때다.

‘몰라야 할 것들’ 뒤로 숨은 ‘알아야 할 것들’

피의자의 신상이 부주의하게 노출되는 순간, 예측하지 못했던 인권침해들이 잇따라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한국사회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배워왔다. 2005년 경찰청은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을 통해 언론과 관련된 기준을 만들었다. 그 해 7월부터 시행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타인의 생명․자유․신체․건강․명예․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초상․성명․음성․대화․저작물 및 사적문서 그 밖의 인격적 가치 등에 관한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수사기관과 언론이 피의자의 신상을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군포 사건’에서 경찰은 실명을 공개하고 언론은 그의 사진을 공개했다. 게다가 3월 25일 법무부는 피의자 신상 공개를 허용하는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런 접근의 배경에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신상 공개로 범죄자 개인이 누구냐는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여러 특정강력범죄가 만들어지는 사회구조적 요인에 대해 알 권리는 오히려 제한된다. 개인의 신상을 통해 특정강력범죄에 대한 공포를 언론이 부각시키는 동안 치안 부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교묘히 희석되는 것도 문제다. 그동안 한국사회가 쌓아온 인권기준의 성과가 흔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라야 할 것들을 내세운 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이 숨고 있다.

‘알아야 할 것들’을 숨기는 권리?

반면, ‘리스트’는 여전히 수사기관에 갇혀 있다. 한두 사람의 이름이 국회와 언론과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지만 ‘공개’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선일보사의 무차별적 명예훼손 소송과 포털 사이트들의 게시물 차단 조치 등으로 표현의 자유마저 침해되고 있다. 상반된 두 가지 주장이 모두 인권을 후퇴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무부는 앞서 말한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며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에 대한 프라이버시권 사이에 어느 가치를 더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오히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은폐한다.

‘리스트’의 공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사적 영역’이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성’과 관련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보호받을 수는 없다. ‘리스트’가 해결의 실마리를 던진 ‘성상납’이나 성폭력 사건들은 은밀한 것이기에 앞서, 사라져야 할 ‘범죄’다. 칼로 무 베듯 공/사 영역을 나누는 담론은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뿌리 깊은 접근이다. 가정 폭력이 오래 동안 인권 의제로 다뤄지지 못한 역사만 봐도 그렇다. 가부장 권력과 국가 권력이 대립하는 동안 여성 인권은 사라져버린다. ‘프라이버시권’을 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은 여기서도 지켜져야 하며, 무죄이든 유죄이든 인간의 존엄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반여성적인 사회를 바꾸기 위해 이러한 사회적 범죄가 어떻게 수사되고 결론이 내려지고 해결이 되는지, 범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등은 우리 모두가 함께 알아야 할 것이다. ‘리스트’의 공개는 그 출발선이다. 수사기관을 감시하기 위해, 권력에 의해 횡행하던 범죄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공개되어야 한다. 그 리스트가, 인권침해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고 장자연 씨가 우리 모두에게 남기고 간 정보라는 점도 물론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가치’를 은폐하는 권리의 대립구도

알 권리와 프라이버시권은 현실에서 절대로 순수하게 충돌하지 않는다. 사안에 따라 온갖 권력관계가 작동하기도 하며 여러 인권적 쟁점들이 맞물려 있다. ‘군포 사건’과 ‘리스트’뿐만 아니라 비슷한 구도로 전개되는 여러 사안들에는 뚜렷한 경향이 있다.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한 피의자들은 여론의 도마에 올라 온갖 신상 정보가 까발려지지만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자들은 오히려 수사기관과 언론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받는다. 성폭력 사건에서도 프라이버시권이 더욱 옹호되는 경향이 있으며 기업과 관련된 정보를 요구할 때도 ‘비밀’이 더욱 옹호된다. 이렇듯 ‘알 권리 대 프라이버시의 권리’라는 대립 구도는 ‘자본과 가부장제라는 권력’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알 권리’는 권력에 맞서 인권을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성폭력처럼 젠더나 섹슈얼리티의 근본적인 불평등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사적 영역’에 갇히면서 우리는 여전히 성폭력의 위험이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그것이 적당한 가격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매일같이 먹던 약이 발암 가능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발표를 갑자기 듣게 되고, 수입되는 쇠고기가 안전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을 억압하는 권력에 맞선 저항’이라는 가치가 삭제된 권리는 껍데기일 뿐이다. 권력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권리 간 대립 구도를 해체하고, 인권의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권리의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을 드러내야 한다. 여성인권, 건강권, 노동권, 주거권, 프라이버시권, 정보접근권 등 다양한 권리들이 어떤 방향으로 조직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권리 대 권리’의 충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권리의 제한인지 물어야

알 권리 대 프라이버시권의 익숙한 구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권리 대 권리’의 충돌이 아니라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요청되는 권리가 무엇이며 그에 따른 최소한의 제한은 무엇이냐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권의 실현과 침해를 둘러싼 사회구조에 개입하기 위해 각 권리의 보장과 제한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인권의 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어떤 기여를 하고 어떤 제약을 가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자칫하면, 매우 중립적인 듯 보이는 이 구도가 매우 당파적으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손 놓고 있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알 권리’나 ‘프라이버시권’을 다른 권리와의 연관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프라이버시권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하도록 하며 숨기고 싶은 정보로 인해 모욕이나 무시를 경험하지 않을 권리다. 이 권리가 자유로운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리스트’에 오른 인물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의 실상을 드러내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그들이 설령 범죄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앞으로 다시 발생할 수 있는 유사한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피의자의 ‘신상을 알 권리’ 자체를 주장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에 맞서는 것인가,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에 기대는 것인가. ‘알 권리’는 호기심의 충족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권리다.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것은 대체로 권력과 가깝다. 알리지 않는 자와 알리는 자, 사회적으로 이미 공개된 정보를 숨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정보를 드러내는 자, 그들에 맞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 권리의 대립 구도에 은폐된 가치를 살리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미류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49 호 [기사입력] 2009년 04월 22일 8: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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